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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Jun 30. 2024

좋은 결혼을 했다는 증거

결혼 후에 정리되는 것들

한참 결혼을 준비하던 당시,

결혼하고 나면 인간관계가 정리될 거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이때 '정리'라 함은

불필요한 관계가 명확하게 보이고 끊어질 관계는 끊어지게 될 거라는 말로 이해를 했다.

그러나 그게 어떤 형태로 오게 될지는 몰랐다.


처음엔 단순히 결혼식이라고 생각했다.

내 사람이라면 귀한 시간을 내어 결혼식에 와주고 진정한 축하를 보내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모든 경우에 해당하진 않았다.


결혼식은 분명 나에겐 내 인생에 중요한 날이고 큰 반환점이 될만한 사건이지만

그건 완벽한 내 입장에서의 사건이었다.

당연히 와줄 것이라 생각했던 누군가가 그 자리를 함께 해주지 못한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멀어지진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내 곁에 남은 사람들 중

누가 결혼식에 왔었고 누군 안 왔고 가 중요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혼 후에 정리된 관계들은 분명 있었다.

그 관계가 무거웠던 가벼웠던 말이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서야 정리된 관계들의 공통점을 알아냈다.

나의 정리는 나만 애쓰는 관계들이었다.






결혼 전에 나는 꽤나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각종 모임들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했고

깊고 좁은 관계를 유지 하려고 하기 보단 넓고 얕은 관계를 다수로 유지하려고 했다.


모임의 관심사에 딱히 관심이 있지 않아도

그 모임에 어떤 이가 내게 호의적이지 않아도

오래된 관계지만 내실은 없는 곳에서도


'언젠가 이 관계들이 내게 도움을 주겠지?'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 도움은 사회생활이나 어떤 지식을 얻는 도움의 형태도 있었고

사회에 단절되지 않으려는, 어떤 마음과 관련된 형태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기댈 구석을 여러 군데 만들어 놓으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달라졌다.

외부의 시끄러움에 지친 날에도 집에 도착하고 나면

늘 내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연락해서 내 마음이 이렇다 저렇다 털어놓거나

오늘 술 한잔 어때 라며 약속을 잡지 않아도

나에게 애쓰지 않는 누군가에게 이 관계를 이어가려는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아무 대가 없이 내 뒤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지원군이 있다는 것.

그것은 꽤나 내게 큰 안정감을 주었다.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것들을 모두 공유하며

온전히 나라는 사람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 사람이 생기면서 나는 내 온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관계들과

내가 애쓰며 매달렸던 관계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거나

그동안 오랫동안 알고 지내와서 끊기 어려웠던 관계보다는

관계 유지를 위해 우린 서로가 애쓰고 있어라는 느낌을 주는 관계에 더 힘썼다.


그런 면에서 나는 결혼이라는 것에 꽤나 호의적인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 결혼을 해서 좋은 점이 무어냐고 물으면 

고민 없이 답한다. 

바깥의 큰 잡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가 생겼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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