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뿐인 숲 속, 술 병을 든 남자
술병을 움켜쥔 남자가 가쁜 숨을 거칠게 몰아 내쉬었다.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뿌연 입김은 남자의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와 섞여 허공을 떠돌다 흩어졌다. 남자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멀거니 바라봤다. 처음 숲에서 보지 못한 샛노랗고 둥근달이 떠 있었다. 남자는 달을 바라보다 왼쪽 눈을 감고 왼팔을 들어 올려 손끝으로 달을 가리켰다. 숲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남자의 팔로 가늠하듯 남자의 자세는 엉성했지만 표정만큼은 진지했다. 남자는 한참 동안 달을 올려다봤다. 남자의 까만 눈동자와 얼굴이 샛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달 주위로 괴괴한 구름이 모이고 흩어졌다. 남자는 정신을 차린 듯 몸을 떨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같은 길만 자꾸 나오는 거 같은데.'
남자가 중얼거리며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숲은 하나의 거대한 미로 같았다. 낙엽이 모두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이 남자의 길을 터주고, 그 길을 지나가면 기괴한 나무들이 모여 길을 막는지도 모른다고 남자는 생각하기도 했다. 남자가 한숨을 쉬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른 낙엽이 쌓인 길을 걷는 남자가 지쳐버린 듯 그대로 바닥에 두 팔을 벌리고 누웠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숲의 어둠이 주는 적막은 모든 사물을 흡수해 버리는 블랙홀 같았다. 남자가 팔을 들어 올려 검지 손가락으로 둥근 달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가져가 지우기 시작했다. 노란빛이 손가락 끝에서 거품처럼 일어 사그라지고 둥근달에 잠식당한 순간, 세상은 오롯이 빛 한점 없는 숲 속에 누워있는 남자뿐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입술을 씰룩이며 혼잣말하는 남자의 표정이 마치 종잇장을 꾸기고 뭉개듯 일그러졌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빈 술병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어둠에 갇힌 이정표 없는 숲 속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달은 여전히 그 모양과 빛을 어둠 속에서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