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무너지는 세계 - 2화. 어쩔 수 없다?!
아빠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는 플라스틱으로 된 뚜껑을 열고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을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약속 하나 해줘.”
내가 말했다.
“엄마한테 말했던 것처럼 내게도 말해줘. 완전히 똑같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자세히 말해줘야 돼.”
“그래. 아빠도 그러려고 온 거야.”
하긴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나를 따로 만나 직접 말하겠다고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아직 어리니까 진짜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그럴듯하게 둘러대거나 엄마를 통해 전달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일단 엄마 때문은 아니야. 예빈이 때문도 당연히 절대 아니고. 두 사람한테는 미안할 뿐이야. 그런데 아빠로서는 어쩔 수 없어져버렸어. 엄마한테도 그렇게 얘기했고.”
그놈의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엄마를 통해서도 여러 번 들었다. 대체 그 ‘어쩔 수 없는’ 이유란 뭐란 말일까?
“아빠가… 함께 하고 싶은, 아니 함께 해야만 하는 사람이 생겨버렸어. 만나버렸어.”
아.
나는 놀라고 또 놀라지 않았다. 엄마한테 이혼 얘기를 듣자마자 가장 처음 생각났던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날, 바람났냐는 내 물음에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니라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 아빠 역시 그렇게 ‘막장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이유로 이혼을 해달라고 할지는 예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 놀라운 일이고, 동건이는 이미 1학년 때 겪었던 일이고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일이기에 놀랍지 않았다.
내가 아는 동건이와 내가 모르는 다른 아이들도 겪고 있을 일이 내게도 일어난 것뿐이었다.
“그럼 ‘그 사람’ 때문에 엄마랑 나를 버린다는 거네? 아빠도 동건이네 엄마랑 똑같은 사람인 거네?”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이럴 때나 쓰는 말이 아닐까. 나 같은 어린이는 아직은 제대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게 당연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소리를 꿱 지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거나 욕을 하거나 아니면 폭력을 쓰지는 않았으니 이 정도면 아주 잘하고 있는 것 아닐까.
“변명 같겠지만… 새로운 사람은 아니야. 엄마 만나기 전에 만났던 사람인데 최근에 어떻게 다시 만났어. 그런데 그 사람이… 병에 걸렸는데… 아빠가 그 사람과 있고 싶어서 그래.”
아빠의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왜 이혼해야 하는 일인데? 그 사람 가족이 없어? 아니, 아픈 사람이면 할아버지한테 하듯이 하면 되는 거잖아. 엄마가 안 된다고 한 거야? 그래서 이혼하겠다는 거야?”
나는 엄마 얼굴을 보며 물었다. 엄마는 괴로워하는 얼굴이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아니야. 엄마는 괜찮다고 했어. 엄마는 훌륭한 사람이니까… 아빠의 어리석은 마음도 이해해 주었지. 그럴 수 있다고 해주었지. 하지만 아빠는… 그러니까 예빈아, 이건 다 아빠가 견딜 수 없어서 생긴 문제야. 다 아빠 잘못이야.”
“그러니까 대체 뭐가 아빠 잘못이냐고. 뭐를 견딜 수 없단 건데?”
“그 사람과 함께 하고픈 마음을 엄마나 예빈이한테 속이고 싶지 않았어. 아빠 마음을 속이는 게 두 사람에 대한 가장 큰 배신이라고 생각했어. 그렇다고 그 사람을 포기할 수도 없었어. 두 사람한테 거짓말하는 것과 그 사람을 포기하는 것, 아빠는 둘 중 어느 것도 견딜 수 없었어.”
“그럼 결국 그 사람을 선택한 거네? 우리보다 더 사랑한다는 거네?”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니 그게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빠가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미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람… 죽을병이래? 그래서 아빠가 곁에 있겠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아니면 동건이네 엄마처럼 임신이라도 했어? 그래서 이러는 거야?”
“아니 어디서 그런…. 그런 거 아니야, 예빈아.”
아빠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손사래를 쳤다.
