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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cos Sep 25. 2020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봤어요.

뒤늦은 드라마 리뷰 by. 독버섯

 지난 6월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전부터 몸이 평소보다 피로한 것 같고 똑같이 술을 마셔도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췌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정밀검사를 해보라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 회사를 다닐 때라 검진 예약을 미루다가 심각해진 코로나 + 의사협회 파업으로 뒤늦게 10월로 예약을 잡고 검진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췌장이 아프다고 하니 생각나는 병은 췌장암 밖에 없었다. 물론 나이도 어리고 그 정도로 몸상태가 심각하진 않기에 아니겠거니 하고 있지만 부모님 두 분 다 암을 겪었던 터라 조금 무서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암이면 어쩌나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레 아빠의 투병생활이 떠올랐고 당시 주치의가 생각나면서 의식의 흐름으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떠올랐다.



 

 슬기로운 감방생활을 재밌게 봐서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기대하며 봤지만 결론적으로 엄청나게 재밌지는 않았다. 응답하라 시리즈 감독과 동일한 감독이라 그런지 응답하라 시리즈 특유의 옛날 감성과 오랜 친구사이에 싹트는 사랑 등의 내용이 조금 진부했다. 감동과 신파에 초점을 둔 이야기, 이전 시리즈와 동일한 등장인물의 등장 (특히나 정경호는 슬기로운 감방생활과 동일하게 친구 여동생을 좋아하는 역할로 나옴) 이 조금은 뻔해 보이기도 했다. 또 아쉬웠던 점은 극 중에 나오는 의사들과 현실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다르다는 점이었다.


 물론 현실의 의사분들 중에도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고 겪은 병원의 환경을 고려했을 때 주치의가 본인의 환자를 한 명 한 명 진심으로 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극 중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유명한 의사들의 경우 예약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일 뿐만 아니라 주치의로 지정된다 해도 예약 시간보다 1-2시간 기다리는 것은 예삿일일 정도로 환자가 많다. 게다가 아픈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보니 환자들도 예민하고 그들을 여럿 대하는 의사와 간호사도 예민한 상태일 때가 많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아빠가 폐암 4기로 첫 진단을 받고 병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 당시 주치의는 폐암 약물치료 분야에서 좀 유명한 주치의였는데 치료가 끝날 때쯤 느낀 점은 주치의만 믿으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따듯하게 맞이해주고 환자를 먼저 챙겨주는 의사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더라. 본인이 맡은 환자가 워낙 많다 보니 하나하나 챙기기가 어렵고 따듯함은커녕 시큰둥한 태도만 아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병중이 심각해져 중환자실로 옮겼을 때도 다른 과의 검사를 기다리라는 소리만 하고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드라마 속 이야기는 다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의 주치의가 특이한 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중환자실에 있던 보호자들이 하는 소리를 들으면 특이한 건 딱히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나오는 환자 결혼식에 몰래 찾아가는 의사나, 보호자를 먼저 찾아가 일일이 설명해주는 의사를 보고 공감이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그렇게까지 하는 의사가 있겠냐 생각하겠지만 실제 중증환자의 보호자 입장에서 병원과 의사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것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드라마에 나오는 나쁜(?) 역할의 의사들이 내 주치의가 될 확률이 높다는 현실이 정말 아이러니하다.


얼마 안있을 검사의 결과를 걱정하는 독버섯 씀.



코스코스는 매주 금요일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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