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내게 회사는 전쟁터 같았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연신 두들기며 내 업무를 방해하는 누군가와 싸우고
함께 벽돌을 쌓아 올려야 일에도 얼굴 없는 옆자리의 누군가와 경쟁했다.
누가 더 잘하는지가 중요했던 탓에 벽돌집은 종종 모래성처럼 변해갔다.
마치 우리 뒤엔 누군가 채점지에 점수를 매기며 서성거렸고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그리고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리기 위해
누가 더 큰 목소리를 가졌는지가 중요했다.
그런 곳에 익숙했던 내게 이곳에서의 당연함은 낯설었다.
그 당연함이란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도와주면서 일을 했으면 해요. 누군가 바쁘거나 일이 생기면
당연히 다른 팀원들이 서로 도와주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예전의 나였으면 동료의 업무를 나눠 받아달라는 요청에
아무 거리낌 없이 수락할 수 있었을까?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 이곳에선 그게 가능했다.
가능할 수밖에 없는 이곳의 공기가 날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 팀은 다른 팀에 비해 조용한 편이었다.
활기찬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축 쳐진 분위기도 아니었고
암묵적인 어떤 룰이 이 팀 전반적인 공기를 꽉 잡고 있었다.
그건 어쩌면 누군가의 공기였을까.
이 과장에게 넘겨받은 업무는 수기로 처리해야 하는 업무였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사람이 일일이 눈으로 보고 키보드로 쳐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하루에 수십 건씩 쌓이곤 했다.
한마디로 번거롭고 딱히 배울 거라곤 없는 업무였다.
그저 단순 손가락노동 정도라고 말할 수 있었다.
팀에서도 주요 업무도 아니지만, 누군가는 꼭 해줘야 하는 그런 업무.
이 과장은 연신 미안하다며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이런 업무가 시간은 많이 잡아먹는데 막상 평가받을 때는 좋게 평가도 못 받고... 아무튼 미안해요"
그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작은 업무에도 무언가 배울 게 있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애초에 이 과장이 하던 업무라서 내게 넘겨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업무가 이 과장의 것도 아니고 결국 팀에 누군가가 해야 하는 업무가 아닌가
팀에 어떤 일이 있다면 그걸 해야 하는 것도 나의 업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던 때가 언제였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무더운 여름이 무겁고 습한 공기를 몰고 오던 여름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아침,
갑자기 메일 수십 통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슷한 제목의 메일들 사이에 하나를 클릭해 읽어보았다.
'... 세로 구매 고객들의 클레임이 다수 발생하고 있습니다. 관련부서는 오류 내용 확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