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폭탄선언 - 2화. 이혼한 집 애

by 지구인



아빠를 만나 왜 엄마에게 이혼을 해달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듣는 것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인 지우에게조차 이 일을 도저히 말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다른 일 같으면 당장이라도 만나자고 해서라도 말했겠지만 이 일은 눈앞이 깜깜했다.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우와 나는 서로에게 비밀이 없기로 약속했었다. 우리 집에서 함께 본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의 앤과 다이애나처럼 두 손을 맞잡고 맹세한 사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커다란 비밀이 생기고 만 것이다.


내가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변명거리는, 아직은 엄마의 이야기만 들은 상태라는 점이었다. 아빠의 말을 듣고 나야 지우에게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빠와의 만남은 당분간 미루기로 했다. 내가 지우에게 말할 결심이 설 때까지 말이다. 굳이 아빠를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아빠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받지 않았다. 메시지도 보내왔지만 역시 답하지 않았다. 내용이야 뻔했다. 엄마가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마보다 좀 더 미안해하고, 나를 만나기를 고대하는 것만 달랐다.


엄마한테는 내 생각을 사실대로 말했다. 엄마는 내 뜻을 존중해 주었다. 다만 아빠가 너무 기다리게는 하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을 뿐이다. 하지만 나 역시 그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아니 지우와는 상관없이 이대로 그냥 아빠 얼굴을 보지 않을 수도 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학교에서 매일같이 지우를 만나면서 비밀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입이 간질거려서가 아니라 양심에 찔려서 말이다. 지우에게 미안했다. 지우와 단 둘이 있게 되면 도망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합, 하고 숨을 들이켜고 큰맘 먹고 말해 보려고도 했지만 보통은 다른 친구가 부르거나, 지우가 무언가 참견할 거리를 발견하고 자리를 뜨거나 하는 일이 생겼다.


언젠가는 아무 방해물도 없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우가 왜? 라고 물어보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해 버렸다. 지우는 이상하다는 눈길로 쳐다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실내화가방 세 개를 들어가며 지우 손을 꼭 잡고 등교했다. 지우가 좋아하는 왕꿈틀이를 매일 사갔고 동생 시우가 좋아하는 젤리도 챙겨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우는 역시 나밖에 없다며 나를 껴안고 팔짝팔짝 뛰었다. 동생까지 챙겨주다니 감동이라며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그러고는 왕꿈틀이를 우물거리며 동건이를 걱정해 주느라 바쁜 것이었다.




한 달 전 동건이가 말했던 것처럼, 동건이네 엄마는 사귀고 있던 아저씨의 아기를 가졌고 곧 결혼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건이는 바라던 대로 아빠와 살게 되었다.


동건이 엄마는 여전히 동건이를 놓아주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에는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동건이 외할머니를 비롯해 다른 어른들이 모두 동건이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늘 동건이 엄마 뜻을 따라주던 동건이 아빠도 이번에는 강하게 나갔다고 한다. 이번에는 순순히 포기해주지 않을 것이고 필요하면 재판까지 갈 것이니 각오하라고, 동건이는 자신이 잘 맡아 키울 테니 새 가족에게 전념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동건이네 엄마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가 우리 동건이 같은 일을 겪지 않게 제발 최선을 다 해줘. 그게 당신 할 일이야.”


그때의 동건이 아빠의 얼굴은 지금까지 봤던 얼굴 중에 가장 단호한 얼굴이었다고 동건이는 말했다. 그 말에 엄마는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고, 그런 엄마의 얼굴 역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고 동건이는 전했다.


“엄마가 재혼해서도 계속 엄마랑 살게 되면 엄마를 더 미워하게 될 것 같다고 했더니 아빠가 완전히 내 편으로 돌아서더라. 안 그랬으면 아빠는 또 엄마한테 져 줬을 걸.”


동건이네 아저씨도 우리 엄마처럼 동건이가 자기 엄마를 미워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 동건이 엄마는 진짜로 바람을 피웠는데도 말이다.


