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으로 사는 게 피곤한 이유 by. 신발끈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별 것 아니지만 은근 스트레스를 받는 짜증 나는 순간들이 있다
회사의 점심시간은 열두 시부터다. 예전에 일하던 팀은 점심시간이 되면 누가 먼 저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점심을 먹으러 갔었는데, 지금 팀은 희한하다. 열두 시가 가까워져 오면 갑자기 다들 엄청 바빠진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키보드만 열나게 두드리고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그래서 매번 점심 먹으러 가자고 스타트를 끊어주는 멤버가 세명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나다. 셋 중에 한 명이 일어나 점심을 먹으러 가려고 하면 그제야 하나둘씩 느적느적 일어나서 따라 나온다. 진짜 바쁘거나 점심시간에 관심이 없는 거면 이해는 할 텐데, 팀장 눈치 보느라 먼저 일어나질 않는 거다. 그렇게 해서 열몇 명이 겨우 다 일어나서 모이면, 그때부턴 메뉴를 골라줘야 한다. 하나같이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다고 하면서도 막상 제안을 하면 누구는 이게 싫고, 누구는 저게 싫다고 한다. 팀장님이 안 가는 곳 빼고 대리님이 싫어하는 곳 제끼면 선택지는 늘 몇 개 없으면서도 매번 우리 어디 가요? 하면서 누가 골라주길 바라며 서로 눈치 보고 서있는다. 이 상황이 매일 반복되니 요즘은 내가 먹고 싶은걸 딱 정해서 저는 이거 먹을 건데 같이 가실래요? 하고 같이 가려면 가고 말려면 말라고 한다. 언제까지 이 팀에서 막내 노릇을 해줘야 하는지 피곤한 일이다.
대부분 회사들이 다 그렇겠지만, 리더들은 속도광이다. 매번 더 빨리 더 빨리를 외치며 안 되는 거 알고 있으니까 안된다고 하지 말고 되게 만들 방법을 찾아오라고 한다. 그런 분노유발 리더들이 되게 좋아하는 게 단톡방이다. 오만 담당자를 싹 다 불러 카톡 “핫라인”방을 만든다. 그중에서도 역대급인 단톡방이 있는데 무려 542명이 모여있는 ㅇㅇㅇ핫라인 방이다. 이년 전쯤이던가 어떤 긴급한 이슈가 발생해 품질팀 대리 한 명이 관련된 사람들을 한데 모아 초대형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이걸 본 윗사람 한분은 매우 흡족해하여 다른 팀들까지 불러 모았다. 한때 육백 명이 넘어갈 정도로 인원이 폭발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슬쩍 나간 사람들이 생겨 지금의 수준이 되었는데, 아침이건 밤이건 평일/주말 가리지 않고 올라가는 빨간 동그라미 속 숫자는 메일이던 알람이던 바로 해결해야 마음이 편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압박이 된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도 그 방을 없앨 수 없게 되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단톡방은 또 다른 단톡방을 만든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플젝 인원이 전부 초대된 단톡방이 생긴다면, 그중에서 리더가 빠진 실무자 카톡방이 생긴다. 또 그중에서 상품기획자들끼리 긴밀하게 소통하기 위한 카톡방이 생기고, 상품팀과 광고팀의 이슈를 공유하기 위한 카톡방이 생긴다. 이렇게 단톡방은 또 다른 단톡방으로 자꾸만 새끼를 쳐서 안 그래도 소통할 유관부서가 많은 나는 지금 단톡방만 수십 개여서 다 읽기도 벅차다. 언젠가 회사를 나가면 단톡방에서도 싹 다 나가버릴 날을 기대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소통, 소통을 강조하는데 정작 중요한 소통을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업무가 너무 많아 어쩌다 놓치는 것은 이해하지만, 매번 놓치는 사람의 경우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기획팀 모 대리는 매번 바뀐 일정을 우리 팀에 말해주지 않아 앞당겨진 일정을 뒤늦게 알게 되어 야근을 하게 된다던지, 안 써도 됐을 비용을 쓰게 만든다. 이 사람은 자신의 업무 우선순위에서 우리 팀에 소통해주는 건 한참 뒤로 밀려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일을 처리하기 바쁘니 우리 팀까지 신경을 못 쓰는 것 같은데, 나도 일을 해야 한단 말이다. 소통을 안 해 주는 사람들은 혹시 이슈가 생기면 바로 알려달라 미리 당부하고, 이런 곤란한 점이 있으니 다음엔 꼭 알려주셔라 부탁을 해도 안 통한다. 방법이 없다.
늦게까지 남아서 일 하는 사람이 열정 있고 일 잘하는 사람일 거란 편견은 이제 정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의 야근 강도는 매 해 조금씩 개선되어 한 때는 대부분이 정시 퇴근을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회사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어서인지 무리한 계획들이 늘어가고, 야근도 늘어가고, 우리 팀에서는 심지어 눈치 보느라 괜히 조금씩 늦게 퇴근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이게 정말 황당한 이유는 우리 팀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업무량이 적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이 줄어들면 빨리빨리 하고 제때 퇴근을 하면 될 텐데, 팀장이 눈치를 보고 퇴근을 안 하니 다른 사람들도 바쁜 척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이럴 때 눈치껏 남아서 일을 열심히 하는 인상을 심어줘야 사회생활을 잘한다 하겠지만, 요즘엔 그럴 마음도 안 생겨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하고 나오는 퇴근 알리미 멤버가 되었다. 다른 부서에 불필요한 야근을 없애기 위해 퇴근할 때 인사 안 하고 가는 문화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 좋은 거 우리도 좀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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