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5년 전에 알려드렸잖아요(2)

가족을 위한 마지막 선물

by 보그 Lee

동녘 저 편에 먼동이 트면 철새처럼 떠나리라

세상 어딘가 마음 줄 곳을 집시 되어 찾으리라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

:

:

서산 저 너머 해가 기울면 접으리라 날개를

:

이제는 아무것도 그리워 말자 생각을 하지 말자

세월이 오가는 길목에 서서 천년 바위 되리라

:


하얗다 못해 푸르른 한복을 곱게 입고, 곱게 땋아

등까지 내린 머리에도 하얀 명주로 댕기를 하고, 하얀 버선 끝으로 바닥을 미끄러졌다, 허공을 차다가

하면서 하얗고 커다란 종이로 만든 지꽃을 양 손가

락 사이에 꽂고, 손가락 끝을 치켜 세운 채, 양팔을

이리저리 저으며 흘러나오는 구슬픈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데 마치 영가님이 가기 싫어서, 떠나기

싫어서 이승의 한 자락 끝이라도 붙잡고 싶으나,

그럴 수 없어 안타까운 심정을 손끝에 풀어내어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 천년바위란 노래가 이렇게 슬펐었나...


나는 가족도 아닌데 노래를 듣다보니 그 가사가

진짜 너무도 와 닿아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심금을 울린다' 란 말이 있더니만 이런 때 쓰는

건가 싶다. 티슈를 찾아 눈물을 닦아내다 가족들을

보니 모두 눈물바다이다. 티슈와 물을 가져다 그들

사이에 조용히 놓아줬다.


병풍 뒤에 영가님을 위해 준비해 놓은 새 세숫대야

에 정수물을 채워놓았다. 이제 깨끗하게 씻으시고 ,

새 치약과 칫솔로 양치까지 하시고, 겉옷은 물론

속옷이랑 양말과, 신발까지 곱게 갈아입으셨으니

이제 마무리 절차만 끝나면 영가님께서는 곧 떠나

실 시간이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자기들 곁을 떠난 줄로만 알고

있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큰 딸이 아빠의 위패를

들고 작은 딸과 젊은 아내가 뒤를 따른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사위의 부재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

고 있는 친정엄마가 맨 뒤에서 고개 숙인 채 따라

걷고 있다. 아마도 온갖 생각에 맘이 아프리라...


모든 절차를 끝내고 법당에 스님과 함께

참여한 가족들이 모두 둘러앉았다.


스님께서 눈짓하시기에 미리 준비하셨던 걸 조용히

들여갔다. 스님께서는 아이들에게 앞으로 오라고

부르신다. 법복 품 안에서 흰 봉투 두 장을 꺼내어

각각 아이 들 손에 쥐어주신다.


" 이건 아빠가 주는 용돈이란다. 그리고 이것은

아빠랑 놀러 갈 때 사가지고 가서 함께 많이 먹었던

과자들이야. 딸들이 좋아하는 거라고 아빠가 사주

고 싶어 하셔서 스님이 대신 준비했단다.

맛있게 먹어.

그리고 아빠가 너희 둘 다 엄청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그리고 보이지 않아도 아빠가 곁에서 항상

지켜주실것도 알고 있지.? 그러니까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잘 해결될테니까 걱정 말고 씩씩하게

자라야 해. 알았지..? "


이번엔 젊은 아내를 부르신다.

준비한 케이크 상자와 빨간 장미가 화려한 꽃바구니

를 전하신다.


" 며칠 있으면 생일이시지요..?"

어떻게 아셨냐며 젊은 아내가 눈물을 닦다 말고

스님을 올려다본다.


" 남편 분이 얘기해 주셨어요. 마지막으로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다고. 그리고 꽃 한번 제대로 선물한

적 없다고 해서 꽃 바구니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이게 좋아하시는 꽃이라고 말씀하셔서 이 장미로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맞나요..? "


젊은 아내는 스님의 물음에 눈물을 닦느라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그저 여러 번 끄떡인다.


" 영가님께서 살면서 잘 못한 게 있어도 용서해달라

고 ....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표현 못해서 늘

미안했다고 하십니다.

힘들겠지만 아이들 잘 부탁한다고...

그리고 많이 고맙고, 많이 사랑한다고 하시네요. "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올까 입을 막고 겨우 참으며

어깨를 들썩이던 젊은 아내는 마침내 울음소리를

참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열한다.


그동안에도 많이 울었을 텐데 어디서 또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

저 눈물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


옛날에 5년 전에 엄마말을 들었더라면...

내가 그렇게 매몰차게 하지 말고 한 번쯤 귀 기울였더라면...

아무리 그렇다고 이렇게 떠날 수가 있나...

이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남편에게 좀 더 따뜻하게 해 줄 것을...

사느라고 바빠서 잘 챙겨주지도 못한 것이 이렇게

가슴을 칠 일이 될 줄이야...


젊은 아내는 눈물이 그칠 줄 모른다.


스님께선 아들을 잃고 참담하고 비통해할 부모님께

위로의 말을 전하신다. 그리고 친정엄마에겐

혹여 자책하지 말라고 , 그 또한 운명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라고.. 사위가 그렇게 말 전해주라

했다고... 가만히 다독인다.


그 뒤로도 한 참을 울던 젊은 아내는 남편의 마지막

선물인 빨간 장미꽃 바구니를 가슴에 안고

휘청 휘청 떠났다.

검은 옷 때문일까..? 장미는 왜 또 그리도 선명하게

아름다운지...


'앞으로 살면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상의하러 오라'는 스님의 말씀을 뒤로한 채,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를 영정으로, 위패로

소원암에 남겨둔 채, 젊은 아내는 휘청 휘청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