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남아있는 것들 - 전편. 사랑하지 않아
다음날인 월요일에 나는 몇 가지 검사를 더 하고 퇴원했다.
병실에 다른 환자가 들어온 것도 신경 쓰였고 검사 결과가 다 정상인 것으로 나왔는데 계속 입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빠는 1인실로 옮겨주겠다고 했지만 병원에 더 있다가는 다시 아플 것만 같았다. 얼른 내 방 내 침대에 눕고 싶었다.
나에게 스트레스 주지 말자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겨우 퇴원에 동의했다. 같은 이유로 대학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자는 아빠의 주장도 물리칠 수 있었다. 혹시 같은 증세가 생기거나 다른 곳이 아프면 그때는 바로 대형병원으로 가서 못 다 한 검사를 다하기로 약속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셋은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어젯밤 나는 엄마가 오기 전에 잠들어서 오늘 아침에야 일어났다. 그 사이 엄마아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둘은 내가 잠든 사이에 이야기를 나누었을 테지만 둘 중 아무도 내게 말하지 않았고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밥도 못 먹고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검사를 받다 보니 말할 기운도 없었다.
자동차에 타자마자 또 하품이 나왔다. 약 기운 때문인지 어젯밤 오랜 시간을 잤는데도 또 졸렸다. 나는 뒷좌석에서 엄마에게 기댄 채로 잠이 들었다.
잠결에 아빠가 나를 안아서 내 방까지 옮겨다 준 것이 기억난다.
엄마는 내 손발을 닦아주고 잠옷으로 갈아입혀서 침대에 눕혔다. 그런 와중에 잠이 깨는 것 같았지만 피곤하기도 해서 나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요. 예빈이한테는 내가 잘 얘기할 테니까.”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둘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 자는 척하기로 했다.
“여보.”
“이렇게 탈이 날 정도로 예빈이의 거부감이 심할 거라 미처 예상 못한 건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어쩌겠어. 이것도 겪어내야 할 일이겠지.”
“…미안해.”
“됐고, 그만 가요. 당신 얼굴 보기 나도 힘들어.”
“…집 근처에 있을 테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
“제발 좀 가!”
엄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빠는 더는 아무 말 못 하고 방을 나가는 것 같았다. 슬리퍼가 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난 후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심장이 콩닥거려서 숨이 찰 지경이었다.
엄마는 거칠게 숨을 내쉬더니 내 방을 나가는 것 같았다. 화장실로 갔는지 문 열고 닫는 소리와 물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나는 눈을 떴다.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 발을 딛고 섰을 때 잠깐 어지러웠지만 곧 괜찮아졌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발뒤꿈치를 들어 올리고 살금살금 화장실 쪽으로 갔다.
화장실에 다가가니 세면대 물소리와 함께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문에 귀를 갖다 댔다. 물소리가 커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눈물이 났다. 나는 화장실 앞에 선 채로 울었다.
잠시 후 엄마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나는 와락 엄마한테 안겼다.
“깜짝이야…. 언제 깼어?”
엄마가 나를 안고 내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나는 크게 소리 내어 울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니 왜, 왜 그래 예빈아? 또 아파?”
“엄마 아빠 미운 거지! 용서 안 할 거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쳤다.
엄마는 나에게 아빠한테 나쁜 말을 하지 않았고 내가 아빠를 미워할까 봐 걱정한다고 했지만, 아까 내가 잠든 척하고 있을 때 엄마가 아빠한테 하던 말을 들으니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도 더 아빠한테 화가 났고 얼굴 보기도 싫은 것이었다. 엄마는 너무 화가 나서 울기까지 한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이 화가 너무 나면 울음이 나오기도 하는 법이다.
“기운도 없는데 그렇게 소리 지르고 울면 더 힘 빠져. 그만.”
“아빠는 그 사람하고 헤어진댔어. 엄마만 용서해 주면 되는데!”
“어서 다시 가서 눕자.”
엄마는 나를 일으켜 방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나는 뿌리쳤다.
“엄마, 내 말 틀리면 아니라고 해 봐.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아빠 용서해 줄 거야? 다시 받아줄 거야?”
“지금은 그런 얘기할 때가….”
“아까 아빠 내쫓았잖아! 나 안 자고 있어서 다 들었어! 아빠 꼴 보기도 싫다면서!”
엄마는 내 말에 당황한 것 같았다.
“내가 겨우 아빠 마음 돌려놨는데, 엄마는 이러면 어떡해!”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서있었다. 나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엄마가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너 완전히 회복된 다음에 천천히 말하려고 했는데….”
엄마는 숨을 다시 한 번 크게 쉬고 이어서 말했다.
“그래, 말해줄게. 방으로 가자.”
엄마는 나를 이끌어 내 방으로 갔다. 엄마는 나를 침대에 앉히고 이불을 덮어준 다음 책상의 의자를 갖고 와 내 앞에 놓았다. 그 의자에 앉아서 엄마는 말했다.
“그래, 아빠가 얘기하더라. 네 뜻에 따르겠다고. 네가 이렇게까지 충격받을 줄은 몰랐다고.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지만.”
엄마는 약간 흥분한 것 같았다.
내 기억에는 거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모습이 불편하고 조금은 무서웠다. 붉어진 엄마의 눈을 보니 모른 척하고 그냥 자버릴 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엄마의 솔직한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그래, 너는 아직 어리고 또 자식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해. 엄마아빠 둘 사이가 어떻든, 엄마아빠 각자의 마음이 어떻든 별로 상관없겠지. 아빠까지 셋이 예전처럼 살고 싶은 마음뿐이겠지. 엄마도 예빈이었으면, 엄마도 열한 살짜리 딸이었다면 똑같은 마음이었을 거야.”
