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나 혹은 명성이 없어도 좋고 멋진 곳 장소가 존재한다. 나에게 린츠는 그런 도시였다. 오스트리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라고 하지만 사실 이전에 들어봤던 적이 없고 비엔나와 잘츠부르크 그리고 인스부르크에 가려져 잘 모르는 도시였다.
언젠가 여행을 하면 반드시 방문할 곳이라고 해서 가봤지만, 큰 감동이 없었던 것은 기대를 너무 많이 하고 간 탓일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소문만 허다하여 마케팅이 잘 된 도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특기라고 내세울게 많아도 정작 무엇 하나 멋지게 해내지 못하면 특기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처럼, 너무 다양하게 좋은게 많은 곳도 어렵긴 하다. 그런면에서 린츠는 한가지 특성은 분명히 각인된 곳이다.
린츠를 방문하기 전에 그 도시는 내 기준에서 유명하지 않았고 조용한 도시 느낌이었지만, 현지인들의 삶에 더욱 밀착된 도시의 느낌이었다. 린츠에서 1박을 결심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체코로 가는 일정을 짜는데 지도상으로 보니 린츠에서 프라하로 가는 교통편이 효율적인 경로로 보였다. 그렇게 순전히 지도로 찾아낸 도시가 바로 린츠였던 것이다.
린츠(독일어: Linz)는 오스트리아 북부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오버외스터라이히주의 주도이며 오스트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동유럽 체코 국경에서 30km 남쪽에 있으며, 도나우 강을 끼고 있다.
잘츠부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린츠 중앙역에 도착했다. 트램을 2번 타고 내려 조용한 곳에 자리 잡은 호텔로 갔다. 린츠 중앙역에서 방향 감각없이 센트럴로 가기 위해 방황하고 있는데 나보다 어려보이는 이십대 아가씨가 매우 친절하게 날 안내해줬다. 호텔 주소를 보더니, 어떤 트램을 타고 어디에서 내려야하는지 알려주는거였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정말 친절했다.
Kopping 호텔 숙소의 벽면그렇게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인근 거주 마을에 위치했다. 숙소에 들어와 짐을 풀고 앉았는데 호롱호롱 새소리가 들리고, 창문을 열어보니 도심 공원이었다. 가방부자였던 나는 짐가방을 숙소에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안락한 호텔방의 한 켠에 십자가가 걸려있다. 오스트리아의 50프로 이상이 로만카톨릭이라고 한다. 인구의 50프로가 카톨릭을 믿어서 그런건지, 벽면 한구석에 걸려있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형상을 보니 그날이 Sunday 주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관광의 목적은 크게 없었고, 도시의 분위기를 만끽해보고 싶어서 Landstraße 쇼핑가와 신대성당을 가보기로 했다. 뉴돔이라고도 불리우는 신 대성당은 직원이 꼭 가봐야할 곳이라고 했다.
겉에서 보기만 해도 고딕양식의 건물은 어마무시하게 커보였다. 겉모습만으로는 쾰른 대성당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더 최근에 세워진 말그대로 현대식 교회였다.
참 희안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유명하다는 성당은 왠만큼 다 가봤는데, 린츠의 신 대성당에서 느껴지는 평안함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잠시 자리에 앉아 큰 십자가를 바라보고, 깔끔한 그 성당안에서 두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앞으로의 여정과 나의 미래 그리고 불안한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 기도를 했을까? 갑자기 어디에선가 흑인들이 한명 두명 들어온다. 그 시간이 일요일 오후 3시~4시 였던거 같은데 정갈하게 옷을 입고, 흑인들이 예배당의 앞쪽을 가득채웠다.
신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기도를 하다 눈을 뜨니 앞좌석으로 피부색이 검은 사람들이 좌석을 가득 채우고, 곧이어 목사님의 인도로 예배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그자리를 일어서도 상관없었지만, 그 곳엔 나 이외에도 다른 외국인들이 그 곳에 있었다. 그렇게 흑인들과 예배를 함께 드리게 되었다.
Take up your cross...
십자가를 지라!
If any of you wants to be my follower, you must turn from your selfish ways, take up your cross daily, and follow me.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나에게 가장 어려운 말이 내 뜻대로가 아닌, 주님의 뜻대로 이끌어달라는 그 말이긴하다. 나의 강한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나를 맡기는 것. 그러나 린츠 교회에서 그 묘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는 삶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강한 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꼭 이뤄야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렇게 30년 가까운 삶을 살아오면서 삶 속에 나의 힘과 의지가 너무 강해 내가 믿고 있는 그 분이 일하실 수 있는 영역이 적지 않았나 싶었다. 애초에 장기간의 계획을 세워 떠나온 여행도 아니었고, 2주만에 급작스럽게 결정하여 무작정 떠나오게 된 이 곳에서.. 나의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졸업 이후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나? 물어보면 완전히 아니라고는 말을 못하고 왠만큼은 이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삶의 무게는 커지는 기분이었다.
Take up your cross...
십자가를 지라!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내가 짊어지고 따라가야할 그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한 채 내 힘으로 아등바등거리며 삶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게 보였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부인하고 날마다 그분을 따라가는 삶이 왜 이렇게 또렷하게 들렸을까? 나의 연약한 부분, 나의 가장 모난 부분들이 그 십자가에 함께 선명하게 드러난다.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린츠의 어떤 교회 앞에서
린츠 대성당에 발을 디딛였을때 내가 느꼈던 그 평안함은 역시 괜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내 여행의 첫번째 맞이한 주일은 현지인 예배와 함께 했다.
뜻하지 않게 린츠 대성당에서 흑인들과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마음에 평안을 찾은 뒤에 오랜만에 따뜻하고 매콤한 음식을 저녁으로 먹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저녁 무렵 시내로 나섰다.
한국에서도 종종 갔던 음식점을 선택한 뒤, 라비올라를 주문했다. 올해 들어 먹었던 파스타 종류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따뜻하고 매콤한데 치즈의 풍미도 정말 훌륭했다 :) 이후 월요일을 맞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스트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여, 도나우 강가에 가서 산책을 한 뒤 이내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