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은 금세 밥 한 공기를 비우고 반 공기를 더 먹었다. 요한은 국에 만 반 공기가 끝이었다. 갈비찜은 내가 놓아주었던 것만 먹었다. 손이 불편한 탓에 그나마 그가 좋아하는 채소류도 제대로 집어먹지 못했다.
진원이 단백질 류의 반찬을 그의 숟가락에 몇 번 얹어주었지만, 그나마 마치 밥알을 세어 먹는 양 찔끔찔끔했다. 엄마가 보았다면 틀림없이 남자가 돼 가지고 담뿍담뿍 먹어야지, 고기도 손으로 푹푹 잡아뜯고, 라고 혀를 찼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요한이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이에 진원과 나는 식탁 위를 치우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진원은 아직 써보지 않았음이 분명할 식기세척기를 처음으로 전원을 켜 보았다. 사용시 허리를 굽히기 싫어서 일부러 스탠드형으로 주문한 그 기기는 6인용이건만 두 사람이 먹은 그릇들로 반 넘게 차버려서 나는 약간 당황했다가, 이내 반찬 그릇의 수가 인원수에 정확히 비례하지 않음을 깨닫고 안심했다. 진원과 내가 방금 전처럼 차려먹을 일은 많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을 초대한다고 해도 집에서 식사는 거의 안 할 테니 별 문제 없을 것이다.
겨우 하나 했네.
약간의 씨름 끝에 식기세척기를 작동시키고 내가 말했다.
앞으로 세탁기와 건조기 등, 진원과 함께 만져야 할 살림살이들이 남아 있었다. 결혼 전에 미리 다 사용법을 숙지하고 진원과도 공유하려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었다.
진원이 엉거주춤 내 옆에 서 있었기에 나는 그를 마주보았다.
왜?
아니… 그냥… 미안하고 고마워서.
진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같으면 나를 껴안기부터 했을 텐데 주눅든 모습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떡해. 그럼 내쫓아?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까 우리 밥 챙겨줄 때… 엄마 같았어. 우리 어머니나 요한이 어머니도… 우리는 둘 다 그런 경험 거의 없으니까. 보통의 엄마들은 이렇게 하겠구나… 싶었지. 내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겠지? 그런 생각…
진원은 띄엄띄엄, 마치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나는 그를 그저 바라보았다.
진원은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그것이 그와의 결혼을 꿈꾸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였지만,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는 자신 없었다. 내 엄마가 좋은 엄마가 아니라서가 아니었다. 엄마는 나름 훌륭한 엄마였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다만 나 자신의 문제였다. 나는 내 엄마만큼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 자신이 없었다. 진원의 나무랄 데 없는 성품과 경제력, 그리고 시가의 든든한 재력이 단지 내가 기대는 바였다. 내가 결혼생활에서 진원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듯 진원도 내게 기대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요새 엄마들은 그렇게 못해. 우리 엄마도 돌아서면 밥때라고 아직까지 얼마나 힘들어하는데. 타고난 것도 다르고, 나는 엄마처럼 못해. 기대하지 말라고 분명히, 여러 번 말했다?
나는 제 발이 저려서 괜히 진원에게 타박하듯 말했다.
차암… 알았어. 그냥 그랬다는 거야. 그냥 감상도 말 못해?
부담되니까 그렇지. 자기는 남자라 그런 거 안 느껴도 되잖아.
자기가 부담 느끼면 나도 부담스러워. 불편해. 그냥 난, 뭐 어차피 그렇게 자랐으니까 상관없는데 우리 아이들은 좀 다르게 자랐으면 할 뿐이야. 자식 생기면 자기도 달라질걸? 더 유난 떨지도 모르지.
진원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긴, 나는 대범하게 자식을 키우리라 여러 번 다짐했지만 또 모를 일이었다. 내 아이의 아버지가 될 남자의 말처럼 오히려 극성엄마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렇더라도 친정엄마를 부려먹는 애물단지 딸년은 되지 말아야지, 정히 힘들면 시가에서 도우미 비용을 쓰게 할지라도. 그것이 내 또 다른 결심임을 아직 진원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요한 씨 늦어지네. 전화해 봐.
담배 한 대 피우고 돌아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나 있었다. 설마 밥까지 얻어먹고 어디로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 진원과 사장님의 속을 더 끓인다면 나는 그가 더 미워질 것 같았다.
진원이 전화를 하려 할 때 요한이 돌아왔다. 그의 귀가를 확인한 진원은 바로 나의 엄마에게 감사의 전화를 했고, 전화를 끊고 나서 내게 말했다.
어머님께 꽃이랑 과일 좀 보내드리고 싶은데. 아니면 뭐 다른 좋아하시는 거? 자기가 골라줘.
…꽃이랑 과일이면 될 거 같아. 좋아하실 거야.
내 엄마도 스스로 꽃을 사기에는 돈을 아까워하고, 생일이나 어버이날에 받게 되면 비싼데 뭐하러 샀느냐고 하면서도 소녀처럼 좋아하는 티를 숨기지 못하는 알뜰한 가정주부였다. 마음에 쏙 드는 사윗감이 보내드린 꽃바구니면 또 얼마나 좋아할까.
내가 진원에게 가서 그의 휴대전화로 검색을 시작했을 때 요한은 침실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나 그만 갈게.
야.
진원이 다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미안해. 특히 시은 씨한테… 미안해요. 당분간 가게만 안 나가면 괜찮을 거야.
가게만 안 나가서 될 일이면 데려오지도 않았어. 너 집에만 있게 하라고 형님이…
안 나가.
