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무너지는 세계 - 3화. 그래도 싫어!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우는 동안 엄마아빠가 무엇을 했는지는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실컷 울어서 더 이상은 울 기운이 없어졌을 때 내 등을 쓰다듬던 엄마의 손길이었다. 나는 몸을 돌려 엄마에게 안겼다. 엄마는 아기한테 하듯 나를 토닥였다.
“이혼 안 돼. 나 대학교 가면 그때나 해.”
나는 울음 때문에 딸꾹질을 하듯 숨을 넘기며 겨우 말했다.
“지우가 한 말은… 잘못된 거잖아. 신경 쓸 필요 없어.”
엄마가 달래듯 말했다.
“어쨌든 싫어. 그런 말, 잘못된 거라고 해도 조금이라도 그런 말 듣기 싫어. 이혼가정, 한부모가정…. 그런 거 다 싫단 말야.”
“그러면 예빈아. 이혼만 안 했지 남처럼 사는 건 좋아? 서로 보면 어색하고 불편하고 그렇게 사는 건 괜찮아?”
나는 일어나 앉았다. 하도 울었더니 머리가 핑 돌며 어지러웠지만 꾹 참았다. 나는 안경을 다시 쓰고 엄마를 보았다.
“벌써 한 달 넘게 그렇게 살아봤는데 뭐. 별것도 아니던데.”
사실이었다. 아빠는 한 달이 넘도록 할아버지 댁에 있는 중이었고 내가 아빠 얼굴을 본 것은 할아버지를 뵈러 갔던 때뿐이었다. 수술 직전에 한 번, 퇴원하시고 나서는 두 번, 그것이 다였다. 잠깐 인사만 드리고 왔기 때문에 아빠와는 별다른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동건이는 ‘아빠바보’여서 아빠와 함께 살지 못하는 게 힘들었을지 몰라도 나는 어차피 엄마와 더 친하고 엄마가 더 좋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근데 엄마는 말야, 그런 게 싫은데 어떡하지.”
엄마의 얼굴은 담담했다. 목소리도 떨리지 않았다.
“싫다니?”
“그렇게 겉으로만 부부인 채로 억지로 살고 싶지는 않다고. 엄마 역시 껍데기뿐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지는 않아.”
“엄마.”
“엄마 말 들어봐, 예빈아. 엄마아빠는 예빈이의 엄마아빠이지만 동시에, 아니 그전에 두 남녀이고 두 인간이야. 엄마아빠가 만나서 결혼하고 나서 너를 낳은 거지 너를 먼저 낳고 엄마아빠가 만난 게 아니야. 그렇지?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은 엄마아빠든, 다른 사람들도 다 둘이 서로 같은 마음이어야만 가능하지. 하지만 그 사랑과 결혼이 끝나는 것은 한 명만 그런 마음이어도 충분해. 더 이상 같은 마음이 아니니까. 그래서 엄마아빠 사이는, 우리의 부부 사이는 이미 끝난 거야.”
“그, 그치만!”
나는 당황해서 손을 휘저었다. 무언가 말해야겠는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빠 마음만 바꾸면 되는 거잖아? 아빠만 반성하고 돌아오면 되는 거잖아? 동건이네 엄마랑은 다르다고 하잖아?”
“그래. 아빠랑 동건이네 엄마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지. 아빠는 예전에 이루지 못했던 인연을 이제서야 이루어볼까 생각한 것만으로 괴로워한 사람이지. 그것만으로도 죄를 지었다 어쩔 줄 몰라한 사람이지. 그러다 엄마한테 고백한 거고.
그런 마음으로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엄마를 속이는 거니 그럴 수는 없어 이혼하자고 한 거지. 그게 아빠가 엄마를 존중한 방식이었고. 어쨌든 아빠가 이혼을 말한 그 순간 우리는 끝난 거야. 아빠를 억지로 붙잡아 놓는 건 아빠를 괴롭히는 것뿐이야. 굳이 그래야 할까.”
“당연하지! 아빠는 괴로워해도 싸! 엄마랑 나를 배신하고 혼자 행복하겠다는 거잖아? 그 꼴을 어떻게 봐?”
“아빠가 돌아올 마음이었으면 이혼하자고 했을까? 엄마한테 말하지 않고 숨겼거나 어떻게든 마음을 정리했겠지. 하지만 둘 다 하지 않았어.
혹시 이제라도 아빠가 마음을 바꾸어서 돌아온다고 치자. 그래도 엄마는 아빠를 받아줄 수가 없어. 왜냐하면, 이미 아빠를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대할 수 없기 때문이야. 엄마 역시 그런 마음을 속이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엄마도 이혼을 결심한 거야.
모르겠니? 이제 다시는 우리 셋이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가 없어.”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목구멍에 다시 뜨거운 것이 차오르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빠의 새로운 행복과는 상관없이, 엄마 역시 더 이상은 아빠와 함께하고 싶지 않게 된 거야.”
