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철문을 나온 남자

by 이상현

굳게 닫혀 있던 교도소의 육중한 철문이 삐걱 거리며 천천히 열렸다. 철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남자 혼자였다. 남자는 천천히 교도소 철문을 지나 밖으로 걸어 나왔다. 급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출소하는 기분에 들떠서 서두르는 기색도 없어 보였다. 남자를 위해 두부 한 모 챙겨 마중 나온 사람 한 명 없었다. 수감 생활 중에도 남자만은 면회 한 번 하지 못했다. 그저 두세 번 정도 영치금을 받은 게 전부였다. 공터에는 차가운 겨울바람만이 남자의 출소를 쓸쓸히 맞이하듯 거세게 불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다 휘청거렸다. 남자는 잔뜩 몸을 움츠리고 주위를 살폈다. 공터 한가운데 조그만 가건물이 있었다. 그 가건물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라고 쓰인 낡은 이정표도 있었다.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가건물로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메마른 들판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가건물은 조그만 구멍가게였다. 구멍가게 유리문을 밀면서 안으로 들어가려던 남자는 유리문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거울을 발견했다. 출소한 뒤 일반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었던 남자는 자신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풍파는 혼자 겪은 듯 지나치게 위축된 표정이었고 실제 나이보다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차라리 수의가 더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남자는 중얼거리며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진열대에는 여러 가지 과자와 초콜릿과 사탕이 놓여 있었다. 남자의 목울대로 자연스럽게 침이 넘어갔지만 여윳돈이 많지 않았다. 당장 오늘 밤 머물 곳도 찾아야 했다. 남자는 두부 한 모를 찾았다. 두부가 하루 첫끼 식사였다. 두부를 계산하며 돈을 내민 남자의 손이 마른 잎사귀가 떨어진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고 푸석했다. 두툼한 두부를 크게 한 입 베어 물던 남자는 버스 정류장 이정표 옆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 앞으로 걸어갔다. 공중전화 부스를 멍하니 바라보던 남자가 무언가 떠오른 듯 수화기를 들어 올려 귀에 가져가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다시 두부를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잠바 안쪽 주머니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 펼쳐 들었다. 수첩에는 이름과 숫자가 어지럽게 적혀있었다. 남자는 낙서 같은 메모를 가늠하듯 수첩을 앞뒤로 뒤적였다. 이어서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었다. 거침없이 넘어가는 동전 소리와는 다르게 남자는 수화기를 들고 망설이고 있었다.

'더 잃을 거라도 있겠어.'

남자가 중얼거리며 열한 개의 숫자를 차례대로 눌렀다. 이 번호는 없는 번호이니 다시 한번 확인하고 걸어주십시오......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에서 같은 음성으로 같은 말이 몇 번이나 흘러나왔다. 간혹 전화를 받은 사람도 남자 특유의 쉰 목소리를 들으면 곧바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딸깍. 딸깍. 몇 번이고 공중전화는 동전만 삼켰다.

'돈밖에 모르는 놈들...... 의리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남자의 입에서 두부 파편이 폭죽처럼 튀어 수화기에 덕지덕지 붙었다. 남자는 수첩을 다시 넘겼다. 수첩 첫 페이지에는 동생의 이름과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금구(禁句)를 조심해.'라는 작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남자는 메모를 흘겨본 뒤 수화기를 들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지난하게 이어지다 동전이 차가운 쇠창살 닫히는 소리처럼 철커덩거리며 넘어갔다. 남자가 입안의 두부를 급히 삼키며 말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긴 한숨이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형이야? 전화는 어떻게 하게 됐어?"

"어떻게라니...... 수감생활 끝나서 지금 교도소에서 나오는 길이야. 모범수로 지내서 생각보다 수감생활이 일찍 끝났지 뭐냐. 우리 만나서 술도 한 잔 하면서 이야기도 좀 하자. 어떻게 그동안 연락 한 번 없는 거야?"

입안의 두부가 작은 파편이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수화기 너머 동생은 남자를 살피는 듯 가느다란 숨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지금 같이 있어? 바꿔 줘 봐. 형, 이제 제대로 살아볼 거야."

"전화로 한다는 소리가 술 한 잔 하자는 말을 먼저 하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메마른 음성은 남자를 밀어내고 있었다.

"아니, 그게 지금 교도소 출소 해서 두부를 먹다가 전화했는데, 네가 받으니까 너무 반가워서 그랬지. 잘 지냈어?"

남자가 횡설수설 말을 이어가려 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역시 그 말이 맞나 보네. 아니,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하더라."

"응?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한 번만 말할게. 이제 전화하지 마. 아무도 형을 찾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나도 편하진 않아. 여기로 돌아올 생각 하지 말고 어디 다른 곳에서 남 모르게 살아."

"야...... 무슨 말이 그래.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어머니 좀 바꿔줘 봐."

피식, 동생의 웃음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아직도 모르겠어? 형은 집에서 버린 자식이나 마찬가지야. 알겠어? 꼭 일일이 확인시켜줘야 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안 나?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야? 이젠 지긋지긋하다. 형이 어딘가에서 죽어도 아무도 형이란 사람에 대해 슬퍼하지 않을 거야."

"말을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그동안 형이 한 행동도 잘 알고 있겠네."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횡설수설하는 남자의 말이 미쳐 끝나기도 전에 단말마의 비명처럼 철커덩 소리를 내며 전화가 끊겼다. 한동안 수화기를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남자가 마저 먹지 못한 두부를 바닥에 툭 던져 발로 짓이겼다. 남자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동생과 마찬가지로 부모님도 남자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가느다란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남자는 이제 돌아갈 곳도, 당장 머물 곳도 없는 무적 신세가 되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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