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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cos Aug 20. 2020

바다가 녹았다

좀비 모기 재난 SF단편 소설 by.청새치


“도대체 어디서 들어오는 거야 X발”


바다는 좀기를 13마리째 죽이며 중얼거렸다.


2030년 8월, 좀모 재난사태(ZOMbie_MOsquito, 한국에서는 좀기사태라고도 부른다)가 일어난 지 반년이 지났다. 바다는 좀모사태가 일어난 뒤로 쭉 재택근무를 이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2019년 바이러스 사태 때 온라인 시스템을 충분히 갖춰놓은 터에 세계 각지에서는 큰 문제없이 이 재난에 대비가 가능했다.


문제는 재난 이후 처음으로 맞는 여름이었다.


‘그렇지.. 지금 방호복 입고 출근하기엔 너무 덥지... ’

좀모사태의 시작은 5년 전 겨울이었다. 겨울인데도, 모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간혹 겨울모기가 있다고는 했었지만 대부분 낮은 온도에 비실대다 죽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겨울에 눈이 안 온 지 5년째 되던 2029년을 기점으로 모기가 이상하리만치 많아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죽음이 19년 바이러스의 변종 재확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비말 감염이다 공기감염이다 의견이 분분했으나 결국 밝혀진 것은 ‘좀비 모기’의 존재였다. 모기가 빠르게 부화한 탓에 각국 하늘은 새카맣게 뒤덮였고 이에 미국과 중국이 모기 살충제를 대량 바다에 살포했는데, 이에 변종 모기가 탄생, 재난 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이 좀모사태는 종교계에서는 신의 심판이었고, 정치계에서는 상대 진영의 정치 공작이었다. 환경보호가들 사이에서는 필연적 일이었다.


-


‘지금부터 방역을 시작합니다. 종료 시간은 18시 정각입니다. 절대 방호복을 벗지 마십시오. 좀비 모기에 감염될 경우 반드시 독립된 공간에 자가격리 후 배포해드린 방역 키트를 개봉하십시오. 반복합니다.’


창밖으로 방역차가 지나갔다. 방역차가 지나가며 모기와 좀기들을 기절시키고 나면, 사람들은 빠르게 장을 보러 나가거나, 배달음식을 가지고 들어갔다. 하지만 방역의 효과는 20분 남짓이었고, 그마저도 모기만 죽일 수 있었다. 방역차 뒤로 시체 수거차가 지나가고 나면 수거되지 않은 좀기들이 곧 비실비실 일어나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ㅈ같은 좀기새끼들..’
아무래도 집에 구멍이 뚫린 게 분명했다. 바다는 메신저 퇴근 버튼을 누르고 냉장고에서 배달 음식을 꺼낸 뒤, 데우지도 못한 채 모기장을 열고 빠르게 들어갔다. 사람들이 좀기에게서 안전한 곳은 오직 집뿐이었지만, 오래된 주택에서 월세를 사는 바다는 집에서도 편히 쉬지 못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곳은 두 평짜리 모기장뿐이었다.
그녀가 모기장을 갖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예로 그녀가 작년에 6만 원에 사 둔 이 모기장은 지금은 298만 8천 원에 팔고 있었다. 그녀는 작년 여름에 이사를 온 뒤 집에 모기가 많은 것을 보고 기함했다. 그녀는 바로 살충제를 샀고, 그다음엔 잘 때 틀어둘 용도의 훈연 모기향을 샀다. 그것만으로 안되어 전기모기채를 살까 모기장을 살까 선택한 모기장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이 모기장이 없었다면 그녀는 잠도 제대로 못 잘 뻔했다.


바다는 다 먹은 배달음식 포장용기를 대충 한쪽에 미뤄두고 모기장 안에서 플랭크를 시작했다.
‘1..2..3...4....5...29...30’
땀을 흘리면 체온이 높아져 좀기를 유인한다. 그래서 이제는 밖에서 뛰는 것이 전 세계에서 금지되었다. 좀기 사태 이전 종종 한강에서 러닝을 하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운동은 이젠 플랭크와 스쿼트 밖엔 없었다. 물론 곳곳에 모기 프리존 필라테스/피티 샵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곳의 회원권 가격은 그녀 월세의 2배였기에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모기장 밖으로 그녀를 기다리는 모기들, 혹은 좀기들이 5마리가 되자 바다는 모기장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잠옷은 팔다리 살갗을 다 노출하고 있었지만 너무 더운 탓에 집에서는 방호복을 입고 생활할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나온 그녀는 벽에 대고 살충제를 조준했다.

