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아프지 않았고 밥을 먹어도 괜찮았지만 나는 일주일을 통으로 결석했다.
엄마가 혹시 또 탈이 날지 모른다며 학교에 못 가게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집에서 엄마와 보충 학습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친구들과 전화나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동건이에게는 집으로 와 달라고 했다.
동건이는 내게 일어난 폭풍 같던 일들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힘들었겠네.”
내 말이 다 끝나고 동건이가 말했다.
“그래서 김지우가 자꾸 나를 힐끗거렸구나. 그러고 보니 나한테 몇 번 말을 걸려다 만 것 같기도 하네.”
그날 이후 지우의 전화를 나는 받지 않고 있었다. 지우의 메시지에도 동건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뒤 연락하라고 답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걔가 너랑 베프이긴 한가 보다. 나한테 사과하기 싫을 텐데 눈치 보는 거 보면.”
“사과하면 내 얘기해 줄 거고, 아니면 나도 얘기 안 해.”
동건이는 소파 테이블에 놓인 컵을 들더니 마시지는 않고 만지작거렸다. 엄마는 안방에 있었고, 우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쨌든 아빠랑은 따로 사는 거네. 괜찮겠어?”
“뭐….”
“그래도 따로만 사는 거면 나중엔 잘될 수도 있겠네.”
“아닐 것 같아.”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빠는 억지로 내 말대로 하겠다고 했고 엄마는 그마저 싫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나도 엄마 말이 맞다고 이제는 확실히 느끼고 있다. 다만 나 역시 엄마아빠에게 요구할 것이 있을 뿐.
“오히려 엄마는 아빠가 원하는 대로 해주자고 하는 판인데 뭐. 엄마 마음이야말로 바뀌지 않을 거 같아. 그래서 나도 포기했어. 대신 아빠는 앞으로 나 못 보게 될 거야.”
동건이가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아빠 안 본다고.”
“…아예 안 본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울 엄마도 빨리 좋은 사람 만나라고 할 거야. 대신 나 대학 갈 때까지 재혼은 기다려달라고 해야지. 너도 너네 아빠한테 그래달라고 해.”
“아니 그건 그거고…. 그래도 아빤데 아예 안 보고 산다고?”
“응.”
“…너무하는 거 아닐까?”
너무하는 건 내가 아니라 아빠이다.
이 모든 것은 아빠가 시작한 일이다. 내가 아프기까지 했는데도 엄마 마음이 돌아서지 않는 것도 다 아빠 탓이다. 나까지 엄마를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순순히 이혼을 받아들이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동건이는 내가 부모님의 이혼을 받아들이는 것은 찬성했지만 아빠를 안 보겠다는 결심은 다시 생각해 보라고, 아마 너희 엄마도 반대할 거라고 말하고는 돌아갔다. 대신 지우가 사과하면 받아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동건이 말처럼 엄마 역시 아빠를 안 보겠다는 내 결정에 반대했다. 내가 갑자기 아프자 놀라서 마음을 돌리겠다고까지 했던 아빠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엄마는 결국 나를 말리지는 못했다.
“아빠와 다시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을 알겠어. 엄마도 보란 듯이 데이트도 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해. 그치만 재혼은 천천히, 내가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어른이 되었을 때 부탁할게. 말 안 해도 엄마는 그렇게 해줄 것 같지만. 근데 아빠 얼굴을 보라는 것까지 강요하지 마. 나는 이거 하나도 내 마음대로 못해? 엄마아빠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 불공평해.”
아빠 역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빠가 아빠의 ‘마음을 어쩔 수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면, 나 역시 아빠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어쩔 수 없’다. 아빠는 되고 나는 안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무엇보다, 내가 엄마아빠의 이혼을 감당해야 하듯 아빠 역시 내 결심을 감당해야 한다는 나의 주장에는 아빠도 할 말을 잃었다. 아빠는 나라를 잃은 표정이었지만 그저 미안하다고, 내가 용서해 주기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다만 할아버지는 고모를 통해서 틈틈이 찾아뵙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빌미로 아빠가 나를 보려 한다면 할아버지도 더 이상 뵙지 않겠다고, 나는 잊지 않고 말해두었다.
내가 동건이만큼 ‘아빠바보’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었다. 아빠가 동건이 아빠만큼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어서 다행이었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엄마이고 아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역시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학교를 결석하는 동안 동건이는 지우의 사과를 받았다. 그리고 둘은 함께 나를 보러 우리 집에 왔다. 지우는 이번에도 꽃을 가지고 왔다. 무려 값비싼 꽃다발이었는데, 동건이와 함께 용돈을 모아 샀다고 했다.
