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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Sep 30. 2019

캐쉬백(2006)

*스포일러 있습니다.


감독 숀 엘리스

출연 숀 비거스탭, 에밀리아 폭스 등등.


시간을 멈출 수도 있고 빨리 가게 할 수도 있고 느리게 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삶을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을 기억하고, 또  지우고 싶어 할까?

기억을 전부 다 하지 못할지 몰라도 그 순간의 상황이 주는 감정은 느닷없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올 수 있다.

 

벤 윌리스(숀 비거스탭)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이별을 겪어야 했다. 오프닝에서 벤의 그녀는 온갖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벤을 허공으로 밀어낸다. 벤의 결정적 장면 중 하나이다. 그 후로 벤은 불면증에 시달린다. 사실 연인들의 이별은 그 생의 한 주기에서 커다란 난제이다. 세상이 끝난 거 같은 상실감에 빠지며 자책을 하는 연인들. 마냥 슬프기만 할거 같은 이 영화 캐쉬백은 벤의 불면증과 함께 시작된다.


벤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을 구하려 하지만 이별의 아픔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낮과 밤의 구별이 사라진 벤은 말한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의 잠을 잃고 인생의 3분의 1을 얻었다는 벤의 자조 섞인 말은 화면 속 벤의 행적을 쫒아가기에 바쁘다. 벤이 덤으로 얻었다는 8시간. 미처 읽지 못한 책을 보거나 밤새도록 자문자답을 해보기도 한다. 결국 벤이 택한 건 마트에서의 야간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이다. 보상받지 못할 8시간을 캐쉬백 하는 벤. 


벤은 미대생 졸업반이다. 여느 젊은 청춘들과 같은 고민에 빠질 그런 시기. 마트 야간 파트타임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근무자들 각자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있다. 마트에서 벤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시간을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유년시절 벤은 여자의 나체를 접할 때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 아름다움을 말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강렬했다. 시간이 멈춰 벤 자신만이 움직일 수 있는 마트에서 장 보러 온 고객의 옷을 벗겨 드로잉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대부분 스케치 대상이 여자의 나체이다. 그리고 벤의 나래이션은 계속된다. 끊임없이 상상을 하며 스스로에게 답을 찾으려 한다. 


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트 야간 캐셔인 샤론 핀티(에밀리아 폭스)와 벤은 그녀의 꿈과 자신의 꿈을 공유함으로써 가까워진다. 꿈을 공유하는 일이 이토록 멋진 엔딩이 나올 줄이야. 그녀의 짧은 입맞춤으로 하루 24시간, 인생 3분의 1을 더 얻은 시간에서, 벤은 결코 깨질 것 같지 않은 주문에 깨어난다. 온종일 깊은 잠에 빠진 벤을 깨우는 건 한통의 전화였다. 벤의 그림을 보고 싶다는 전시회 관계자는 물론 마트 야간 근무자의 장난전화였지만 그 후 벤은 정말 기적처럼 전시회를 열게 된다.  


수많은 오해가 있다. 그중 벤을 다시 좌절시킨 2초의 오해. 초침이 한 칸 흐르고 다시 한 칸이 흐르는 순간 샤론은 벤이 그의 전 여자 친구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도망치듯 그 공간에서 사라진다. 2초의 오해를 직감한 벤이 샤론의 집을 찾아갔을 때 샤론 또한 벤을 허공으로 밀어 넣었다.


벤이 그린 그림은 온통 샤론으로 가득하다. 그 전시회장에 샤론에게 초대장을 보낸 벤. 샤론 또한 마트를 그만두고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 중이었다. 샤론은 전시회장에 가득 찬 그림이 자신 뿐임을 알고 2초의 오해는 마법처럼 풀려버린다. 마지막 엔딩 장면이 여느 다른 영화들보다 압도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난 영화를 다시 보기도 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벤의 나래이션은 끊임없어 때로는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결국 벤은 스스로 답을 찾아냈다. 스스로 행복을 찾는 방법.


18분짜리 단편 영화였던 캐쉬백을 장편으로 늘리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추가됐지만 이 영화의 철학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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