개발자 부부로 살아간다는 건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첫 사수였던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한적 있었다.
절대 IT 하는 남자는 만나지 마라.
서로 잠든 얼굴만 보고 살게 될테니까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는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데도 오래 걸리고
내 안의 마음에 문이 수십 개도 있는 사람이라
소개팅이나 자만추는 꿈도 못 꾸는 사람이었다.
그저 오랫동안 지켜보고 최고로 괜찮은 사람을 고르다 보니 결국 주위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입사동기와 3년 동안 탐색전(?)을 가지고 3년의 연애 끝에 결혼한 지 3년이 넘었다.
우리 부부는 이젠 각자 다른 회사의 개발자로 살아가고 있는데,
둘 다 이직한 지 1년이 채 안되다 보니 그때 그 선배의 말을 정말 실감하고 있다.
같은 곳에 같이 살아도 우리 부부의 시차는 다르다.
우리는 아이의 등하원을 위해 출퇴근을 시차를 두고 하고 있다.
아침형 인간인 내가 8-5를 하며 아이의 하원을
늦은 출근을 선호하는 남편이 10-7을 하며 아이의 등원을 맡고 있다.
나는 5시 반이면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고 6시 반에 집을 나서는데
남편과 아이는 7시 반에 보통 기상을 한다.
퇴근할 때면 나는 6시쯤 집에 도착해서 아이를 챙기고 아이랑 같이 9시에 잠들고
남편은 7시 퇴근이지만 요즘 부쩍 야근이 늘어 실제 집에 올 때면 11시가 다되어 올 때가 많다.
정말 그 선배 말은 현실이 됐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늦은 밤 남편의 흔적 (야식 먹은 흔적, 널브러진 옷들 등)을 발견하고
어제 밤을 조용히 그려본다.
그러곤 괜히 곤히 잠든 남편 곁에 누워 5분만 더 있다 갈래 라고 말해본다.
남편은 비몽사몽에 잠꼬대를 하는데
나는 그 옆에 누워 아무말이나 주절주절 쏟아내다 다시 일어나 출근을 한다.
마지막 멘트는 항상 이거다.
우리 오늘은 같이 치킨 먹으면서 넷플릭스 볼 수 있겠지?
우리의 지인들은 가끔 우리를 안쓰럽게 보지만
그리고 이 글을 보는 누군가도 개발자끼리는 만나면 안 되겠네 싶겠지만
그래도 나는 같은 직종의 사람과 만나고 결혼하는 것에 굉장히 만족하고 찬성한다!
회사일에 바쁜 시즌이 아닌 전제 조건만 있다면
누구보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배려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웃기지만 슬프게도
그 '바쁜 시즌'이 아니라는 전제조건이 참 힘들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