나는 동건이와 지우를 각각 따로 내 방에서 만나 이야기했다. 동건이가 혹시 마음이 약해져서 억지로 지우의 사과를 받은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워서였다. 하지만 동건이는 아니라고 했다.
“지우가 갑자기 울면서 잘못했다고 하더라고. 언니들도 너무 심한 말을 했다고, 친구한테는 그러는 거 아니라고 했다면서. 엄마한테도 혼났다고 했어. 이혼이 죄였던 옛날에나 있었던 말이고 요새는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말이라고.”
“괜히 말만 그렇게 하는 거면 어떡해?”
“뭐, 생각하는 것까지야 어쩌겠어. 그리고 지우가 그렇게까지 못된 애는 아니잖아. 오지라퍼에 잔소리꾼이라 그렇지. 뭐 나도 걔 열받게 한 것도 맞고. 어쨌든 말이라도 조심하면 되지, 뭐. 대신, 한 번만 더 하면 그때는 진짜 끝이다.”
어려서는 말도 제대로 못 하더니 언제 이렇게 자랐담. 나는 의젓해진 남동생을 보는 누나가 이런 마음일까, 하고 생각했다.
동건이가 나가고 내 방에 들어온 지우는 나를 보며 주뼛거렸다. 나는 내가 앉은 침대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 번 치며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지우는 선 채로 말했다.
“동건이한테 사과한 거 진심이야. 나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고 생각해.”
마치 경찰서에라도 끌려온 모양새였다.
시소와 비슷해 보이지만 널뛰기는 낮은 담장을 넘을 정도로 높이 뛸 수 있는 것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나는 지우야말로 널뛰기를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우를 보았다.
“절대 다시는 그런 말 안 하기로 맹세할게.”
지우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우와 같은 손 모양을 했다. 지우는 단숨에 달려와 새끼손가락을 걸고는 나를 와락 껴안았다.
“예빈아~ 보고 싶었어~!”
지우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지우를 껴안으며 울었다. 지우에게 얘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우리 엄마아빠도 헤어질 거래. 그래서 더 네 말에 화가 났던 거야.”
나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지우가 놀라서 나를 보았다.
“내가 아팠던 건 그 일 때문인 거 같아. 스트레스받아서. 그러니까 네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게 아니라면 안돼. 또 내가 불쌍해서 친구 해주는 것도 싫어.
그러니까 오늘 집에 가서 잘 생각해 보고 알려줘. 당연히 우리 집 일은 누구에게도 말해서 안돼. 너희 엄마든 언니들이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나와 계속해서 베프 하고 싶은 건지 잘 생각해 봐. 조금이라도 걸리는 게 있다면 나도 더 이상은 말해줄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지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우는 뭔가 말하려 하다가 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지우가 일어섰다.
“나 갈게. 네 말대로 잘 생각해 볼게. 생각해 보고 연락할게.”
“…그 일, 떡볶이 먹으러 가던 날 사건만 없었어도 좀 더 빨리 너한테 얘기했을 거야. 비밀 없기로 했던 약속 못 지킨 거 미안해.”
지우는 크게 숨을 들이켠 뒤 그대로 우리 집을 떠났다.
나는 속이 후련했다. 마침내 지우에게도 나의 숨기고픈 비밀을 털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지우의 대답에 따라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우와 다시 단짝이 되면 좋겠지만 아니라도 어쩔 수 없었다. 아빠 말처럼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나와 동건이와 지우는 다시 ‘삼총사’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고 우리 사이의 어색함은 꽤 오래갔다.
지우는 우리 집을 떠난 뒤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도 연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며칠 만에 다시 만났다. 지우는 나를 본체만체했고 동건이를 비롯한 반 친구들은 나와 지우를 힐끗거렸다. 나는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돌아왔기 때문인지 담임 선생님이 따로 보자고 하셔서 교무실에 다녀와 교실 문을 여니, 친구들이 폭죽을 쏘고 박수를 치며 난리가 났다. 지우는 박수를 치며 내 앞으로 다가와서는 내 사랑하는 베프 이예빈~ 이라고 외치며 나를 껴안았다. 이것이 지우의 답이었다.