‘한방에 다 죽여야 돼. 안 그럼 내가 죽을 수도 있어’
모기장 입구를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몸의 반만 빠르게 뻗어 살충제를 분사했고, 마치자마자 모기장으로 점프해 들어간 뒤 모기장을 잠갔다. 군더더기 없는 몸짓이었다. 다행히 미스는 나지 않았는지, 하얀 벽에 좀기 시체가 5마리 그대로 붙어 죽었다. 바다는 주위를 잘 살핀 뒤, 배달음식 포장용기를 가지고 나와 시체들을 처리했다.



-


바다는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낯선 사람들이 집에 방문했고, 문을 열어주는 순간 좀기들이 빠르게 들어와 그녀에게 달려드는 꿈이었다. 귓가에 앵앵 거리는 좀기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마치 춤을 추듯 몸을 털어내며 밤새도록 좀기를 잡는 꿈이었다.
‘헉’
그녀가 놀라 일어났다. 귓가에 울리는 앵앵 소리.. 그녀가 휴대폰 플래시를 벽에 비쳤을 때 모기장에 모기(혹은 좀기)가 한 마리 앉아있었다. 아, 깜짝이야... 그녀는 기지개를 켠 뒤 발가락을 벅벅 긁었다. 모기 소리가 들리면 온 몸이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간지러운 느낌.. 잠깐만..
그녀의 미세하게 발가락이 부어있었다.

‘아 X발!!!!’
그녀는 헐레벌떡 모기장을 젖힌 채 바로 밑에 둔 생존 키트 배낭을 낚아챘다. 부들거리는 손을 배낭 속에 넣어 휘저었다.  
그녀가 의식하지 못한 새에 그녀의 발이 모기장에 닿았을 것이다. 그 사이로 그 사악한 주둥이를 들이민 것이다.
‘좀기야 모기야... 제발 ... ‘
그녀는 배낭에서 탐지기를 찾아 발가락에 댔다.


삐-삐-—

-



당신은 좀기에 감염 되었습니다. 자가격리 후 빠르게 방역 키트를 개봉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반복합니다. 당신은 좀기에 감염되었습니다.

바다는 슬프거나 분노할 새도 없이 모기장을 잠그고 누웠다. 떨리는 손으로 가방 속에서 방역 키트를 꺼낸 그녀는 그녀의 작은 세계에 바르게 누웠다.

그리고,


‘뻥’

방역 키트를 여는 순간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그녀 위로 방역 키트에서 흰 가루가 뿜어져 나왔고, 큰 사이렌 소리가 5분간 크게 울렸다.


—-


방역복을 입은 하얀은 조심스레 노크를 했다. 역시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군. 들어가자. 선배가 말했다.
하얀은 문 주위로 둘러진 그물망에 좀기가 없는 지 확인한 뒤, 문을 뜯었다.

현관에서 보이는 작은 방, 그리고 그 안의 모기장.
그것은 좀기와 모기가 가득 찬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봉투로 보였다. 그 안에 누워있는 사람의 발가락은 새까맣게 덮인 채로 꾸물꾸물 좀기를 내뿜고 있었다.


‘선배 어떡하죠...? ‘
‘이미 늦은 것 같으니까 모기장만 건지자. 작업 시작해’
하얀은 하얀 가루를 다시 한 번 내뿜었고 새까만 좀기떼들이 잠잠해진 뒤 모기장을 걷었다.
선배는 화염방사기를 바다의 안식이었던 작은 방을 향해 내뿜었다.

최근 100년간 빙하가 녹은 것만큼 빠르게

바다의 옷가지와, 바다의 침대와,

바다의 냉장고가 녹았다.



End.


-코로나로 재택근무하는 청새치가

모기 잡는 꿈을 꾸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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