“아빠는, 엄마한테도 말했지만 그 사람과 그런 일 전혀 없었어. 예빈이 허락까지 다 받고 정리할 것 정리된 후에… 그 뒤에나…. 정말이야. 아빠가 말한 것처럼, 그런 마음이 생긴 것만으로도 아빠는 너무 괴로웠고…. 그러다 아빠 친구가 갑자기 죽어버린 그날 결심한 거야. 더는 아빠 마음을 숨기지 않겠다고. 이렇게 살다가 죽고 싶지는 않다고.”
아빠 친구가 갑자기 돌아가셨다고는 하지만 아빠는 엄마가 워낙 잘 챙겨서 꼬박꼬박 건강검진 빼놓지 않고 받아왔고 외갓집에서도 늘 보양식을 보내주셔서 아주 건강하다. 그리고 아빠는 바쁜 와중에도 축구모임도 자주 나간다. 그런데도 살이 빠지지는 않았지만.
아빠는 동건이네 아저씨와는 다르게 호리호리한 적이 없었다. 워낙 작고 약하게 태어나서 아빠가 어렸을 때는 형편이 어려웠는데도 보약을 끊이지 않게 먹이며 키웠다고, 그래서인지 체격이 커졌지만 살도 올랐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셨다.
아무튼 애초에 아빠가 건강하지 않았다면 사업과 할아버지 일로 그렇게 바쁘게 지내면서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고 지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도 그렇게 아프시면서도 어느새 팔순을 바라보는데, 요즘 같은 백세시대에 아빠는 앞으로 40년은 문제없을 것이다.
아무리 친구 일로 충격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나는 아빠가, 나 같은 어린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사람 죽을병도 아니고 임신한 것도 아니면,”
나는 이제 판결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또 아빠 말대로라면 아빠는 그저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 마음을 속이기 싫은 거라고 했으니까,”
나는 아빠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마음을 바꿔. 그 사람 더는 만나지 말고 생각하지도 말고 잊어버려. 그러면 되겠네.”
“예빈아.”
잠자코 있던 엄마가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하지만 엄마 말을 따를 생각은 없었다.
“바로 당장이야 안 되겠지.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하니까 아빠는 마음을 바꾸려 노력하고 엄마랑 나는 기다려주면 우리는 가정을 지킬 수 있을 거야.”
탕탕탕. 내 머릿속에서 판사봉이 멋지게 울렸다.
나는 학교 토론시간에 그랬던 것처럼 가슴을 쫙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나의 논리 정연한 판단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요즘의 나는 온통 충격적이거나 우울한 일들만 겪고 있어서 이런 기분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나는 모처럼의 승리감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 짧고도 짧은 나의 행복감을 깬 것은 엄마였다.
“아니, 예빈아. 지금 이 자리는 아빠의 말을 들어주기로 한 자리지 네가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야. 아빠 말 마저 듣자.”
이럴 때의 엄마는 밉다.
엄마의 단단함은 평소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나를 붙잡아주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막아주는 커다란 우산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모처럼의 흥을 깨고 찬물을 끼얹을 때면 심술쟁이가 따로 없다.
“아빠도… 아빠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예빈이 말처럼 해보려고도 했어. 그런데 그게 안 돼. 누굴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결심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예빈아.”
“왜 그게 안 돼? 어른이잖아. 어른이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내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어른이라고 네 말대로 그렇게….”
어른인 아빠는 어린이인 나에게 크게 혼나는 것처럼 어쩔 줄 몰라했다. 당연한 일이다. 아빠는 커다란 잘못을 했으니까!
“못한다고?”
“예빈아, 아빠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근데 아빠 마음을 돌리는 건 아빠가 할 수 없는 일이야.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을 얘기해 줘.”
“그럼,”
나는 온 힘을 다해 생각했다. 어른인데도 마음을 바꾸는 게 안 된다고 하니 마음과는 상관없으면서 그것보다 강한 무언가를 생각해내야만 했다.