안 돼. 너, 형님이 너 걱정하느라 영업에 지장 있으셔야겠어? 이미 이번 일로 지장이 생겼잖아.
요한이 멈칫거렸다.
그래요. 그냥 있어요. 사장님이 와도 되겠다 하실 때까지. 진원 씨도 걱정하고 신경쓸 테고, 그건 나도 싫어요.
내가 진원의 말에 보태자 요한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 곧 갈 거고 당분간 안 올 테니까 편하게 있어요. 나한테 미안하다면, 그렇게 해요.
나는 쐐기를 박았다. 요한은 선생님께 꾸중 듣는 어린 학생처럼 서 있었다.
나는 집에 돌아갈 채비를 했다. 원래는 진원과 함께 밥 먹고 가까운 카페라도 갈 생각이었지만 요한과 함께 나갈 수도, 그만 놔두고 나갈 수도, 그렇다고 집에 셋이 함께 있기도 서로 불편하니 할 수 없었다. 다만 왜 진원을 바라보며 잠들어 있었는지 알아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 외에도 물어봐야 할 일은 많았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진원은 나를 태워다주러 밖으로 함께 나왔지만, 나는 혼자서 돌아갈 생각이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요한을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가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챙겨줘.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는 게 나을 거 같아. 할 수 있으면 되도록 퇴근해서 같이 저녁 먹어주고. 좀 있으면 뼈만 남겠어. 그 사람은 참…
사람 걱정시킨다고?
그래.
진원은 피식 웃었다.
챙겨주지 않을 수 없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원은 눈을 내리깔았다.
자기한테까지 벌써부터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지는 몰랐어. 그렇지만…
챙겨주지 않을 수 없다고?
이번엔 내가 말을 이어 물었다. 진원은 말없이 내 어깨를 감싸안았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진원은 탄식하듯, 다짐하듯 속삭였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요한으로 인해 진원에게서 그 말들을 들어야 할까. 나는 걱정이 앞섰지만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진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댈 뿐이었다.
우리는 모처럼 손을 꼭 잡고 한낮의 여름날을 걸었다.
우리의 앞날이 이토록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빛과 같다면, 어두움이라고는 무성한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고마운 그늘 한 자락만 같다면 좋을 텐데. 나는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꾸고 있었다.
******
요한은 진원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집에 머물렀다.
일요일인 다음날, 내가 가져다준 반찬으로 두 남자는 즉석밥과 함께 끼니를 챙겨먹고 낮잠을 즐겼다고 했다. 해질녘에는 함께 동네를 산책했다고도 했다. 그러다 편의점에서 저녁 겸 맥주와 과자를 간단히 먹고 집에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했다. 월요일 아침에는 요한이 진원을 깨워 밥을 차려먹이고 출근시킨 후 설거지와 청소 등 집안일을 말끔히 해놓고, 진원의 퇴근 시간에 맞춰서 그가 좋아하는 피자를 주문해놓았다나.
신혼부부가 따로 없네.
진원과의 통화에서 내가 말하자 진원은 왜, 질투나? 라고 웃었다. 그렇다고 말할 뻔했다.
진원과 요한은 서로에게 지극정성이었다. 적어도 요한이 진원을 챙겨주는 것은 아직까지는 나보다 훨씬 나았다. 대체 남의 신혼집에서 남의 남편될 사람에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에게 며칠 머물 것을 허락한 마당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저 요한이 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퇴근할 때 요한이 내 앞에 나타났다.
요한은 내가 퇴근시에 이용하는 건널목 한 구석, 커다란 가로수 아래에 서 있었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머리칼에 가려 눈도 잘 보이지 않았으므로 처음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적당히 큰 키에 마른 몸, 긴 팔다리와 마스크로 가려 더 작아 보였을 얼굴이 눈에 띄긴 했다. 누구랑 비슷한 체형이네, 정도로 생각하며 그의 앞을 지나가려 할 때 그가 내 옆으로 와 섰다.
나는 움찔하며 반 발짝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신호가 바뀌어 건너는데 그는 내게 가까이 붙어 걷는 것이었다. 건너편에 도착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기다리는데 그가 또다시 내 바로 옆에 섰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곁눈질을 했다. 그는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놓치지 않았네요.
그가 마스크를 살짝 내려 보이며 말했으나 여전히 앞만 보고 있는 채였다. 그러나 나는 옆얼굴과 목소리로 그가 요한임을 알아챘다. 그에게서 진원과 같은 비누향이 풍겼다. 순간 그에 대한 경계심이 누그러지는 것을 나는 느꼈다.
잠깐 얘기할 수 있어요?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와 단 둘이 만나지 않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에게 듣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후자의 욕구를 택했다.
…그래요.
나는 대답하고 걸음을 옮겼다. 요한이 조용히 나를 따랐다.
어디, 가고 싶은 데나 먹고 싶은 거… 있나요.
난 상관없어요. 시은 씨 편한 데로 가요.
나는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즐비한 도로변에서 벗어나 주택가로 들어섰다. 그곳에 내가 최근에 발견한 카페가 있었다. 그곳은 푹신한 소파들이 여유롭게 자리하고 다양한 음료와 제과류까지 갖춰져 있는 꽤 괜찮은 곳이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되었고 주변에 워낙 이름난 곳들이 많다 보니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으므로,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커다란 이파리가 달린 화분이 직접적인 시야는 가려주는 구석진 곳의, 벽을 마주보는 쪽으로 요한을 앉게 했다. 그의 유별난 외모가 남들 눈에 띄어 신경쓰이길 바라지 않았고, 이 더운 날 굳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나온 것을 보면 요한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였다. 해가 떨어지려면 아직 두어 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