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스마트폰 배터리 마냥 나에게도 생체 에너지가 있다. 이 생체 에너지는 주기적으로 충전을 해주어야 한다.
충전한다고 열이 받아 폭발하지는 않지만 충전이 되지 않을 경우 뇌사상태에 빠져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어쩌면 진짜 유령이 되어 하나님의 천사들에 의해 이승에서 영구 처분이 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방전 또는 방전이 되기 직전 조용히 넝마로 감싼 몸을 이끌고 가까운 극장으로 가야만 한다. 영화 포스터가 있고 팝콘 냄새와 은은한 조명이 있는 극장이면 어디라도 상관이 없다. 상영하는 영화들 중 무엇을 볼지는 생체에너지가 충전되어 있을 때 이미 정해져 있다. 사람들이 많이 보지 않는 독립영화나 대중의 흐름을 한번 타고 새로이 개봉하는 영화에 상영관 수가 밀리는 영화이면 된다. 간혹 상영하는 영화의 흐름이 길어질 때는 난처해지기도 한다. 200석 가까운 좌석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조명이 꺼지길 기다린다. 나의 생체 에너지를 충전할 준비는 끝난 상태이다. 대형 스크린에 화면이 바뀌고 음악이 흘러나오면 상영관 내(內)의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어쩌면 그들도 자신의 생체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지도 모른다. 혼자서 충전하기 힘든 사람도 있다. 먼저 나의 코는 상영관의 눅눅한 냄새에 취하게 된다. 곧이어 나의 눈은 번쩍이는 대형 스크린의 저쪽 세상을 엿보게 되고(눅눅한 냄새에 취한 상태에서는 저쪽 세상을 엿보는 내 모습에 죄책감은 생기지 않는다.) 나의 귀는 시시각각 바뀌는 화면에 맞춰 흘러나오는 음악에 빠져든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과 음악이 흐르면 생체 에너지가 충전이 다 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상영관 밖으로 나간다. 그들의 뒷모습에서 타인의 정사를 엿 본거 같은 죄책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렇다고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 중 정말로 타인의 정사를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논픽션이든 픽션을 주제로 한 영화든 영화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천천히 옷을 입고 극장 밖으로 유유히 걸어 나온다. 그러면 이걸로 끝이다. 난 2-3일에 한 번씩 방전이 되는 생체 에너지를 이렇게 충전한다. 지금은 이렇다. 그리고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