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常有感 - 7.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워낙에 고립되어 살면서 정보입력 자체가 줄다 보니 저장된 기억들이 문득문득 불거져 나오는 것 같다. 그것들은 피할 수 없는 파도처럼 순식간에 밀려들어와 내 의식을 휘감는다. 피할 수 없다.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사건들이, 어느 순간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나버린다. 또한 많은 날 꿈에서 깨어난 직후의 나는 내가 기억하는지도 몰랐던 과거의 인연들과 경험들이, 무의식과 잠재의식에는 그대로 남아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그 순간의 나는 그때의 시공간으로 돌아가 있다. 너무도 생생한 탓에 정신이상을 의심할 정도로.
그러므로 나는 최면으로써 잊힌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믿게 된다. 당연히 세뇌도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그야말로 ‘통속의 뇌’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만약 그렇다면? 언제나처럼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어쨌든, 죽어야 할 또렷한 이유가 없는 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 인간이란 존재 역시 그러하고, 그리하여 나란 존재 역시 그렇다. 내게는 내가 모든 것이나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고 싶다. 사라져버리고 싶, 었다… 많은 순간.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나는 많은 순간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그건 내가 하기 싫은 일은 하고 있지 않아서지. 내 본성을 되찾는다고 생각되는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지. 몰입할 무언가가 있어서다.
숱하게 겹쳐지고 쌓여 있는 문제들은, 다양한 층위의 차원이 걸쳐 있고 그러므로 그 해결방식 역시 다채롭게 강구되어 행해져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실질적인 방법은 알 수가 없다. 이게 더 미칠 노릇이다. 아예 모르면 모를까 어설프게 안다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는 듯하다. 마치 이루지 못할 꿈을 꾸는 것과도 같이. 가지지 못할 것을, 주어지지 않은 것을 욕망하는 것과 같이, 너무도 괴로운 일이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러한 괴로움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게다…
어떤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가야 할 때가 있지만 또 어떤 때는 그저 숨을 죽이고 견디고 버텨야 하는 때도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삶은 그랬다. 여전히 그런 모양이다. 그래도 그 주기가 점점 늘어나고 그 방황의 시간은 줄어들고 있으니 괜찮아. 잘하고 있어. 나는 또 애써 나를 다독인다. 전에는 나를 다그치느라 바빴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그나마 나아진 거로군.
그러나 평온하고 안온하며 고요하고 적요하매 나는 가슴 벅차도록 감사하고 가슴 시리도록 아파한다. 살아온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싫은 일을 하지 않고 하고픈 일에 몰입하고 있어서 감사하고, 혹시라도 그 끝이 허망하고도 초라하게, 나의 꿈이 내가 나의 본성이라 생각한 것이 나의 몫이라 기억한 것이 단지 어리석은 망상이요 착각이며 헛된 욕심으로 판명될까 봐 두려워 아프다. 아프고 아파서 또다시 눈물이 난다.
그리고 그 눈물을 닦아줄 이는, 현재로서는 명백하게는, 없다. 나는 그저 홀로이 견딜 뿐이다. 그러나 그 또한 나의 선택이므로 서글플지언정 원망스럽지는 아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