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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Dec 16. 2023

주말에만 쓸 수 있는 인스타그램

어느 날 인스타그램이 이상해 보이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에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을 내주고 있는 게 아까워서 시작한 SNS 손절 프로젝트.


그 프로젝트의 메인은 주중엔 인스타그램 앱 삭제하기였다.

처음 한 주는 출퇴근길에 내 손가락이 너무 공허하게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터치해서 원래 인스타그램 앱이 있던 빈 공간을 나도 모르게 누르고 있을 땐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그리고 가끔은 핸드폰을 들고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를 때도 있었다.

그저 홈 화면을 멍하니 보다가 주머니에 다시 핸드폰을 넣은 적도 여러 번.


이제 더 이상 주말이 기다려지지 않아.


그렇게 첫 주가 지나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내 주중 일상에서 인스타그램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가끔 어떤 주말에는 아예 인스타그램 앱을 다시 설치하지 않기도 하면서

인스타그램은 내 일상에서 점점 매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초반에 주말에만 쓸 수 있는 인스타그램을 기다리면서 어떤 사진을 업로드할까 기대했던 날들과 다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주말의 인스타그램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내게 흐물흐물해졌다고나 할까?


전혀 다른 재미를 찾아서


주중에 sns앱과 이별하고 의미 없이 스크롤을 내리는 돋보기 속 세상을 잠시 잊다 보니

이제 핸드폰 속 세상이 재미가 없어졌다.


대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 들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구매해야지 하고 늘 깜빡했던 생필품도 아이의 어린이집 행사 준비물도

어쩌면 늘 내 도파민 뒷 순위로 밀려있던 것들이 이제야 한두 발씩 앞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 같았다.


올해 목표였던 독서가 생각이 나서 ebook앱을 설치하고 출퇴근길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책마저 버거운 날엔 지인들에게 먼저 안부를 묻거나 가족들과 통화를 하며 보냈다.


내게 새로운 재미가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인스타그램이 이상해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로 느끼기에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은

이제 인스타 그램 속 스토리와 게시물들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가 진짜 소통을 위해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있겠지만 내가 주중에 인스타그램과 이별하며 느낀 건 어쩌면 우리는 늘 증명하기 위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던 건 아닐지 생각이 들었다.


내 일상을 누군가 봐주고 부러워해주고 때로는 슬픈 일에 공감과 위로를 보내주는 것.

물론 그런 것들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내가 진정 의지해야 할 대상은 내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 주고 바라봐주지 않아도

내가 나의 하루가 행복하고 충만했음을

굳이 사진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늘 괜찮을 거니까.


주말인연인 인스타그램은 내게 가끔은 여전히 너무 매력적이고 재밌는 공간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주말에도 인스타그램을 찾지 않는 시간이 늘어가고 있다.


오늘도 침대에 소파에 누워 멍하니 유튜브 쇼츠를 내리다가 해야 할 일을 시작도 못한 채 하루가 끝나버렸다면

그리고 그 하루 끝에서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렸다면

한 번쯤 내 삶의 중요한 시간들을 가져간 앱이 뭔지 그리고 주중엔 그들과 잠시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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