그때 동건이 아빠는 동건이를 생각해 이혼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건이 엄마는 아저씨만 보면 시비를 걸었고 결국은 싸움으로 이어졌다. 동건이는 엄마아빠 모두와 한 자리에 있으면 마치 보이지 않는 마법 몽둥이로 실컷 얻어맞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동건이는 한동안 외할머니께 맡겨졌다. 그렇다 보니 동건이는 마침내 부모님이 헤어지게 되자 오히려 기뻤다고까지 했다.


그때도 동건이는 아빠와 함께 살기를 바랐지만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엄마와 살게 되었다. 그러나 동건이 엄마는 집에 잘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혼 전에 그랬던 것처럼 평소에는 주로 외할머니가, 주말이나 휴일에는 아빠가 어린 동건이를 보살펴 주셨다.




“어쨌든 아빠랑 살게 된 건 다행이지 뭐야. 나랑 예빈이랑 얼마나 걱정했는데.”


지우가 동건이에게 말했다.


우리 셋은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중이었다. 지우가 사촌언니에게 용돈까지 빌려 동건이를 축하해 주겠다며 한 턱 쏘겠다고 한 것이다. 나도 함께 사겠다고 했지만 지우는 자기가 모처럼 마음먹은 거라며 거절했다.


사실 동건이는 치킨을 최고로 좋아하고 떡볶이는 지우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특히 지우가 엄청 좋아했다. 하지만 동건이가 좋아하는 치킨은 하필 비싸기로 유명한 브랜드였다. 지우가 가장 좋아하는 즉석 떡볶이 집에 두 번은 갈 수 있는 가격이었다. 동건이는 피식 웃으며 다음에는 자기가 치킨을 쏘겠다고 했다. 대신 떡볶이를 먹고 나면 동건이가 치킨 다음으로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내가 쏠 것이다.


“그래도 학원 다녀야 하는 건 똑같겠네. 아저씨가 저녁에나 퇴근하니까.”


“아빠랑 살 수만 있다면 학원 더 다녀도 괜찮아. 엄마한테 트집 잡히지 않게 열심히 할 거야.”


동건이는 단단히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동건이가 갑자기 어른스러워진 것 같았다. 힘든 일들을 많이 겪어서일 것이다.


나도 앞으로 동건이처럼 되는 걸까.


“아저씨도 이제 마음 놓고 데이트도 하고 그럴 수 있겠다.”


지우가 말했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사실 너네 아빠가 엄마에 아깝지. 아저씨는 키도 크고 훈남이잖아. 그에 비하면 너네 엄마는,”


아아, 또다시 ‘지우엄마’의 참견이 시작하려고 한다. 나는 지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파~ 왜 그래?”


나는 눈가를 찡그리며 살짝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아저씨도 남잔데 언제까지 아들만 바라보고 혼자 있겠어? 그동안이야 아직 네가 어리고 너네 엄마 무서워서 참고 산 거지 언제까지 그러겠냐고. 너네 엄만 재혼까지 하는데, 아빠 여자친구 정도는 동건이 네가 이해해 줘야지.”


아마도 지우의 엄마나 이모들이 얘기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하는 말일 것이다.


지우는 이모들과 사촌들과 한 가족이나 다름없이 지내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고, 나는 보기 어려운 밤늦게 하는 드라나마 영화도 많이 본다. 또 사촌언니들 영향으로 아이돌 소식도 잘 알고, 인기 동영상들도 안 본 게 없다.


반 아이들은 지우의 잔소리는 싫어하면서도 지우가 알려주는 정보들은 너도나도 듣고 싶어 한다. 지우가 ‘지우엄마’가 된 데에는 그런 집안 분위기 탓도 있을 것이다.


지우의 말을 듣고 보니, 어른들은 대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 엄마도 내게 했던 얘기니까 말이다. 하긴 동건이 엄마는 이혼한 뒤 얼마 안 되어 연애하고 이젠 재혼까지 하는데 아저씨만 외롭게 있는 것도 공평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막 아빠랑 살기 시작한 동건이에게 새로운 걱정거리를 벌써부터 알려 줘야만 할까. 정 많고 말 많고 웃음도 눈물도 넘치는 내 짝꿍 지우를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지우엄마’일 때의 지우는 꼭 좋지만은 않다. 잔소리를 넘어 참견이 지나칠 때가 종종 있다.


