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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cos Oct 02. 2020

1년간 해온 블로그를 접었다

29.8세의 오춘기

지난 일 년간 나의 취미는 블로그에 일상 글쓰기였다.
 
 처음 시작은 여행 갔다 온 후기나 일상을 적어두는 소소한 블로그였다. 그러다 공연, 쇼핑 리뷰들을 쌓았고 정성스러운 다이어트 후기도 적어봤더니 방문자가 늘어났다. 거기에 나의 실친들을 위한 나름 예능용(?) 뉴스 코너까지 마련해 둔 작지만 멋진 일기이자 자서전이자 신문이었다. 
 
 그러다 내가 평소처럼 휘갈긴 비난조의 글을 당사자가 읽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로 인해 타의로 취미를 박탈당했고 나에게 적개심을 가진 사람이 내 닉네임만으로 나의 사진과 신상을 어디까지 얻을 수 있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아버렸다. 고작 1년씩 해온 블로그와 유튜브인데 구글은 잔인하게도 내 닉네임만 치면 내 셀카와 일상 사진 모두를 검색 결과를 통해 모두 보여줬고, 나는 멘붕 해서 이를 최대한 청소하고 닉네임을 버렸다. 


 처음에 블로그를 닫을 때는 너무 화가 났다. 우선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듣기 싫었고 개인 공간을 침범당했다는 생각에 그 사람을 욕하기 바빴다. 시간이 지나고는 타협했다. 사실은 블로그를 닫기 한 달 전부터 블로그에 일상 글을 쓰는 것이 약간은 지겨워지기 시작했었다. 원래 한 가지를 꾸준히 하지 못하는 성격에 오래 블로그를 꽤 오래 써왔다 싶었다. 이제 슬슬 다시 유튜브를 해볼까... 하던 찰나였으므로 '재정비 시간'이라고 포장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친구들에게 입을 털어내고 나니 내 잘못이 보였고, 내 인성을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이 사건 말고도 많은 사건들이 있었음..) 그러곤 내가 별로 안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수용했다. 


 살아오면서 인간관계 걱정을 안 하기 시작한 게 고등학생 때부터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먼저 다가가서 친구 만들기. 나한테 관심 없는 사람은 싫은 사람. 다가오는 사람은 공통 관심사가 없을 때는 친해지기 어렵다. 그래서 내 관심사에 안 맞는 사람은 아웃 오브 안중으로, 날 싫어하든 말든 그대로 두기. 내 관심 친구 밖으로는 신경 쓸 체력도 여력도 없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회사를 4년 다니다 보니 남한테 먼저 관심을 갖는 것과 웃는 낯이 내 사회생활의 척도가 되었고 회사에 친한 사람이나 편한 사람을 꼽아보라고 할 때 한 손으로도 세고 남았다. 그리고 내 단점을 알게 되었다. 업무 처리할 때의 스트레스를 남들에게 표시 내는 것이라든지, 스몰 톡을 하면서 남이 했던 이야기를 기억 못 한다든지… 그간 내가 쿨하다고 생각했던 인간관계에 미련이 없는 점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 성격 별로구나, 나 별로 좋은 사람 아니구나 하는 자책이 계속 들었다. 급기야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간관계 상담도 해봤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도 블로그에 쓸만한 사건들이 빵빵 터졌다. 회사에서 추석 선물을 커피 쿠폰으로 받은 일, 대표님이 유통기한 지난 요거트를 일부러 준 일, 회사의 중요한 티켓팅을 해내서 만원을 받은 일, 회사에 잘생긴 인턴을 무려 9개월 만에 발견한 일, 마트에서 장 보다가 눈썹이 엄청 긴 할아버지를 만난 일, 블로그 대신 시작한 스페인어 공부 등등... 


 당장이라도 이걸 휘갈겨야 할 블로그가 없다는 점은 나를 더 힘들게 한다. 아직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중이라 블로그를 당장 어떻게 운영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다. 초등학생 때 인터넷 윤리교육에서 배웠던 내용처럼 최대한 개인정보를 숨겨야 하는지, 아니면 새로운 가면을 쓰고 긍정적이고 좋은 이야기만 써야 하는지,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되 친구들에게는 숨겨야 하는지...


 아직은 정리가 되지 않는다. 모르겠다. 아직은 블로그 대신하는 스페인어가 재밌기도 하고, 항상 사진을 찍고 올리던 지겨운 과정을 반복하지 않아서 시간이 많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지 않나 싶고.. 


그래도 블로그가 그립고 필요하다.
 

Five stages of grief
부정-분노-타협-침체-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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