엄마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엄마는 이제 다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가 없다고 말했지만, 엄마의 얼굴만 보면 그야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아, 역시 아빠는 최악이고 엄마도 나쁘다. 아빠는 엄마와 나를 배신했고 엄마는 나를 버렸다. 둘 사이에 끼인 내 마음 같은 것은 엄마 역시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초등학생에 불과한 어린 나의 두려움과 불안은 모르는 척하고, 아니 알았어도 무시해 버린 채 자기네들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하고 합의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동건이가 먹은 것을 다 토하고 조퇴한 그날 엄마네 집도 아빠네 집도 다 가기 싫다고, 둘 다 밉다고 했던 것이었나 보다. 그래서 동건이네 할머니가 동건이를 안고 불쌍하다고 하신 것이었다.
우리들 자식들의 마음은 전혀 상관없이 엄마아빠 마음대로 이혼하고 엄마아빠 마음대로 누구와 살지 결정하는 일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 우리들 ‘이혼가정의 아이들’이니까. 우리에게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낳았으면서, 우리에게 묻지도 않고 엄마아빠와 갈라놓는다.
지금까지는 내가 우리 엄마아빠의 딸로 태어난 것이 행복했다. 감사했다.
형제자매가 없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나 혼자 엄마아빠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어서 좋았고, 아빠가 바빠서 세 가족 모두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서 불만이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효성스러운 아빠가 자랑스러웠고 그런 아빠가 훌륭한 사람이라 말하는 엄마가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신기루였다.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행복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와 다를 게 뭐야. 아빠는 바람나고 엄마는 그런 아빠가 싫다고 바로 이혼해 버리면 나는 뭐야. 엄마아빠는 엄마아빠 마음만 중요하고 내 마음은 아무 상관없어? 어떻게 엄마까지 이럴 수 있어.”
눈앞이 흐려지고 있었다.
눈물이 차올라서 그런 것인 줄 알았지만 순간 눈앞이 새하얘지는 것 같더니 나는 방바닥에 그대로 먹은 것을 게워냈다. 입을 막거나 화장실로 갈 여력도 없었다. 토하고 났으니 속이 편해져야 하는 게 정상인데 편하기는커녕 뱃속이 누가 쥐어짜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아악, 배 아파 엄마!”
나는 소리를 지르며 침대에 엎어져 새우처럼 둥글게 몸을 말았다. 저절로 몸이 그렇게 됐다. 너무 아파 데굴데굴 몸을 굴러야만 했다.
거실에 있던 아빠가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 들어왔다. 엄마아빠가 서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아빠가 나를 둘러업었고 엄마는 아빠를 뒤따라 나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나는 너무 아파서 소리를 계속 질렀다.
예전에 한 번은 아랫배가 꼬인 것처럼 아팠는데 그때는 몇 분에 한 번씩이어서 참을 만했다. 엄마가 준 약을 먹고 한숨 자고 났더니 바로 나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랫배도 아니고 윗배였고 몇 분이 아니라 몇 초도 쉬지 않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픈 정도도 훨씬 심했다.
“예빈아, 조금만 참아. 금방 병원이야.”
엄마는 자동차 뒷좌석에 누운 나를 끌어안고 계속 속삭였지만 아픔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온몸에 땀을 흘리며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었다.
응급실에서 일어났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급히 어떤 처치가 이뤄졌고 얼마나 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아픈 정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예빈아!”
엄마 얼굴이 보였다. 그 옆에 바로 아빠 얼굴도 보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었지만 힘이 안 들어갔다.
“이제 좀 괜찮니?”
엄마가 땀에 젖은 내 머리칼을 넘기며 말했다. 아직 괜찮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까처럼 숨도 못 쉬게 아프지는 않았다.
“…아파.”
나는 겨우 말했다.
“그래, 좀 더 걸릴 거야. 그래도 약이 듣는 거 같으니 다행이다. 너무 아팠지.”
“응.”
아픈 것은 줄어들고 있었는데 대신 약 기운 때문인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응급실이 아닌 다른 병실이었다. 할아버지 병문안으로 많이 가보았던 곳이라 알 수 있었다. 입원실이었다. 내가 잠든 동안 옮겨진 모양이었다.
“엄마.”
엄마는 응급실에서처럼 내 옆에 바로 있었다. 지금은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만 달랐다.
“깼구나.”
엄마가 반가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갔어?”
“가기는. 잠깐 전화하러 나갔다.”
“…애인하고 전화한대?”
“예빈아.”
“아빠 가라고 그래. 보기 싫어.”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제 배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까는 너무 아파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몸이 안 아프니까 다시 생각하기 싫은 것들이 생각나버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낯선 여자와 행복한 아빠의 얼굴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아빠가 걱정 많이 했는데…. 예빈아.”
엄마가 타일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나는 소리 없이 울었다. 나의 세계, 고작 십일 년을 살아온 나의 세계는 이미 무너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