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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Oct 15. 2019

혜화, 동(2010)

*스포일러 있습니다.


감독 민용근

출연 유다인, 유연석 등등


십 년이 지난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았다. 시간이 흘러 무뎌질 만도 한데, 이 영화는 다시금 새로운 충격에 나를 빠뜨리고 만다. 가슴 시리게 차갑고 슬픈 이야기. 혜화, 동 이다.


23살의 혜화(유다인)는 동물병원의 보조로 일하며 유기견들을 키운다. 언뜻 보면 평범한 여자의 일상이다. 하지만 혜화에게는 아물지 않은 과거의 상처가 있다. 그 상처는 차가운 얼음과도 같이 단단하다.

한수(유연석)는 군을 의가사제대한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심지어 가족들에게 소식도 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수의 시선은 유년기의 여자아이에게 머문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 보여준다. 즉 과거의 상처를 어쩌지 못하고 가슴에 인이 박힌 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현재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무심코 지나칠 법한 이야기이다. 평범할 수도 있고 어쩌면 결코 평범하지 않을 수 있는 차가운 이야기를 감독은 좀 더 따뜻하게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18살 혜화와 한수는 사랑하는 연인 사이이다. 그리고 어느 날 혜화가 임신을 한다. 임신한 혜화를 두고 한수는 사라지고 갓 태어난 아이 또한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18살의 혜화와 한수가 감당할 세상은 너무나 가혹하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리고 혜화는 말한다.  세상에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사실 알고 보면 혜화는 50대의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 태어난 여자다. 혜화 자신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은 사실이다. 18살의 혜화를 보살펴 주던 노모는 친모가 아니었다. 혜화가 바란 삶이 아니지만, 태어나면서 그런 자신의 운명을 겪으며 가족에, 가정에, 그러니까 한 아이의 엄마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삶을 간절히 꿈꿔왔다고 생각 든다. 그렇지만 18살의 나이에 아이를 가진 혜화는 무섭고 한편으로 간절한 기쁨이었을 꿈이 무참히 사라지는 상처를 겪는다. 


한수는 혜화를 찾아간다. 그런 한수를 매번 밀어내는 혜화에게 한수가 내민 것은 친권 포기 및 입양동의서이다. 한수는 혜화와 자신의 아이가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고 있다. 그 아이를 혜화에게 찾아주고 싶은 한수. 조금씩 혜화는 흔들린다. 아이를 낳으면 돈을 벌기 위해 배우던 네일아트마저 포기한 혜화는 매번 손톱을 잘라 필름통에 기억을 보관하듯이 담아 간직한다. 그 손톱으로 자신의 손목을 그을 만큼 절망적이던 혜화를 다시 붙잡아 준것은 한수였다. 


한수도 무서웠을 것이다. 그렇게 한수는 가족에 의해 지방의 기숙고등학교로 강제 전학 가고 만다. 혜화는 자신의 친모가 자신을 버렸듯이 한수도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조금씩 알게 되는 혜화. 그런 혜화 곁에 맴도는 한수. 영화의 차가운 슬픔은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다. 


누구보다 서로 사랑했던 혜화와 한수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고 있다. 차가운 슬픔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게 만드는 영화 혜화, 동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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