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무너지는 세계 - 4화. 아빠가 어쩌겠어
내가 응급실에서 입원실로 옮겨진 것은 여러 가지 검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그렇게 아팠던 것은 ‘급성 위경련’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어떻게 맞았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주사와 링거액이 그 병에 대한 처방이라고 했다.
내가 워낙 너무 아파하고 아직은 어린이여서 일단 통증부터 가라앉힌 후에 피검사나 엑스레이 등의 검사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원래 응급실에 가면 해야 하는 검사들이라고 했다. 그 검사들은 내가 잠에서 깬 후 그날 바로 끝났기 때문에 굳이 입원할 필요는 없었지만, 아빠가 고집을 부렸다.
“아빠 보기 싫으면 안 봐도 돼, 예빈아. 하지만 입원은 해야 돼. 혹시 또 아플지도 모르니 일단 병원에 있자. 그리고 검사받을 거 다 받자.”
아빠는 내가 싫다고 했는데도 굳이 병실까지 찾아와서는 이불을 뒤집어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빠가 고집을 피우면 원래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내 건강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 엄마도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내가 초콜릿케이크와 우유를 너무 급하게 먹은 것을 걱정하며,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갑자기 식탐이 나서 그런 줄 아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우리 세 가족의 추억 중 하나를 차지하는 그놈의 초콜릿케이크를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다. 차마 엄마아빠 앞에서 던져버리거나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으니까 내가 먹어서 없애버린 것뿐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다시는 먹지 않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병원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배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지만 아직은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나는 영양수액에 의지해야만 했다. 엄마도 날 돌보느라 점심도 못 먹고 버텨야 했다.
검사가 모두 끝나고 저녁이 되었을 때 엄마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엄마는 밥을 먹고 오라는 내 말에 나를 혼자 둘 수 없다고 거절했다. 병실은 2인실이었지만 다른 침대는 비어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없으면 나 혼자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나 때문에 두 끼나 굶는 것은 싫었다.
“그럼… 아빠가 있어도 되겠어? 어차피 엄마 집에 가서 챙겨 올 것들도 있어서.”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빠와 함께 있기 싫었지만 엄마가 배고픈 것은 더 싫었다.
“…알았어.”
나는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엄마는 전화기로 아빠한테 메시지를 보내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아빠가 병실에 들어왔고 엄마는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예빈아.”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가 생각해 봤는데…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 예빈이가 엄마를 많이 닮아서, 똘똘하고 조숙하니까…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야. 이젠 벌써 다 컸다고 착각했던 모양이야. 이제 겨우 열둘, 아니 열한 살인데….”
아빠는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아빠도 조급해졌나 봐. 아빠 친구가 그렇게 가고 나니까 더는 마음을 속이고 살고 싶지가 않아 졌어. 엄마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어. 설령 그 사람이 아빠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 해도, 또다시 이루어지지 못한다 해도 어렵게 다시 만난 사람을 그대로 놓칠 수가 없었어. 아빠는… 더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어. 비겁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예빈이는… 이해할 수가 없겠지. 용서할 수도 없겠지. 엄마와 예빈이에게는 아빠가 죄를 지은 게 맞고…. 그러니 예빈이 원하는 대로 할게.”
“진짜로?”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빠가 쓸쓸하게 웃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건 못하지만…. 예빈이가 받아들여 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게. 네가 말한 대로 어른이 될 때까지? 대학생 될 때까지?”
“그 사람하고는 헤어지는 게 아니고?”
“…네가 이렇게 반대하는 줄 알면 그 사람도 싫다고 할 걸…”
아빠는 또 쓸쓸하게 웃었다. 웃는데 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환자여서 제대로 못 보기 때문일까? 문제가 있는 곳은 위장이지 눈도 아니고 뇌도 아닐 텐데, 이상했다.
“따로 살면서 그 사람이랑 계속 만나면 무슨 소용이야? 안돼.”
