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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Nov 09. 2023

소셜 미디어와 손절하기 - 앱 삭제부터 시작할까요

일단 삭제하고 보자


할 일이 너무 많다.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시간이 없어'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은 늘 휴대폰 앱 속 스크롤을 내리기 바빴다.

그게 인스타그램이던 유튜브 앱이던 아니면 어떤 커뮤니티의 유머글 목록이던 뉴스던 말이다.


출근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늘 다짐하곤 했다.

오늘은 지하철에서 책 좀 읽어볼까 하고-

그러고는 이내 휴대폰을 켜고서는 인스타그램 돋보기 피스 속을 헤매다 회사에 도착한다.


그렇게 출근 시간 내내 타인의 일상 읽어내라고 요즘 패션 트렌드, 유행하는 짤들을 머릿속에 가득 채워놓고 회사에 도착한다.


책 읽는 목표라서 어려웠던 걸까? 아니다.

오늘은 무슨 저녁을 만들까 하고 들어간 소셜 미디어 앱에서 어느새 나는 옷을 쇼핑하거나 멋진 남의 집 인테리어를 구경하고 있다.


언제 써먹을지 모를 생활 꿀팁을 보면서 이건 도움이 되는 거야라고 심심한 위로를 하기도 했다.


우리 남편은 퇴근하면 침대와 한 몸이 되고 옆으로 누워 길게 뻗은 손끝엔 유튜브가 항상 켜져 있다.

관리비를 내야 한다고 말한 지 이틀째인데 말이다.

관리비를 낼 수 있는 앱은 늘 유튜브에게 우선순위가 밀린다.


그뿐만 아니다.

뭔가 생산적인 일, 혹은 오늘 꼭 하기로 했던 일을 하면 좋으련만 쉽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내 할 일'의 자리를 늘 소셜 미디어 앱에 내어준 것 같다.

왜냐면 소셜 미디어는 늘 자극적이고 재밌고 유용한 정보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아니 넘쳐나 보인다.



인스타그램 앱을 지우다.


내가 소셜 미디어와 손절을 하려고 노력한 건 대학생 때부터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이폰 4를 손에 쥐게 되었는데 거의 그와 동시에 페이스북도 함께 시작했다.

페이스북은 일반 메신저보다 훨씬 더 매력 있었다.


그렇게 페이스북이 점차 인기를 얻을 무렵 점점 유머나 광고글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 지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에서 점점 수익성을 위한 플랫폼으로 변한 느낌이었다.


정말 이상한 건, 나는 오히려 더더욱 페이스북에 중독되었다.


이젠 친구들의 글보다 유머나 광고 등의 글이 더 많아졌지만 하루종일 그 안에서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광고처럼 보이지 않는 광고 글을 보며 이건 내가 꼭 사야 하는 거야 라며 사버린 물건들은 아마 내 방 어디 서랍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을 듯하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페이스북을 보는 시간이 아까워 페이스북 앱을 지워버렸다.

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그 이상으로 뭔가 잃어버린 느낌이 강했다.


그다음은 카페 인기글 앱에 한참 빠져있다가 지워버렸고 그리고 그다음은 유튜브 앱이었고 이제 절대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던 인스타그램 앱도 지워버렸다.



지우면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줄 알았는데


인스타그램 앱을 지운 후 며칠은 다시 설치하고 싶은 욕구가 많았다.

핸드폰을 켜고서 뭘 봐야 할지 몰라 몇 초동안 멍하니 화면만 본 적도 있었다.

나 자신과 타협해서 주중엔 삭제하고 주말에 다시 설치하기로 하고 일주일을 보냈다.


인스타그램을 보지 않으니 지하철에서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고개를 푹 숙이고 뭔가에 열중이다.


지난달 정형외과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목이 점점 일자목이 되어간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의식해서 고개를 더 빳빳이 들고 정면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뭉친 어깨와 목 근육들이 이제야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멍 때리다가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아 보험료 이체 계좌 바꿔야지 내일 아침에 먹을 연두부 주문해야지, 밀린 쇼핑 리뷰를 써야지, 만료기간이 다 되어가는 체크카드 바꿔야지 등등..


오랫동안 내가 바라봐주길 바라왔던, 내 할 일들이 보였다.

휴대폰을 켜서 밀린 일을 시작했다.

신기한 건, 인스타그램 앱 삭제 전후가 휴대폰 사용 시간은 똑같았다는 것이다.


휴대폰 사용시간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인스타그램 앱 삭제 전과 비슷했다.

그런데 같은 시간이지만 내가 의미 없이 보낸 시간들과 해야 할 일을 하며 보낸 시간들의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어쩌면 회피


할 일이 있는데도 핸드폰 속 소셜 미디어에 집중하고 자극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것.

그리고 무한 반복되는 짧은 쇼츠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어쩌면 그게 내게 해야 할 일에 대한 회피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소셜 미디어에게서 뺏은 자리를 드디어 진짜 할 일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 앱을 지운 지 벌써 한 달째, 첫 주에는 주말만 오길 기다렸다.

주말이 오면 어떤 사진을 스토리에 올릴지 어떤 인플루언서의 글을 찾아볼지 기다려졌다.

그런데 이젠 주말에도 굳이 설치해야 할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어쩌면 나는 제2의 인스타그램 앱이 나오면 또 삭제하고 제3, 4,5,6,,, 끝없이 내가 해야 할 일을 방해하는 것들을 삭제해야 할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내가 이 회피의 바다에 풍덩 빠져버렸구나 하고 인지하는 것 같다.

그리고 진짜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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