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서울에서 만난 첫 번째 집.

연희동에서 8개월의 여정

by 무엉

집 그리고 도시 서울을 이해하다.


도시농촌양립라이프. 전대미문의 라이프 스타일 실험 후일담을 만천하에 공개하기 전에, 짧은 서울살이 중 내가 거쳐갔던 집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집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이 없었다면, 결코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어느 날 뇌리에 박힌 가정(1화 참고)을 실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4년에 가까워지고 있는 서울살이 기간 중, 나는 집을 세 번 바꾸었다. 이 세 번의 거주지 이동을 통해 나는 서울의 양면성을 봤다.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매우 관심 있는 뜻, 하면서도 매우 관심 없다. 출퇴근길 스마트폰으로 콩나물시루가 된 지하철에 몸을 실을 수 있다면 오늘 임무와 소임을 다한 것이다. 제 한 몸 버티고 서 있는 것이 기적 같은 이 도시에서 타인에 삶에 대한 관심이라니,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삶을 택하리.



동남아시아에 '패기'라는 청년이 살았다. 일제 치하와 전쟁, 보릿고개 등 갖은 고생 다하다, 멋들어진 아파트를 손해 넣게 됐다. 그리고, 두 다리를 뻗고, 방구석에서 tv 채널을 돌린다. 지난날의 고생을 보상 받기라도 하뜻, 고도성장도표와 함께 그의 인생도 고공 행진했고, 그의 아파트 값도 고공행진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날을 회생하며 중년을 지나 노년을 맞이했다.


한 편


'패기'의 손녀 '무념' 은 스0벅0 카페에 앉아, 오늘도 [생존]을 위한 묘안을 고민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정말 이상한 나라에 태어난 걸까? '무념' 은 태어나서 한 번도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의 손녀에게 서울이 허락한 집은... 월세 45만 원에 4.4평! 정도 있다. 신의 축복일까? 옵션으로 우울증 걸리기 딱 좋은 북향이다.




기본 50만 원이 육박하는 월세집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복'이 많은 경우 중 하나였을 지도 모른다. 경제적 원조는 있었지만, 부모 살 파먹으며 기생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4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틴 나는 집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한 자율권을 독립으로 쟁취했다.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을 제외한 삶에 필요한 모든 자원은 온전히 내 통장 잔고의 재정을 기반한 것들이다.



다들 어디에 살고 계시나요? '안녕'히 잘 살고 계시나요?



45만 원의 월세집에 담긴 가치, 주인아저씨의 주택대출 은행이자.

서울 살이를 시작한 곳은 김영삼 전 대통령과 연이 닿은 동네로 나름 깔끔하고 품격 있는 벽돌의 아담한 빌라가 많은 연희동이었다. 그 동네의 여러 선택지 들 중 나와 우리 집 경제 조건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집은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45만 원이었다. 45만 원 월세가 조금 저렴하게 느껴지는가? 그렇다. 나의 첫 집은 북향으로 우울증 걸리기 딱 좋은 특급 옵션을 탑재한 스위트 원. 룸.이었다. 70대 접어든 나름? 깔끔한 어르신이 집주인이었는데, 집을 보러 온 내게, “이전에 살던 사람이 고시에 붙어서 지방에 취직해서 나갔어!” , “몇 층에 어느 아가씨는, 대학생 때부터 살았는데, 어디 취직해서 나갔어!” 등 등 입주자들의 무용담을 연신 늘어놓았다. 이 집에 몸을 담으면 나름 괜찮은 인생이 시작되는 묘한 부적을 강매하려는 것처럼. 단 보증금 천만 원에 무이자 24개월, 매월 카드 할부 45만 원으로 말이다.


당시 나는 디자인 전문회사 인턴으로 근무할 때였는데, 말로만 듣던 생활고와 마주했다.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보릿고개였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날개 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빠져나갔다. 그 기간 월화수목금금금. 하루도 거르지 않는 야근과 주말 근무로 돈이 굳을 것 같은 조건이었만, 어찌 된 영문인지 내 통장 잔고의 돈들은 굳지 않았다. 돈이 들어오면 나갔다. 3개월인 인턴이 6개월이 되고, 7개월이 됐을 때, 나는 첫 회사를 정리했다. 요즘 말로 아니, 2~3년전 단어로, 열정 페이였다. 열정으로 버티기엔 세상이 "너무 웃겼다." 정규직은 무산됐고, 달랑 30만 원 남은 통장을 들고 제주도로 날아갔다. 그리곤 무려 오션뷰가 보이는 호텔을 예약해 버리고 2박 3일 동안 호텔 침대에 누워서 먹고, 잤다. "세상이 웃겼다."

"세상이 웃겨서" 떠난 첫 제주도 여행에서 만난, 위미리 동백군락지


"이제, 나도 몰라!" 하는 마음, 어쩌면 그렇게, 밀레니얼 세대인 우리가 말하는 소확행이 그렇게 태동했는지도 모른다. 통장의 잔고는 마이너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곤, 보란 뜻이 울산 부모님 집에서 잠시 효도방학을 보내겠다.며, 동네방네 소문내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통장 잔고는 궁상맞아졌지만, 나는 마이너스 통장 따위 만들지 않았다. 그즈음, 내 주변 친구들 중 몇몇이 마이너스 통장을 쓰기 시작했다.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연희동 무려 스위트 홈, 나의 첫 집은 남동생이 서울 소재의 대학 다니게 되면서 정리하게 됐다. 방이 하나 더 있는 투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단 여기서 문제가 있다면, 계약이 끝나기 전 이사를 해야 했기에 세입자를 넣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사실을 알렸을 때, 비교적 점잖은? 주인아저씨의 표정은... 탐탁지 않았다. 집이 더러워졌다. 곰팡이가 생겼다. 등 등 온갖 트집을 다 잡기 시작하셨다. (세상은 이렇게 또 웃겼다.)


45만 원 월세집에 뭐가 그리 큰 가치가 담겼겠는가? 굳이 그 집에 담긴 가치를 찾자면, 주인아저씨가 피땀 흘려 일하고 모은 돈에 주택담보를 보태어 투자한 그 위대한 집의 은행이자를 값아 나가야 하는 집주인의 조급함 정도. 8개월 가까이 거주하면서 내가 집주인 아저씨의 집에 보태드린 가치가 있다면, 북향이지만, 바질 싹은 자라더군요! 나는 그렇게, 북향의 집에서 여리고 여린 바질싹 무더기를 키워냈다.

무려 스윗홈 나의 서울살이 첫집에서 키우기 시작한 바질 화분
'북향' 45만원 원룸에서 바질싹 무더기를 튀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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