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남아있는 것들 - 후편. 엄마랑 나랑 둘이서

by 지구인




“예빈아!”


지우는 울 듯한 얼굴로 달려와서는 그대로 나를 껴안았다. 방문을 열어준 엄마가 당황한 얼굴로 지우를 내게서 떼어냈다.


“지우야, 예빈이 안정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아, 죄송해요. 너무 반가워서….”


지우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엄마는 다시 한 번 지우에게 당부하고는 방을 나갔다.


“세상에, 진짜 많이 아팠구나. 얼굴이 뼈밖에 없는데?”


지우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내 얼굴을 만져보았지만 지우의 말이 맞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었다. 살이 빠졌건 아니건 지금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집에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 너 집에 없으면 이거라도 놓고 가려고 했지.”


지우는 포장지에 싸인 장미꽃 한 송이를 조심스레 이불에 덮인 내 다리 위에 내려놓았다.


아까 나를 껴안으면서 그랬는지 줄기가 꺾여있었다. 꽃송이도 구겨져서 볼품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꺾이고 구겨진 모습이 내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왜 그래, 예빈아? 또 아파?”


나는 눈물을 삼켰다. 지우에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아니. 꽃 고마워. 걱정 많이 했지?”


“그럼. 토요일날 일찍부터 잔다고 다음날에 전화 준다고 했는데 전화도 없고 전화 안 받고 나중에는 꺼져 있다고 나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너희 엄마 번호도 알아두는 건데. 말 나온 김에 예빈아, 엄마 번호 알려줘.”


지우가 자신의 휴대폰을 내게 내밀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나중에. 너한테 할 말 있어.”


“응? 뭔데?”


“그날, 네가 동건이한테 한 말 말야. 너무 심했잖아.”


지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동건이는 이제 너 안 보겠대. 나도 너 그 말이 진심으로 한 거였다면 너랑 친구 안 할래. 그냥 화나서 실수로 한 말이었다면, 동건이한테 사과해.”


“동건이 그 자식이 우리 아빠 욕한 건 생각 안 나?”


“그건 네가 하도 동건이네 아빠랑 엄마 비교하면서 동건이 열받게 하니까 그런 거잖아. 따져보면 네가 시작한 거야.”


“와, 기가 막히네. 어떻게 동건이 편을 들어?”


“나도 그 말 듣고 충격받았어. 어떻게 몇 년을 같이 지낸 친구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진심으로 한 말이라면 넌 그동안 동건이한테, 나한테도 거짓말한 거잖아. 그렇게 거짓말하는 애랑은 친구 할 수 없어.”


“이예빈!”


지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한테도 동건이한테 한 것처럼 퍼부을 기세였다. 혹시 내 등이라도 때리면 어떡하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만!”


엄마가 들어왔다.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 너무 흥분하고 있잖아. 지우야, 안 됐지만 그만 돌아가는 게 좋겠다. 예빈이 다 나아서 학교에 가면 그때 얘기하렴.”


“아… 제가 또 깜박했네요. 죄송합니다.”


지우는 엄마한테 고개까지 숙이며 공손히 사과했다.


지우는 대가족처럼 살기 때문인지 예의가 발랐다. 어른들뿐 아니라 자신보다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으면 잔소리 많은 ‘지우엄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온순한 ‘지우 어린이’만 남는 것이다.


“제가 잘못했어요. 조심하겠습니다.”


지우의 말에 엄마가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그럼…. 대신 한 번만 더 큰소리 나면 그때는 바로 돌아가는 거다. 아줌마 바로 문 앞에 있을 거야.”


“네.”


엄마가 나가고 나자 지우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나는 입을 다문 채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지우가 했던 못된 말을 취소하기 전까지는 굳이 우리 집 일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우도 말이 없었기 때문에 방안에는 어색한 분위기만 흘렀다.


이윽고 지우가 입을 열었다.