그리고 그 주 금요일 밤에 지우는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갔다. 우리는 내 침대에 바짝 껴안다시피 해서 누워,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우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울다가, 화를 냈다가, 기가 막혀하다가, 다시 우는 것을 반복했다. 하지만 지우는 결국 우리 엄마아빠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도 완전히 이해 못 한 일이니 당연했다.
지우는 자신도 내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 있다며 고백했다.
“사실은 말야, 우리 엄마아빠도 잊을 만하면 이혼하네 마네 엄청 싸워. 주로 돈 문제더라. 엄마가 바가지를 긁고 아빠는 아무 말 안 하다가 나중에는 그래, 못난이 남편이라 미안하다! 소리 지르면서 나가버려.
근데 엄마가 그냥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아빠들하고 비교하거든. 그중에 자주 나오는 사람이 바로 너네 아빠야. 그러면 아빠도 너네 엄마 얘기하면서 나도 전업주부 말고 약사 마누라랑 살면 이 모양 이 꼴 아니라고 소리 지르지.
거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네가 학원 안 다니고도 공부 잘하는 것도 다 너네 엄마 덕분이라는 얘기도 나와. 그러면 정말 며칠은 가더라. 근데 그동안 너는 그런 일 없었잖아? 네가 얼마나 부럽고 우리 집은 얼마나 창피했는지 몰라. 비밀이 없기로 했지만 그 얘기는 도저히 못하겠지 뭐야.”
지우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내가 지우라도 그랬을 것 같다. 이제라도 지우가 솔직히 말해준 것이 고마웠다.
“난 네 친구니까 당연히 너희 집 일 맘 아파. 근데 나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말하는 거야. 나도 엄마아빠 싸우면 이혼할까 봐 걱정된다고. 다행히 이모들이랑 이모부들이 잘 챙겨줘서 금방 화해하긴 하지만.”
“그래, 너희 아빠가 외삼촌이랑 같이 가게도 하시잖아. 그리고 너희 부모님은 첫사랑이라면서. 우리 아빠처럼 옛사랑 만날 일도 없겠지. 넌 괜찮을 거야.”
“모르지 뭐. 너희 아빠처럼 성실한 분이 그럴 줄은 또 누가 알았겠어.”
그러게 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이렇게 현실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앞으로 또 얼마나 꿈에도 생각 못해본 일들이 일어날까.
부디 좋은 쪽으로만 그랬으면 좋겠다. 나나 동건이처럼 이런 일을 겪은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는 앞으로는 웃을 일만 생기면 좋겠다.
아빠는 계속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다고 한다. ‘그 사람’과는 계속 만나고는 있지만 내가 허락해 주기 전까지는 함께 살거나 결혼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할아버지를 뵈러 갔을 때 고모가 말해주었다.
할아버지는 아빠 일 때문인지 더 마르시고 늙어 보이셔서 가슴 아팠다. 그래도 내게 아빠를 봐주라는 비슷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기도하실 때 예수님을 본받아 부디 미운 이를 용서할 수 있는 지혜를 내려주십사, 하는 식의 말씀을 하시긴 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어림도 없지요, 삐죽 아랫입술을 내밀었지만 할아버지는 기도하시느라 못 보셨을 것이다.
일 년이 지나도록 엄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엄마는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내가 있어 외롭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꿈에서 본 것처럼 엄마에게도 좋은 사람이 생기길 바라고 있다.
동건이는 근무지가 바뀐 아저씨를 따라 멀리 전학을 갔다. 동건이가 전학 가는 날 지우는 펑펑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을 겪고 이겨낸 동건이는 어디를 가든 잘 해낼 거라 믿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들 ‘삼총사’가 더 이상 ‘삼총사’가 아니게 된 것은 몹시 슬펐다.
우리가 곧 중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 갈 것이 슬펐다.
가을에 졸업 사진을 찍으려 대기하고 있을 때 아빠의 전화가 또 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전화를 받았다. 아빠는 놀라서 울먹거렸다.
아빠를 용서한 것은 아니다. 이해한 것도 아니다. 다만 아빠가 일 년 넘게 나의 용서를 구하며 기다린 것에 대해 그만한 보상은 줘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엄마나 동건이의 충고나 할아버지의 드러나지 않는 압박도 지속적으로 있었고.
어른이 되면, 나도 언젠가는 아빠를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알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아빠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냥 이대로 흘러가게 두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동건이가 말했던 것처럼 이해하면 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