“그래, 책임! 엄마와 나, 우리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없어 아빠는? 그리고 또, 약속! 결혼하면서 엄마랑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한 거잖아! 그 약속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미 말해버렸고 취소할 생각도 없었지만, 사실 말하면서도 ‘약속’이라는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약속이란 것은 그다지 믿을 게 못 된다. 그것이 그토록 믿을 만한 말이었다면 세상에 이토록 이혼이 흔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라는 말도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오지만 그것도 말뿐인 것 같다. 동건이 말고도 이혼가정의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 그 현실에 나까지 한 자리 차지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건 예빈아…, 엄마와 합의한 거야. 물론 아빠가 백 번 잘못했고 평생 미안해야 할 일이지만,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기고 마음대로 안 되는 일도 생기고 그래. 엄마와의 일은 어른들 일이고, 예빈이 너에 대해서는 최대한 시간 내서 자주 만나고 아빠가 해야 할 일은 최대한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야. 그것만은 약속해. 엄마가 허락만 해준다면 우리 셋이서 다 같이 식사도 하고 전처럼 산책도 하고 그러자, 응?”
결혼식장에서 사람들 모아놓고 했던 약속도 저버렸으면서 달랑 엄마와 나 둘만 앉혀놓은 자리에서 또 다른 약속이라니. 내 아빠가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다. 엄마는 알았을까? 아니면 엄마도 나처럼 아빠가 한심하고 뻔뻔한 것에 질려서 이혼하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아빠 말 믿을 수 없어. 내가 아빠를 믿을 수 없는 거 아빠도 인정하지?”
“아빠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될까, 예빈아. 지금까지도 아빠가 좋은 아빠는 아니었지만, 너무 바빠서 예빈이랑도 시간 많이 못 보내고. 대신 앞으로는 지금까지 못한 것까지 보충하도록 할게.”
“아빠, 말이 된다고 생각해? 같이 살아도 아빠 얼굴 많이 못 봤는데, 따로 살면서 아빠는 ‘그 사람’도 아프다면서, 어떻게 전보다 더 나를 자주 보고 해?”
“아니야, 할 수 있어. 아빠 일을 줄일 거거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 내가 아빠 일 좀 줄이고 우리도 여행도 좀 다니고 그러면 안 되냐고 몇 번을 졸랐었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아빠는 지금은 할아버지를 좀 더 편하게 모셔야 하고 나중에는 내가 유학이라도 가고 싶어 할 때를 대비해 일을 더 하지는 못하더라도 도저히 줄일 수는 어렵다고 했었다.
우리 예빈이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게 해줘야지, 아빠는 잊을 만하면 그렇게 말했었다. 엄마와 둘이 있을 때 내가 그 일로 투덜거리면, 엄마는 자라면서 못 받은 걸 자식한테는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라고 했다. 그것이 아빠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아빠를 이해해 주라고 말했다.
그랬던 아빠가 스스로 일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나에게 좀 더 신경 쓰기 위한 것이라지만, 그보다는 아빠가 잊으려고 마음먹어도 도저히 안 되겠다는 ‘그 사람’ 때문이라는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화가 났다.
오늘 아빠를 보는 내내, 아니 그전부터 이미 아빠한테 화가 나 있었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 분노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것이었다.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하늘로 솟구칠 것 같은, 드래건이 입으로 내뿜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같은 화가 났다.
그런데 지금의 느낌은 땅속으로 꺼져버릴 것 같은, 지난봄 제주도 여행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해 본 스쿠버다이빙 체험 때처럼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자와 웃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눈앞에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상상 속의 아빠는 여자에게 무척 다정했다.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던 환한 미소를 가득 띤 채였다.
그 순간 나는 나의 기분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빠의 마음을 앗아간 ‘그 사람’에 대한 질투였다. 가족을 버리고 행복한 아빠에 대한 역겨움이었다.
“안 돼. 허락 못해. 이혼 못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나는 말하는 데 집중했다.
“따로는 살아. 나도 아빠 얼굴 보기 싫으니까. 근데 이혼은 안 돼. 나 다 크면 그때 가서 하든지 말든지 해. 지금은 안 돼. 난 이혼한 집 애가 되기 싫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문을 닫지도 않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나의 세계가 지진이 난 것처럼 무섭게 흔들리고 폭탄을 맞은 것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무서웠고 화가 났고 또 슬펐다. 나는 침대에 누워 발버둥 치며 소리 지르며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