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자기소개 하기by. 신발끈
가끔은 유튜브에게 깜짝깜짝 놀란다. 어찌나 똑똑한지 내 취향을 모두 간파해버렸다. 사실 자기 전에 혼자 누워서 보는 유튜브 영상만큼 사람들이 자기 취향에 솔직한 순간이 있을까? 누군가의 유튜브 시청 목록을 보게 된다면, 그 사람의 SNS를 보는 것보다 더 깊은 정보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발끈으로 첫 시작은 유튜브로 하는 자기소개다.
출처: https://www.youtube.com/user/davetehdave/videos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에 흥미가 많은데,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즐겨보던 인간극장부터 대학생 시절 즐겨보던 각종 일상 소재의 웹툰들까지 한결같고 뿌리 깊은 취향이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해외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영국 사는 사람의 일상툰부터 미국, 중국, 독일까지 해외 살이 하는 사람들의 일상 에피소드 웹툰을 남몰래 성실하게 봐왔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에서도 역시나 문화 차이나 해외 살이를 보여주는 컨텐츠들이 자주 보인다. 이 채널은 한국에 산지 십일 년 된 데이브와 친구들의 한국과 각자 나라의 이야기인데, 데이브라는 사람보단 해외의 문화 차이에 관심이 가서 보기 시작했다 구독까지 하고 있다. 한국에 오래 살면서 직접 겪은 경험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게스트들이 많이 나와서 저마다의 반응 차이를 보는 게 흥미진진한 포인트다. 이민을 꿈꾸진 않지만, 언젠가는 해외에 한번 살아보고 싶은 게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한 가지이기 때문에 유튜브를 보며 어느 나라가 좋을지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channel/UC6lNIbU1SSA9YjveOx9a_oA/videos
다섯 살 된 딸, 남편과 함께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인데, 여기엔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세 가지가 모두 나온다. 바로 요리, 어린이, 해외 살이다. 요리는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요리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요리를 알려주는 영상보단 그저 지켜보는듯한 영상이 좋다. 서울에서 혼자 직장을 다니며, 요리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고 먹어 줄 가족들도 없다 보니 따뜻한 집밥을 나눠먹는 모습을 보는 걸로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엔 아침 도시락 싸는 영상을 보다 계란말이 마는 장면에 중독돼 어느새 계란말이 특집 영상을 보고 있더니, 그다음엔 이름도 귀여운 로미에게 빠져 랜선 이모가 됐다. 로미는 에너지가 넘쳐서 활어짱이라는 애칭이 있는 다섯 살 꼬마 아이인데, 잘 먹는 모습도 귀엽고 웃는 모습도 귀엽고 말솜씨가 늘어가는 모습도 귀엽다. 빨리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겠다는 결심까진 아직 안 생기고 조카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영상 중간중간 엿볼 수 있는 일본의 풍경. 일본의 마트엔 저런 게 있구나, 주차장은 저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한 번도 안 가본 일본 여행을 침대에서 하고 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channel/UCYnfy2hyzqnVXv_UlLBiV-A/videos
나는 평생을 크게 찐 적도 빠진 적도 없이 살아온 유지어터인데, 최근 들어 부쩍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아졌다. 일주어터는 운동은 거의 안 하지만 괜히 운동 영상도 몇 개 찾아보고, 식단 영상도 기웃거려 보다가 알게 됐는데 요즘 나의 다이어트 메이트이자 내가 아는 100kg 중에 제일 예쁜 언니이다. 나이는 잘 모르지만 멋지니까 언니다. 여러 가지 식단 다이어트를 일주일씩 도전해 살이 빠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장단점을 소개해 주는 컨텐츠인데, 배고픔을 참아가며 식단을 정말 제대로 지키고 그만큼 살도 쭉쭉 빠지는 모습을 보여줘서 보다 보면 도전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그렇게 다이어트를 잘하는데 놀랍게도 수많은 영상 속 도전 시작 몸무게는 100kg이다. 회복이 참 빠르지만, 그래서 더 정감 가는 채널이다. 또 다이어트하는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는 설정처럼 성격도 아주 쿨하고 유쾌한데, 나는 새로운 시작을 할 때 고민이 너무 많고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는 소심쟁이라서 저렇게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멋져 보이고 호감이 간다.
출처: https://www.youtube.com/channel/UC-IYpdOqjkER7B6cnChwlhA/videos
소녀의 행성은 순딩 순딩한 리트리버 소녀와 까불까불한 쪼꼬맹이 포메라니안 행성이의 사랑스러운 캐미를 볼 수 있는 채널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때 퇴근하지만, 퇴근하면 요가도 가야 하고 친구도 만나야 하고 주말엔 데이트도 해야 하는 사람들은 강아지 유튜브를 보라는 강형욱 훈련사님의 말씀을 듣고, 퇴근 후 여러 랜선 반려견들과 함께 하고 있다. 저때 실제로 퇴근하고 요가도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주말에 데이트도 다녀서 정말 내 얘기구나 하고 큰 깨달음을 얻어서 지금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마음을 깨끗하게 접었다. 대신 매일 꼬박꼬박 강아지 영상과 짤들을 보며 힐링을 하곤 하는데, 1일1짤을 공유하는 단톡방도 있을 정도이다. 예전엔 강아지와 고양이 중에서 당연히 강아지가 더 좋았는데, 요즘엔 도저히 못 고르겠다. 퇴근길 길냥이들과 눈인사를 하고 오는 것도 나의 소소한 기쁨 중 한 가지인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우리 동네 길냥이들을 소개해 보고 싶다.
출처: https://www.youtube.com/channel/UCA6uTV8GcNJ-AbCz4kw9Buw/videos
예전엔 각종 뷰티 관련 컨텐츠들을 은근 자주 봤었는데, 언젠가부터 점점 안 보게 되고 연예인 채널도 구독하고 있는 채널이 거의 없다. 그런 영상들을 한창 많이 볼 때는 화장품도 하나 더 사게 되고, 피부에 뭘 해볼까 고민하고, 더 예뻐지고 싶은 마음이 많았었는데 요즘엔 세수하고 나면 수분크림 하나 딱 바르고 마음 편하게 살고 있다. 영상을 보다 보니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화장품이 필요할 때 리뷰 영상을 찾아보고, 피부 고민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찾아보는 식으로 변한 게 나에게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여준 것 같다. 그런데 또 한예슬 채널은 계속 보고 있다. 괜히 싫은 사람도 있는 것처럼 나에게 한예슬은 논스톱과 환상의 커플 시절부터 괜히 좋은 연예인이기도 했고, 자기 일을 정말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여서 보기도 한다. 나는 꿈꿔왔던 상품&메뉴 기획자가 되었지만 오 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현실과 한계를 알아가면서 열정은 사라지고 그저 해내야지 하는 책임감만 남아 직업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라, 정말로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나도 저런 직업을 찾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년엔 정말로 새로운 일을 해보려 하는데, 제대로 해내서 멋지게 소개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유튜브로 하는 자기소개는 여기서 마칩니다.
현실은 누워서 유튜브 보고 있지만,
계획은 참 많은 신발끈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