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일정의 시작, 혼자 가는 여행이지만 관광지 자연스러운 스냅 사진 욕심이 있었던 난 동행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서울에서 유럽 여행 카페에 일정을 공유한 뒤 부분 동행자를 구하는 글을 올렸다. 이미 한국에서 동행자들의 연락이 왔다. 퇴사를 앞둔 시점 나의 카카오톡에 모르는 이들의 연락이 왔었다.
숙소 혹은 일정에 대한 일정 문의가 오다 아쉽게도 동행자를 구하지 못했다. 사실, 동행자가 없다고 하여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한국에서도 나의 친구들이 있고 연락할 사람들이 있기에 구지 타국에 가서 낯모르는 사람과 어색하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난 동유럽을 향유하고 싶었고, 내 멋대로 마음가는대로 행동하고 싶은 자유로운 여행가였기에...
1주일간 오스트리아에 머물 예정이라, 시내로 나가 유심카드를 구매했다. 28유로를 달라고 한다. 거기에 유심침까지 끼어주는데 우리나라처럼 친절하지 않다. 유심을 갈아끼우고 얼마 안되어서, 케른트너 걸어가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카톡이 왔다.
"혹시 동행자 구하셨나요? 구하지 않으셨다면, 오늘 부분 일정이 가능할까요?"
그날의 분위기와 또한 나의 상태는 어느 누구 없이도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유심을 갈아끼고 처음 온 연락이기도 했고, 타국에서 누군가가 연락이 온다는 것이 신기하여 부분 동행을 하기로 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한국인 동행자가 생겼다.
프로필 사진을 확대해본다.
나보다 어려보이는 남자였다. 외모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다행이다.
편한 마음으로 동행이 가능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괜히 너무 이상적인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내 일정에 감정의 요동이 올것이라고 여겼기에 가볍게 반나절 일정을 공유하기로 했다. 나는 먼저 상대방에게 만남의 장소를 제안했다.
오페라 하우스 앞 분수대
"12시30분에 오페라 하우스 앞 분수대에서 괜찮을까요?
"네~ 그 때 뵙겠습니다."
너무나 쉽게 의외로 동행자가 구해졌다.
이전 여행때는 무료 와이파이존에서만 인터넷을 켜는 아날로그 취향의 여행가였던 나였지만 유심을 갈아끼우니 이제 여행 일정 내내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도 소통이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비엔나 72시간 시티카드를 구매하여, 트램과 여러 교통 수단 환승이 자유로웠다. 링스트라세를 도는 트램을 타고, 클래식한 비엔나를 눈으로 담았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 만남의 장소로 향했다.
통성명을 하고 난 뒤에, 가보고 싶은 곳을 서로 물어본다. 사실 치밀한 계획이 없었지만 쇤부른 궁전, 미술사 박물관 그리고 프라터 공원은 반드시 가보겠다고 다짐을 했던 터라 함께 쇤부른 궁전을 가기로 했다.
동행자는 나보다 나이가 1살이 많았다. 그렇지만, 난 나보다 어려보여서, 내 나이를 1살 아래로 다운시켰다.사실, 단 하루만 스쳐지나갈 인연이라고 생각했기에... 1살 다운시킨다 한들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 만난 동행자와 길을 함께 했다. 가기 전 점심을 먹지 않은 상태라 관광책에서 나름 맛집을 찾아 유명한 비엔나 돈까스 슈니첼집에 갔다! 만난지 1시간도 안된 사람과 가볍게 와인 & 맥주를 즐겼다.
이 엄청난 인생 여행을 앞두고, 난 나의 결혼 및 향후 커리어에 대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개팅도 선자리도 다 지겨웠던 터였는데 타지에서 새로운 사람과 자기소개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이 상황이 조금은 웃겼다.
상대방에게 반드시 잘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이 그저 그날 하루 각자의 일정에 좋은 추억하나를 남겨두면 된다는 심플한 마인드로 임했기에 우리의 만남은 단백했지만, 그래도 솔로였기에 낯선 그곳에서 약간의 설렘도 작용했다.
