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순이의 빵집 이야기 by. 신발끈
엄마는 어렸을 때 빵이 너무 좋아서 빵집 아저씨와 결혼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엄마를 닮아서인지 나도 굉장한 빵순이인데, 밥 보다도 빵이 더 좋고, 밥을 먹어도 빵은 또 먹고 싶다. 또 빵이라면 가리는 것 없이 거의 모든 빵을 고루고루 좋아한다.
패스츄리는 파스스스 부서지는 얇고 바삭한 층과 버터의 풍미를 느낄 수 있어서 좋고, 호밀빵이나 포카치아는 심시한 맛 속에서 약간의 단 맛과 은은한 짭조롬함에 살짝 신 맛도 숨어있어 입맛을 당긴다. 케찹, 소시지가 잔뜩 들어간 피자빵처럼 온갖 소스와 토핑들이 듬뿍 올라간 조리빵들은 자극적이고 풍성한 맛의 조화가 좋고, 찰떡마냥 쫀득쫀득한 식감의 빵들은 달달한 필링이 더해져도 맛있고, 치즈가 올라가서 짭짤한 것도 맛있다. 아주아주 단 가나슈 타르트나, 부드러운 생크림 케이크, 골든 캬라멜 마카롱 같은 디저트들은 먹을 때마다 행복해져서 매일 먹어도 좋다. 굳이 덜 좋아하는 빵을 찾아보자면 딱딱한 빵보다는 부드러운 빵을 더 좋아하긴 하는데, 딱딱한 빵도 막상 있으면 너무 잘 먹어서 그것도 안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좀 민망하다.
빵을 이렇게 좋아하다 보니, 맛있는 빵집을 알게 되면 멀리 있는 빵집들도 저장해 두었다가 시간이 날 때면 찾아가 한가득 빵 쇼핑을 해오곤 한다. 자주 다니는 가로수길은 초입부터 골목 안쪽까지 구석구석 들락날락거려서 어느 빵집은 언제 가야 맛있는 빵이 많은지, 언제 사람이 많고, 어떤 빵이 제일 맛있는지 등등 나름의 단골 지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빵 좀 먹어본 사람으로서 사심 가득한 가로수길 빵집 소개를 해보려고 한다.
도산공원에서 유명했던 빵집으로, 가로수길 오픈 때부터 사람들이 많이 몰리더니 아직도 인기가 많아서 날씨가 더우나 추우나 어지간하면 사람이 많다.
아우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빵은 더티 초코. 아우어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빵이기도 하다. 안에는 오독오독 씹히는 초콜렛으로, 바깥에는 초콜렛 글레이즈와 코코아 파우더로 안팎이 초코초코한 페스츄리다. 이름처럼 먹고 나면 더티해지기 쉽고, 까딱 잘못하면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해서 먹기 전에 큰 결심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도전을 한다면 정말 꽉 찬 초코맛을 느낄 수 있다. 초코로 성공한 브랜드답게 초코라인이 꽤 많은데, 초코 슈, 초코 크로플, 빨미까레는 헬로네이쳐에서 배송으로도 받아볼 수 있다. 그치만 가로수길까지 왔다면 빨미까레는 르 알래스카에서 사 먹자. 확실히 더 맛있다.
어느 시간대에 가도 항상 있는 더티 초코와 달리 까눌레는 정말 금방 품절돼서 나오는 시간을 잘 맞춰가지 않으면 구하기가 어려운데, 함정이니 속지 말자. 어떤 빵을 골라도 대부분 맛있는 아우어지만 까눌레만큼은 참기 힘들게 맛이 없다. 한때 까눌레에 빠져서 아우어의 까눌레를 사겠다고 몇 번을 찾아가 겨우 성공해 한껏 부푼 마음으로 고이고이 포장해왔던 까눌레가 준 배신감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우어에서 내 맘 속 베스트는 올리브 스틱이다. 너무 파삭하지 않은, 기분 좋게 바삭한 페스츄리 위에 달달한 갈릭 소스가 한 겹 발라져 있고 그 위로 통통한 그린 올리브가 가지런히 올라가 있다. 한 입 베어 물면 올리브의 즙이 팡 터지면서 그린 올리브 특유의 풋내와 짭조름함이 마늘빵처럼 달콤한 갈릭 페스츄리와 만나 맛있는 애피타이저를 먹는 것 같다.
이 곳은 한때 가로수길의 핫플이었던 크러핀 맛집 미스터홈즈 베이크하우스가 사라진 뒤 가로수길에서 유일하게 크러핀을 판매하고 있는 곳이다.