그다음 말이 중요했다.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가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으니까.
“엄마가 전에도 말했지. 두 사람이 함께 하려면 두 사람 모두 그렇게 생각해야 가능한 것이지만, 헤어지는 데는 한 사람만 마음을 먹어도 끝인 거라고. 아빠가 엄마한테 이혼을 말한 순간, 그때 이미 우리는 끝난 거야. 아니, 아빠가 예전에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이제서야 이루어볼까 결심했을 그 순간에.
아빠도 거짓말에는 서투른 사람이니 결국엔 엄마나 예빈이 너도 눈치채게 됐을 거고, 아빠가 아니라고 했어도 엄마 마음에는 이미 의심이 생겨났을 테니 아빠를 전처럼 믿지 못하게 됐겠지. 엄마는 아빠를 다그쳤을 거고, 아빠는 결국에는 다 말했을 테지. 그러면 용서해 줬을까? 엄마는 자신이 없어.”
엄마는 이불 위에 놓여있던 내 양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런데 아빠는 이혼까지 말했지. 그게 엄마에 대한 마지막 양심이고 배려였다는 건 엄마도 이해해. 옛사람과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기도 전에 말했다는 것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 아빠가 한 말이니까, 엄마는 그 말 믿어.
그리고 그 말대로라면 아빠만 돌아오면 다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겠지.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들 많이 말할 거야. 살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데 진짜 바람난 것도 아니고 자식도 있는데 그냥 넘어가라고.
그래, 사실 그 사람, 아픈 거 아니야. 조금이라도 네가 아빠를 이해해 줄까 해서 엄마아빠가 갖다 붙인 얘기였어. 별로 소용없었지만.
어쨌거나 엄마는 그럴 수 없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가 없어. 이미 우리는 예전처럼 살 수 없어. 더구나 예빈이 네가 갑작스럽게 아픈 것을 빌미로, 네가 또 아플까 봐 걱정돼서 마지못해 네 말대로 하겠다는 건 엄마는 용납이 안돼.
그렇게 하면 예빈아, 엄마아빠는 너의 부모로서 살 뿐이지 부부로서 사는 게 아니야. 엄마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는 엄마이기 전에 한 인간이고 여자야. 엄마도 온전히 사랑하고 온전히 사랑받는 삶을 살고 싶어.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인 거니?”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더니, 엄마는 손으로 두 눈을 닦아내고 다시 내 손을 잡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네가 원한다면 이혼을 미룰 수는 있어. 이렇게 된 것도 미안한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하지만 아빠는… 막지 말자. 아빠도 살면서 한 번쯤은 마음 가는 대로 살아봐야지. 어려서부터 고생만 하고 살아온 사람이야. 예빈이도 아빠가 얼마나 바쁘게, 열심히 살아온 줄 잘 알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말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이해한 것은 엄마가 아빠와 다시 합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엄마아빠 둘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과 모든 이야기들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었고, 다 알더라도 나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어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부부 사이라도, 부모자식 사이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가능은 할까? 만약 그렇다면 세상은 평화롭기만 했겠지.
지금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엄마아빠 두 사람이 서로를 남자와 여자로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사랑하고 싶은 다른 사람이 있고, 엄마는 아빠의 그런 마음을 억지로 되돌리고 싶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큼은 내가 아무리 떼를 써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빠의 마음은 내가 아픈 것을 핑계로 억지로 돌려보았지만 엄마의 마음은 오히려 아빠보다도 단호했다.
그리고 엄마의 말 중 나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아빠가 돌아오더라도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것 말이다. 우리 셋은 함께 하는 자리가 어색할 것이다. 자식인 나 때문에 억지로 식탁에 같이 앉으면, 과연 밥이 제대로 넘어가긴 할까? 아빠는 엄마와 내 눈치를 볼 것이고 엄마는 불편한 마음을 누르며 억지로 웃어 보이겠지. 그리고 나는 괜히 목소리를 높여 수다를 떨어보려 하겠지.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다.
나는 셋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힘이 들었다.
“나 누울래.”
“그래.”
엄마는 나를 눕혀주었다.
“어지럽니? 속은 어때?”
“조금. 배는 괜찮은 거 같아.”
약 기운 덕분인지 배가 다시 아프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온몸의 힘이 다 빠져버리는 기분이었을 뿐이다. 모든 것이 다 귀찮아졌을 뿐이다.
“나 좀 쉴래.”
“그래.”
엄마는 이불을 덮어주고 나갔다. 현관 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예빈아, 지우가 왔네.”
눈이 번쩍 떠졌다.
지우와 떡볶이 가게에서 헤어지고 나서 사흘째나 지우와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학교에는 엄마가 연락했을 테니 지우도 내가 아파서 결석한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계속 나와 연락이 전혀 안 되니 집으로 온 것 같았다. 내 휴대폰은 난리통에 집 어딘가 버려져 있을 것이다.
“만날 수 있겠어?”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어쨌든 내가 걱정되어 집까지 온 친구인데 헛걸음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우와도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응. 만날래.”
나는 일어나 앉으며 대답했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괜찮아, 엄마.”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이제 아빠와도 만나 이야기를 들었으니 원래대로라면 지우에게도 우리 집 일을 말해야 하고, 동건이가 지우와 절교하겠다 한 일에 대해서도 말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