합스부르크의 여름 별궁이었던 쇤부른 궁전을 배경으로 우린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무 자세한 이야기는 자칫 오지랍으로 와전이 될까봐 참았다. 그러나 통성명에 이어 장기간의 여행을 오게 된 이유를 말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커리어와 직장이야기가 나왔고 그렇게 회사를 말하다보니 각자의 생활 반경이 나왔다. 심지어 같은 건물의 각자 다른 층에서 일하고 있었다니 우연치곤 신기했다.
내 여행의 철칙을 떠올렸다.
출발하면서 세운 여행 철칙:
1.괜한 오지랍은 떨지 않는다.
2.너무 멋진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
3.유럽의 거리를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멋진 사람임을 잊지 않는다.
4.처음 본 사람에게 나에 관해 너무 오픈하지 않는다.
첫째날 여행 철칙이 흔들림
1.괜한 오지랍은 떨지 않는다.
2.너무 멋진 것은 기대하지 않는다.
3.유럽의 거리를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멋진 사람임을 잊지 않는다.
4.처음 본 사람에게 나에 관해 너무오픈하지않는다.
내친 김에 우린 야경도 함께 보기로 했다. 3일간의 숙박은 '비엔나 하우스' 라는 민박집으로 정해두었다. 짐을 옮겨두고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해질 무렵 다시 만나기로 했다. 월요일 오후의 비엔나는 서울의 출퇴근 시간과는 다르게 여유가 있어보였다. 친절한 민박집 사장님의 설명으로 현지인 정보를 얻었다. 민박집에는 나처럼 혼자 온 여자 배낭여행객들이 있었다. 선약이 있어 그녀들과는 이튿날 일정을 함께 하기로 하고, 저녁 산책을 한 뒤 야경을 보러 나섰다.
트램을 타고 내린 이름모르는 역 앞에서
유럽의 초여름은 해가 정말 길었다. 아무도 모르고 온 이 낯선 곳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이곳에서 홀가분한 마음과 안정감이 느껴졌다. 불과 한달전이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월요일의 여유가 낯설면서 좋았고, 같은 일상의 패턴에서는 전혀 만날 수 없던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도 감사했다.
이후 해가 서서히 질 무렵 동행자를 만났다. 호프부르크 문앞에서 보기로 했는데, 그는 그 맞은편 유명한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그는 카페에서 저녁을 먹었고, 나는 커피를 마셨다.
이후 호프부르크 주변과 국회의사당까지 걸으며, 야경을 봤다. 불이 켜지는 아름다운 비엔나의 야경을 배경으로 마음에 드는 여러 사진을 찍었다. 이후 Volksgarten 이란 시민정원 벤치에 앉았다. 정원에는 예쁜 장미가 무성했고, 가족단위의 비엔나 시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평화롭기 그지 없는 풍경이었다.
한국에서 머리를 쓰고,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도 오늘 같은 멋진 일정이 나오기 어려웠을거같다. 무엇보다 맑은 날씨, 순조로운 일정, 음식, 그리고 동행자까지 정말 각본을 짠듯 완벽했다.
드라마나 영화같으면 로맨스 장르 한편 나올 수 있는 각이었지만, 우리의 대화는 매우 건전했고 또한 진지했다. 여행 다큐같은 느낌이랄까? 여행이 취미라고 말하는 동행자로 인해 앞으로 여정에서 필요한 여러 정보도 들었다. 함께 앉은 벤치 위로 volksgarten 정원의 하늘 위로 별들도 총총 떠올랐다.
이내 비엔나 시청탑의 불이 켜졌다. 시청탑의 야경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던 우리들은 이내 자리를 일어섰다. 그는 케른트너 거리를 전철역까지 배웅해줬다. 비엔나 3대 카페 중 한 곳을 다음날 저녁에 다시 함께 가보기로 했다. 그와의 비엔나에서의 만남은 거기까지였다
비엔나 시청탑의 야경
몇년이 지난 지금도 그와의 동행이 꽤나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면 구지 오랜 인연으로 남아 있지 않아도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특별한 인연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나보다.
만약에 비엔나에서 그와 어떤 로맨스가 이뤄졌다면, 자칫 내가 추구했던 인생 여행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내가 추구했던 여행 본연의 가치는 퇴색이 되었을지 모른다. 고민하여 세운 여행 철칙 덕분에 비엔나의 여행의 온도는 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