나는 신경질이 났다. 이런 것을 두고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 사람’과 아빠가 만나든지 말든지 사귀든지 말든지, 일단은 이혼을 못하게 하는 것이 내 목표이긴 했다. 하지만 아빠가 일을 줄이면서까지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겠다고 나선 이상, 내 눈앞에 행복한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라버린 이상, 더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아빠는 ‘그 사람’을 포기하고 일단은 우리와 따로 지내면서 잘못을 반성하고 계속해서 엄마와 나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일을 줄이고 우리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빠보다 열 배는 더 훌륭한 우리 엄마가 마침내 아빠를 용서해 줄 것이고 그러면 우리 가족은 원래대로, ‘정상 가족’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내 계획은 완벽하다!
“그래…. 예빈이가 하라면 그렇게 해야지. 아빠가 어쩌겠어.”
아빠가 마침내 포기한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갑자기 아파서 응급실까지 오게 되니 아빠는 덜컥 겁이 난 모양이었다. 아빠는 가족 중 누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무척 예민하게 굴었다. 할머니가 일찍 병으로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중년에 들면서 여러 곳이 편찮으시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아빠 자신은 아무리 바빠도 운동하려고 애쓰고,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와 나를 걱정했다. 그리고 나나 엄마가 감기 기운만 있어도 무조건 병원에 가라고 하고, 시간이 되면 직접 데려가는 사람이었다. 약사인 엄마가 알아서 약 챙겨 먹으면 된다고 해도 펄펄 뛰곤 했다.
나는 태어나 그렇게 아팠던 것은 처음이었고 앞으로 다시는 아까처럼 아프고 싶지 않다. 생각만 해도 다시 아파오는 것 같다.
하지만 결과만 보면 그렇게 아팠던 것이 좋은 일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초콜릿케이크를 먹고 싶어질 정도였다.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아빠 얼굴이 더없이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빠에게서 원하던 답을 받아냈지만 아빠의 기운 없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의 들뜬 기분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괜히 이불자락 끝을 만지작거리다가 자리에 다시 누웠다. 빨리 엄마가 돌아오거나 아니면 잠이 오기라도 했으면 싶었다. 벽시계는 이제 겨우 7시가 조금 넘었고 엄마는 언제 올지 몰랐다.
“이제는 아프진 않은 거니?”
아빠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아빠를 보았다.
“어른들이나 위경련 나는 건 줄 알았는데 얼마나 스트레스받았으면…. 한 번 그러고 나면 또 그런다는데 앞으로는 음식 가려 먹고 천천히 씹어 먹고 많이 먹지 말고….”
아빠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날, 한 달 전에 아빠가 친구 장례식에 다녀온 후 바로 할아버지께 갔던 그날 저녁의 아빠와의 통화가 떠올랐다. 그때도 아빠는 목소리가 꼭 지금처럼 이렇게 작아지다가, 울먹거리는 듯하다가 전화가 끊어졌었다. 그날의 아빠는 괴로워하고 또 엄마와 나한테 미안해하다가 술을 마셨을 것이다.
그렇게 괴롭고 미안한 일을 아빠는 대체 왜 저지른 것일까?
내가 아팠던 탓이 컸겠지만 어쨌든 나의 반대에 당황하고 놀라서 결국은 두 손을 들고 말 것을 대체 왜, 굳이 엄마에게 고백하고 이혼을 요구하고 내 허락까지 구하려고 했던 것일까? 주말의 광화문이나 강남역같이 오고 가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서 설문조사라도 해보라지. 아빠는 찬성표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아빠가 울 것 같은 얼굴인 까닭이 내가 아프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아빠를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아프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하기 싫었다.
아빠는 당연한 얼굴로, 기쁜 얼굴로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포기한 듯한 얼굴로, 슬픈 얼굴로 겨우겨우 대답했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마음에도 보이지 않는 가시가 걸린 것 같았다.
나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숨을 쉬어야 가슴이 조금은 덜 답답할 것 같았다. 아빠는 숨이 차냐고 놀라서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답하면서 벽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러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