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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그 Lee Jul 19. 2024

16. 5년 전에 알려드렸잖아요.(3)

이승과 저승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

여기는 소원암.

삼성각 옆 작은 텃밭이다.

이슬도 마르지 않은 이른 아침인데 스님은 아까

부터 풀을 뽑고 있다. 옥수수가 듬성듬성 서 있는

텃밭 한편엔 호박잎이 무성하다. 그 사이에 상추

몇 포기가 있는데 그 옆에 조그만 함지박을 놓고

등을 한껏 구부려 앉아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냥 헛손질만 계속하거나 가만히 있거나 그러고

있다.


아마도 심란한 마음을 달래 보려고 율력을 하려

하나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 모습을 ' 천상동자'가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그대로 서서 한 참을 바라보다가 신당으로

들어간다.


" 아무래도 그냥 두면 안 되겠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압력하고 있는 명도동자에

게 말한다. 듣고도 모른 척하고 있던 명도동자. 하던

걸 한참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원탁에 가서 앉는다.


" 에이그 물러터져 가지고선... 아니 그 사위가 죽은

게 본인 탓도 아닌데 왜 저럼..?. 어차피 운명이었는

데. 그리고 돈도 많이 안 받고는  모든 걸 제일 좋은

재물로 천도재 정성껏 했고, 앞으로 기도 많이 해서

아이들도 잘 되게 도와주면 되지 며칠째 왜 저럼..? " 명도 동자가 혀를 끌끌 찬다.


" 어린 딸들이랑 보니까 마음이 좋지는 않겠지.

우리 제자가 본디 마음이 연하잖어. 나도 짠하던데

오죽하겠어" 천상동자가 작은 소리로 말한다.


" 그러게 알려줬을 때 하라는 대로 했어야지!!

인간들이란 꼭 일을 당해봐야 안다니까. 어린아이가

뜨거운 걸 만져봐야 뜨겁다는 걸 알고 나선 다음에

안 만지는 거랑 똑같아. 다음에 어떻게 하라고 잘

알려줬으니까 이제는 말 듣겠지 뭐."


둘 다 말이 없다.

말은 서로 안 했지만 제자가 신경 쓰이고 걱정되는

건 똑같다.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결국 제자를

호출한다.




들어와 앉은 제자의 본새를 보니 팔꿈치까지 걷어올

린 소매에는 군데군데 흙이 묻어있고 바지 엉덩이

는 아침 이슬에 젖어있다. 얼굴은 며칠째 한숨도

못 잔 표시가 나도 심하게 난다. 가을 낙엽처럼

누리 끼리 한 데다가 푸석푸석하다.


" 아니, 왜 또 그러는 거야 ~~ "


한 껏 목소리를 높였던 명도동자가 제자의 얼굴을

보더니 다시 애써 목소리를 낮춘다.


" 속상하고 짠한 마음은 알겠는데 어쩌냐고.?"


눈만 꿈벅이며 제자가 한 참을 그냥 앉아있다,


답답해진 명도동자가 한 소리 하려고 하자 천상동자

가  눈짓으로 말린다. 제자는 한 참 후에 입을 뗀다.




" 5년 전에 말해놓고도 시간이 많이 지나서 저도

깜박 잊었었지요. 그 남자영가가 나쁜 귀신은 아니

었고 그저 외로움이 사무쳐 있었던 것뿐이라서 가만

두면 사람에게 크게 해를 끼치진 않을 거였으니까요. 그리고 말해줘도 믿지 않는데 제가 혼자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뒤로

소원암에 다니기라도 했었으면 제가 보고 생각이

났을 텐데, 그럼 한 번은 더 말을 해봤을 수도 있었

을  텐데 그 뒤로 오지도 않았고... 5 년이나 지나서

갑자기 찾아와 그렇게 되었다 하니 제가 좀 놀랐지

요. "


" 그러니까 그전엔 믿지 않다가, 괜히 이상한 소리

나 한다고 무시하다가 이제 막상 당하고 보니 그 말

이 생각났고, 정말 그 스님말이 맞는구나 싶으니

바짝 무서워서 찾아온 거잖아. 지금까지 그런 사람

들이 어디 한둘이었냐고..?  그럴 때마다 그렇게 매

번 맘 못 잡고 휘둘리면 어쩌자고. 그러는 거임..?"