미스터홈즈 베이크하우스는 매일 다른 맛의 크러핀을 만들어 그날의 메뉴를 인스타그램에 공개하는 운영방식으로, 한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인증샷을 찍고 그야말로 핫했던 곳이다. 나도 오픈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몇 번 갔었는데, 한동안 잊고 지내다 다시 가보려고 찾아보니 현지화를 한 건지 변심을 한 건지 미국에서 들어온 베이커리답지 않게 메뉴가 죄다 흑임자, 고구마 이런 것들만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맛을 파는 날에 가려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망해서 영영 못 가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크러핀 파는 곳을 찾아보다 우연히 알게 된 곳이 쁠로13인데, 방송은 못 봤지만 생활의 달인에도 나왔었다고 한다. 이 곳의 크러핀은 미스터홈즈꺼랑은 완전 다른 스타일이다. 미스터홈즈는 크루아상 반죽을 머핀 틀에 욱여넣은 것 같은 비주얼에 겉면은 설탕이 묻혀져 페스츄리 도넛의 느낌이 강했는데, 여기는 프라하의 굴뚝빵처럼 곧고 길쭉한 원통 모양 빵 안에 쫀쫀하고 묵직한 필링이 가득 차 있다. 크림치즈&스트로베리, 초콜렛 가나슈, 얼그레이, 말차 등 여러 가지 맛이 있는데, 굴뚝빵의 동그란 모양을 살려 칼로 슥슥 썰면, 쫀쫀하고 밀도 높은 필링이 마치 진한 초콜렛 타르트 같기도 하고 치즈케이크 같기도 하다.
케익처럼 꼭 차갑게 보관했다 먹어야 맛있고, 크기가 꽤 커서 여럿이 모였을 때 썰어서 한 조각씩 나눠먹기도 좋지만, 겉의 패스츄리와 크림이 적절한 비율로 어우러져 바삭 쫀득 대잔치라 혼자서 한 개도 거뜬하다. 쁠로에는 크러핀 외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패스츄리와 구움 과자들이 있지만 무조건 크러핀이 최고이고, 저녁에 가면 크러핀은 품절이니 낮에 가는 게 좋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들어온 베이커리로, 가로수길에 있는 1호점과 공덕에 있는 2호점이 있다. 이 곳의 주력 메뉴는 퀸아망이지만, 보기만 해도 맛있는 느낌이 팍팍 오는 베이커리 종류들이 가득해 빵순이 눈 돌아가게 하는 곳이다.
빵집마다 퀸아망이라고 부르는 빵의 정체가 참 여러 가지인데, 비파티세리의 퀸아망은 바삭하면서도 엄청나 부드러운 패스츄리 도넛 같은 느낌이다. 블랙세서미, 마차, 초코 등 여러 가지 플레이버가 있지만,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클래식도 맛있다. 손바닥만 한 도넛 정도의 사이즈인 퀸아망이 개당 오천 원 정도 하니 가격이 세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퀸아망을 제외한 다른 종류들은 가격도 괜찮은 편이다.
퀸아망 외에도 타르트, 스콘, 쿠키, 머핀, 크루아상, 마카롱, 케익, 샌드위치 등등 워낙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나는 여기에 가면 결정장애가 와서 겨우겨우 2~3가지를 고르고는 다음엔 저걸 먹어봐야지 하고 다음에 먹을 메뉴까지 정해놓곤 한다. 그래서 갈 때마다 새로운 종류의 빵을 먹었었는데, 지금까지 먹어봄 열몇 가지 중에 대부분이 이상으로 맛있었다. 특히 초코바나나 크루아상은 초코와 바나나가 아주 실하게 들어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아쉬웠던 건 라즈베리 초콜렛 스콘과 블루베리 레몬 스콘은 기대가 컸던 것에 비해 약간 말랑하고 촉촉한 식감이라 아쉬웠고, 버터모찌는 그다지 모찌모찌하지 않았다.
가로수길에서 비파티세리를 가면 좋은 이유는 1층부터 4층까지 층마다 다른 컨셉으로 다양한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어떤 자리를 고르는지에 따라 굉장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이런 훌륭한 인테리어에 비해 사람이 많이 없어서 높은 확률로 내가 원하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갬성 넘치는 카페여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나처럼 여유로운 분위기를 찾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아직 소개할 빵집들이 많이 남았는데, 빵 얘기가 나오니까 신이 나서 분량 조절에 실패해버렸다. 아쉽지만 남은 이야기는 다음번 PART2에서 이어가야겠다.
지금 이 순간도 빵을 먹으면서... 신발끈 씀
코스코스는 매주 금요일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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