“예빈이 너, 동건이한테 사과 안 하면 나랑도 친구 못하겠다는 말 진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우리가 어떤 친군데 동건이 땜에 안 본다고 할 수가 있어? 나보다 동건이를 먼저 알았다고 그러는 거야? 나 너무 서운하다!”


지우는 정말 섭섭했는지 울면서 말했다.


지우가 그런 말을 안 했다면, 아니 우리 엄마아빠가 이혼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나도 그런 생각까지는 안 했을지 모른다. 지우와는 죽을 때까지 단짝친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으니까. 하지만 꿈에도 생각 못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친아빠와도 헤어져 살게 된 판국에 학교에 들어와 만난 친구와는 못 헤어질까?


“예빈아, 대답 좀 해봐! 진짜 나랑 안 볼 거야?”


“…동건이한테 사과해.”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울면 지우가 따라 울고 지우가 울면 내가 따라 울었지만, 지금은 지우가 울어도 나는 울지 않는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지우가 나를 뚫어지듯 보더니 말했다.


“그래 뭐, 네가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할게. 동건이한테 사과. 할게, 내일.”


지우의 태도가 너무 갑자기 변한 것이 이상해서 나는 놀란 눈으로 지우를 보았다.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럼 됐지?”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그래.”


지우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나는 화가 나려 했다.


“김지우, 대충 넘어갈 일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줘. 정말 동건이한테 미안해? 아니면 말만 그렇게 하는 거야?”


“…너야말로 대체 왜 그러는데? 언제부터 동건이 그렇게 챙겼다고 이 난리야? 걔가 우리 아빠 욕한 건 아무것도 아니야?”


지우도 다시 화가 난 듯했다.


“그리고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자식은 부모 이어주는 끈이라는데 동건이가 재수 없는 자식이니까 부모가 못 살고 헤어진 거지! 그리고 걔도 엄마랑 살다 아빠랑 살다….”


“아니야! 부모가 이혼하는 건 애들 잘못 아니야!”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우가 놀라서 나를 보았다. 나는 지우가 준 꽃을 지우 얼굴에 던졌고 그 순간에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예빈아!”


엄마가 나를 껴안았지만 나는 엄마의 품속에서 계속 소리쳤다.


“우리는 잘못 없어! 다 어른들 탓이야! 어른들 잘못이야!”


“그래그래….”


엄마가 나를 안고 달랬지만 내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내가 가장 가슴 아파했던 말을 지우는 또다시 말했고 더는 지우를 보기가 싫었다. 나는 엄마를 껴안은 채 세상이 떠나가라 통곡했다.


아마 엄마가 눈짓과 손짓으로 지우에게 돌아가라고 했을 것이고 지우도 내 반응에 놀라서 도망치듯 우리 집을 떠났을 것이다. 안녕히 계세요, 하는 지우의 떨리는 목소리와 현관문 여닫는 소리가 내 울음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듯했다.


그날 밤 나는 울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따뜻한 보리차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덕분인지 토하거나 배가 아프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어차피 배도 고프지 않았고 입맛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아빠가 보이지 않는 얼굴의 여자 어른과 어깨동무를 하고 웃고 있었다. 나는 아빠를 불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아빠는 저 멀리 사라져 갔다. 나는 쫓아가려 했지만 갑자기 땅이 무너지며 낭떠러지가 돼버렸고 주위는 정전된 밤처럼 깜깜해졌다. 나는 울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가 쓸쓸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안겼다. 엄마는 나를 안고 내 머리칼과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 꿈에서 엄마의 손길이 멈추었다. 나는 이상해서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내가 엄마 눈물을 닦아주려는데 갑자기 낯선 손길이 나타났다. 엄마는 눈물을 멈추고 미소를 지으며 그 사람에게 머리를 기댔다. 역시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엄마도 새로운 사람을 만난 것을 꿈에서의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아빠처럼 가버리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여전히 꼭 안고 있었다. 엄마의 품이 현실에서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나도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다시 껴안으면서, 잠이 깼다.


모처럼 상쾌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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