답답한 마음에 명도동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낮아

졌다 한다.


" 저도 제가 가끔 무서워서요. 아니 무섭다는 게

다는 아니고 솔직히 산다는 게 뭔지 싶기도 하고요...  저야 동자님들과 또 찾아오는 사람들의 조상 영가님께서 알려주시는 대로 말하고, 또 그들에게  들은

사실 그대로 전하고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야 어디

그걸 한 번에 믿냐고요. 보통은 겉으로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 저 땡중이 돈 받아내려고 그러는구나'

하고 안 오고 말죠. 그래서 가끔은 알아도, 들었어도

 ' 이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  

고민하게 되는 일이 많지요. 그래도 말 안 해주면

안되니까 말하긴 하는데 듣고 말고는 그 사람 선택

이지요.  그래도 개중엔 제 말을 잘 듣고, 믿는 사람

도 있긴 하고, 그 사람들은 하라는 대로 하면 일이

순탄하게 잘되니까 저도 보람 있고 좋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고 말을 들은 척도 안 하다가 이렇게 일이

닥치면 그제사 오니까.. 그걸 매번 보고 있자니 힘이

드네요 "




다 말이 없다.  

처음 듣는 얘기도 아니고, 처음 하는 얘기도 아니다.

영가의 세계를 , 신들의 세계를 그 누가 어찌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심정은 그 답답함은

늘 알고 있는 얘기고 앞으로도 아니, 내일도 모레

도 되풀이 될 일이니까...


" 네가 왜 무대포 스님인지 알지..? "

명도 동자가 제자를 보고 말한다.


" 내가 아무리 자료를 찾고 , 찾아도 복을 지은게

없어서 정말로 소원을 이뤄줄 수가 없는 사람인데도

네가 이 사람은 정말 딱하니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

고 맨날 무대포로 우기고, 밤새워 안 가고 떼쓰고

기도하고, 수천 배 절하고, 눈 오는데 돌 길에서

오체투지 하면서 우릴 맨날 맨날 협박했잖아. 그래

서 어쩔 수 없이 저 무대포 제자가 죽기 살기로 고생

을  하니까 ,  그 집 조상에게 가서 협상해서 조상하

고 합의해서 합격시키고, 병 낫게 해 주고, 취직시키

고 그렀잖아.  그런데 사람들이 어떻게 했어..?  

원래 합격할 실력이었다고 하고....

누가 소개해준 약을 잘 먹어서 나았다고 하고...

면접을 잘 봐서 취직했다고 다 핑계 대고....

그러고는  고마운지도 모르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잖아. 아니 그럼 진작에 여기 오기 전에 그렇게들

하지..? "


왜 저런 얘길 하나 싶은 뚱한 얼굴로 제자가

명도동자를 본다.


" 그러니까 내 말은 그렇게 맘 아파하지 말라는

말이야. 그렇게 배신당하고도 그렇게 측은해하고 ,

맘 아파하고.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이승하고 저승은 종이

한 장 차이야.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서로 이어져

있다고. 알잖아..? 이번 영가도 살아생전처럼 가족

을 직접 만나지 못하지만 늘 곁에서 보면서 지켜주

고 보호해주고 할 텐데 왜 그래..?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왜 돌아가셨다고 하겠어..?  원래 있던 곳에

서 잠시 이승으로 와서 전생의 인연법에 의해서

가족이 되었던거야. 그 인연이 다 해서 헤어지게

된거고...

앞으로도 사람들이 우리에게 물어보러 오면 지금처

럼 앞 일을 알려주고, 또 그 사람이 그대로 하면

잘 되려고 복이 있는 거고, 또 말을 안 듣고, 우릴

안 믿고 , 안 하는 것 또한 그 사람의 선택이고  

인생인거지 우리가 뭘 어떻게 하겠어. 그러니까

더 이상 여러말 하게 하지 말고 이제 정신 차려 알았

어..? "


괜스레 눈을 부릅뜨고 치껴 뜨면서 힘주어 말한다.

그리곤


" 이틀 지나면 점심에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 거야.

오늘 기도는 감해줄 테니까 가서 밥 챙겨 먹고

잠도 좀 자고 몸 챙기고 있어"


말을 남기고 다시 컴퓨터 앞으로 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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