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주거 환경에 대한 최초의 고민

존나게 버틴, 타지방 유목민이자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하는 디자이너의 탄생

by 무엉

초연결 시대 인류의 비극?

인생에 정답이 없뜻, 삶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세상이 정한 일반적인 방식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삶에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며, 정답이 없음을 끓임 없이 상기해야 한다." 유인원 시절부터 집단을 이루며 살아왔던 인류의 오래된 전통이 만들어낸 DNA와 이름 모를 호르몬의 작용으로 '무리', 아니, '사회'라고 하자! '사회'에서 요구되는 규율 또는 규칙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경우, 우리 모두는 '불안'을 느끼도록 설계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집단의 소음에서 벗어나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극도의 '불안'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이 불안은 초연결 시대 인류의 비극일까? 아니면 해피엔딩의 결말을 선사할 도파민일까?


존버 타지방 유목민 최초의 고민

울산에서 20년, 대구에서 5년, 서울에서 3.5년, 한국이라는 나라를 '좌측 대각선 방향'으로 살아봤다. 자타공인 "타지방 유목민"이라고 할까? 지방 출신의 "타지방 유목민"에게 종 종 진골 딱지를 붙이는 냉혈한 서울, 진골이면 다행, 가끔 두품제로 내려가기도 한다. 깍쟁이들이 득실거리는 차가운 도시에서 2년 정도 생존했을 때 즈음, 처음으로 독립적인 고민을 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어디에 살아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일까?" 주입식 교육으로 점철된 한국의 교육환경에서, 어디!? 우리에게 질문하고, 고민하라는 어른이 있었던가? 당연히, 서울에 디자인 회사가 많고, 취직과 이직, 나아가 디자이너로서,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발전 가능성을 생각하면 당연히 'seoul'에 입성해야 했던 내가 서울에서 존나게 버틴 2년의 시점, 카페 창가를 통해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인생 최초의 고민을 했다. 그리곤, 허공의 하늘에 몇 가지 가정을 세우기에 이른다. 2년 전 타지방 유목민인 "내 마음의 소리"는 이러했다.




내 마음의 소리>


마음의 소리 : 야! 이아영, 잠시만, 서울이 집이지? 그렇지!


나 : 주민등록주소가 그렇지~ 전세지만... 부모님이 도와주셨지만...


마음의 소리 : 너 직업이 디자이너지? 컴퓨터만 있으면 일하는 거 가능하지?


나 : 야, 컴퓨터로 재능 봉사하냐? 돈 줄 수 있는 고객이 있어야 일을 하지!


마음의 소리 : 한국 작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나 : 작지~ 이동성을 생각하면. 통일 안 된 게 다행이다.. 젠장. 너무 작지.


마음의 소리 : 잠시만, 그... 일본에 유턴족인가? 하는 개념도 있잖아! 도시랑 농촌이랑 유턴하는!


나 : 그래, 있지! 글로벌라이제이션과 로컬라이제이션이라는 대칭되는 개념이 있지! 세계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즉 로컬 중심의 활성화... 아... 잡소리 그만 치우고!


가정 1) 서울이 중요 거주지이고, 지방에 제2의 거점지가 있다면.

가정 2) 두 지역을 양립하면서, 수익구조를 양쪽에서 구축한다면,

가정 3) 적어도 지금보다, 넓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가정 4) 도시와 농촌을 양립하면, 정서적 균형이 맞아서... 정신건강에 좋을지도 몰라!!

가정 5) 그리고 다른 의미로 자생력이 상승하겠지!


가정 6)..... 그래. 그만하자, 니년은... 아프리카 우간다 일직선 도로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년이야 ~

가정 7) 라이프 스타일 정도는 실험해봐야, 디자이너 아니야?

가정 8) 똘끼가 충만하면 개고생이 된다 하지!



존버 타지방 유목민의 전라도 입성

말은 될 것 같은 위의 가정을 생각해 낸 후, 몇 달 후, 나는 뜬구름 잡는 뜻한 저 위의 가정들을 실행하고, 맨땅에 처박히고, 1년간 도시와 농촌을 아우르는 생활을 해냈고, 지금 이렇게 앉아! 약 4년 만에 획득한 백조의 신분으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사이에서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어, 증발되어 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라이프 스타일을 실험하는 최초의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은 욕망을 꾸역꾸역 눌러 담아 글을 쓰고 있다.


약 1년 6개월 전 내가 흘러간 농촌은 산, 들, 바다가 아담한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전북이었다.

나는 그렇게, 수백 년간 경상도에 터를 잡고 살아온 우리 집안 최초로! 전라도에 입성하게 됐다.

동해보다 포근하고 따뜻한 서해를 품은 전북 앞바다


존버 타지방 유목민 프로필 >

1~20세 : 울산에서, 울산 토착민인 어머님, 아버지와 살았음

20세 : 19세 대학 낙방, 20세 서양화에서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서울에서 입시 미술 유학을 떠남

(타지방 유목민의 시작)

21세~26세 : 일찌감치 수시 전형 대구 소재의 대학에 입학하여 대구에서 대학시절을 보냄

26세~28세 : 서울에서 첫 직장을 시작으로 존나게 버팀

28세 어느 날 :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생애최초 고민함

28세 어느 날 : 돌연 도시농촌양립라이프! 라는 실험을 당행

29세 아홉수의 9월 : 도시농촌양립라이프 시즌 1 종료

29세 아홉수의 12월 : 라이프 스타일을 실험했던 디자이너로 남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함

현재 : 하나의 국가에서 4개 이상의 지역에 살아본 존버 타지방 유목민이 됨

미래 : 여동생의 미국 박사과정 준비 이슈로, 동생 덕 보아, 미국 진출을 꿈꾸는 중 (동생아. 언니는 너 따라 미국 취직하거나, 너 한테 자극 받아서 유럽 가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