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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cos Nov 27. 2020

대표님이 썩은 요거트를 먹으라고 줬다.

이직을 결심하게 되는 5가지 이유

어느 날 대표님이 나에게 오더니 이거 먹을래? 하고 말을 걸었다.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던 나는 뭔지도 모르고 감사합니다-하고 넙죽 받아봤다. 고구마가 그려져 있는 작은 요거트였다. 그는 덧붙였다. 

"그거 유통기한 딱 하루 지났어… 근데 내가 먹기는 좀 그렇고… 괜찮을 거야~!” 


물론 진짜로 썩은 건 아니었다. 포장이 빵빵하더니만 조금 신 맛이 나기에 물에 씻어 버리고 통을 분리수거를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직해야지’


1. 회사에서 내가 별 볼일 없는 취급을 당한다고 느껴질 때


위의 요거트 사건에서도 그랬듯 대표님의 화법은 부탁할 땐 부탁만 하면 되는데 묘한 말을 덧붙이는 것이 포인트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내가 이직을 결심한 첫 계기였다. 그의 화법은 이런 식이다. 


(아침에 갑자기 전화가 옴)
혹시 10층에 있니? (네) 
내 책상에 가서 서류 들고 6층으로 좀 갖다 주라, (네~) 
너 커피 안 마셨지? (네???? 네,,) 
커피 가지러 온다고 생각해~ (???)


나는 아침에 커피를 안 마신다. 그냥 부탁했으면 기분 좋게 갖다 줬을 텐데 뒤에 갖다 붙인 말 때문에 기분 나빴다. 

엥 뭐 이런 걸 가지고?라고 생각한다면 다음의 사례도 있다. 


가끔씩 대표님에게서 영어 커뮤니케이션 업무나 번역 업무가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 대표님이 본인이 영어를 잘하시는데도 나한테 시키는 거면 ‘바쁘신 가보다, 내가 영어 역량이 있어서 일을 맡기시는구나~’ 했을 텐데 업무를 주고 나서 꼭 와 가지고


“그래도 내 덕분에~ 영어공부하고 좋지?” 


이 거는 내 능력을 인정한 것도 아니고 업무로 준 것도 아닌 느낌~! ^^



그리고 또 있다. 이건 가장 최근 일인데,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와서 배(과일)를 내밀더니

"이거~ 지금 먹자~ ^^"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 있는 내가 만만한 건지 아니면 내 업무가 만만한 건지 모르겠지만 드시겠다니 칼과 접시를 가지고 가서 배를 깎아다 드렸다. 난 우리 엄마 아빠랑 먹는 과일도 안 깎고 자랐는데... 


대표님이 나한테 하는 취급이 곧 회사가 나에게 하는 취급인 것이다. 나의 이직 사유 1번이었다.


2. 돈이 적을 때


우선 일한 지 4년이 넘은 나의 연봉이 그룹사의 신입 연봉과 동일하다는 것을 밝힌다. 여기서 게임 끝 아닌가요?

(코시국 때문에 이번 연도 연봉이 동결돼서 그렇기도 하지만, 원래도 연봉 인상률이 형편없어서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지금 당장 때려치우고 중고 신입으로 다른 대기업 들어가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건 네 줄로 마무리해도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고 믿고 다음으로 넘어가 본다.)


3.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을 때


일단 내가 일하는 산업군은 바쁘고 야근 많다고 소문난 분야이다. 그런데 나는 만년 칼퇴에 야근이나 초과근무는 1년에 많아야 3일쯤 한다… 매출이 나오는 부서도 아니고 달성할 목표도 딱히 없다. 오죽하면 대표님이 직원들에게 하는 말이 ‘공무원처럼 다녀~’  그의 화법은 한결같네~ 

 물론 내 직업을 설명하고 멋지게 포장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이제 그럴 힘도 없다. 사실 나는 어디에 내놔도 편한 곳만 가는 이상한 팔자를 가졌다. 다시 한번 내 경험을 등판시켜보면 

1) 한 겨울에 놀이공원 아르바이트 지원하면서 고생할 준비 했는데 실내 사무직이 되어버림 

2)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는 시설 공사 기간에 걸려서 내 업무는 주로 사람들 환영해주기, 손님들이랑 핀 교환하기였음. 진짜로 롤 이름이 ‘greeter(반겨주는 사람)’, ‘pin trading(핀 교환)’이었다. 물론 가끔 힘든 롤도 걸릴 때가 있긴 했지만 연말에 남들 13시간씩 일 받을 때에도 나는 하루에 7시간 하고 꼭꼭 퇴근함
3) 또 다른 놀이공원 아르바이트했을 때도 주로 쇼 진행하는 롤이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10분씩 앉아있곤 했음… 아 물론 햇빛 아래에서 힘들게 일한 날들도 있긴 있었음


근데 이것도 쓰다 보니까 내가 사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내 역량이 너무나도 커서 하찮거나 편하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의심이 들긴 한다. 아무튼 이런 사주팔자를 타고난 나는 편한 포지션에 있다가도 찰나의 바쁜 순간을 생각보다 더 좋아했었다. 


4. 사람들과의 관계를 리셋하고 싶을 때


 내 경우 사람들과 너무 안 친해서 문제다. 일단 내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동갑 친구가 없었고, 취업을 일찍 해서 그런지 선배들은 3살 이상 차이나고 들어오는 후배들은 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요즘은 아주 적다. 회사 사람들과 그간의 스친 정이 있어서 어떤 사람들과는 스몰 토크를 하긴 해도 다른 사람에 대해 더 궁금하진 않고, 그들도 딱히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우리 회사의 구성원들은 젊어서 그런지 개인주의가 정말 대단해서 경조사에도 서로 돈을 안 보낸다.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고 다들 안 보내고 있었다. 문득 회사를 다니는 4년 간 새롭게 친해진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인간관계에 현타가 오면서 다 리셋하고 새로운 페르소나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 사람들과 너무 친해서 이직하고 싶어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내 경우에는 새로운 회사에서 좀 더 쾌활하게 생활하고 싶고, 회사에서 만났지만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친구도 사귀고 싶다. 


5. 이력서 쓸 때


그렇게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쓰는데 진짜 경력이랄 게 별로 없어서 하루빨리 탈출해야겠다고 결심함



6. 결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입 밖으로 내뱉을 이직 동기는 커리어 도약의 시기임을 어필할 것이며 

입사 후 포부는 내 역량과 경험으로 본인과 귀사의 동반성장일 것이다. 

그리고 진짜로 그럴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 꼭 이직에 성공할 것이다!



- 자소서 첨삭 10만 원에 고민하는 자린고비 청새치 씀


코스코스는 매주 금요일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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