“우리 아빠랑 이모부들은 워낙에 술을 좋아해서 다들 배가 뽈록 나왔거든. 근데 너네 아빤 안 그러고 날씬하잖아. 머리숱도 많고. 우리 아빠는 점점 머리가 빠져서 엄청 스트레스받아하거든. 남자는 나이 들수록 머리숱이 중요하대. 대머리 안되면 ‘인생승리’한 거래. 그니까 아저씨가 맘만 먹으면 데이트할 아줌마들은 줄을 설 걸.”


지우의 말이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담임 선생님도 ‘지우엄마’의 말들은 다 맞는 소리긴 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은 기분이 나쁠 수 있다.


내가 동건이라면 지금은 아빠와 함께 살게 된 것만 기뻐하고 싶을 것 같다. 실컷 축하받고 싶을 것 같다.


“김지우, 그쯤 해라 응?”


동건이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우리 아빠지 너네 아빠 아니야. 우리 아빠가 데이트를 하건 말건 재혼을 하건 말건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이야.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너네 아빠나 신경 쓰지 그래? 아, 맞다. 네 말대로라면 너네 엄마아빠 이혼하더라도 너네 아빠는 확실히 데이트도 못할 거 아냐. 새엄마 생길 걱정은 안 해도 되니 아주 좋겠다, 야.”


“말 다 했어!”


지우가 소리치면서 동건이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지우는 동건이 뺨을 세게 때렸다. 동건이가 맞은 뺨을 손으로 감싸는 사이 지우는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동건이도 지지 않고 주먹다툼을 했다. 나는 싸움을 말리려 손을 뻗었다가 둘의 주먹에 얻어맞았다.


“아얏!”


순간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아팠다. 삔 것 같았다. 내가 주저앉자 둘의 싸움이 그쳤다.


“괜찮아?”


지우와 동건이가 거의 동시에 물었다. 지우는 바로 주저앉아 나를 살폈다. 그러다 다시 동건이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너 때문에 이게 뭐야! 괜히 예빈이만 다쳤잖아!”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네가 우리 아빠 못생겼다고 욕했잖아! 가족을 건드리는데 어떻게 참냐?”


“네가 먼저 우리 아빠 얘기했잖아!”


“바보냐? 나는 너네 아빠 멋있다고 칭찬한 거잖아! 너는 우리 아빠 욕한 거고!”


“웃기시네! 아빠 칭찬하면서 우리 엄마 욕하려고 한 거 모를 줄 알아?”


둘의 말싸움은 내가 끼어들 틈도 없이 이어졌다.


지우야 원래 말로는 지지 않는 아이지만, 동건이도 그렇게 말을 잘할 줄은 몰랐다. 나는 말싸움의 내용보다도 동건이가 지우에게 지지 않고 대꾸하는 게 신기해서 손가락이 아픈 것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내가 나도 모르게 구경꾼이 되어 가고 있는 사이 주변에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음식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상가의 먹자골목이었으니 당연했다.


둘의 싸움이 더 길어지면 이래저래 안될 것 같았다. 나는 내 손가락을 다친 것을 이용해 둘을 화해시켜야겠다 마음먹었다. 적어도 지금 여기서의 싸움은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마음먹고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이혼한 집 애하고는 놀지 말라는 거였어. 역시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우리 같은 애들하고는 틀리다니까. 야, 네가 재수 없고 팔자 센 자식이라 부모가 같이 못 살고 헤어지는 거야! 불쌍해서 놀아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나대기는!”


지우는 그렇게 동건이에게 쏘아붙이고는 내 팔을 이끌었다.


“가자, 예빈아.”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 했다. 그저 지우가 이끄는 대로 발이 움직였을 뿐이다.


나를 끌다시피 해서 떡볶이 집으로 가는 동안 지우는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우가 방금 전에 한 말과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내 머릿속엔 좀 전의 지우의 말이 계속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말들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내가 제정신이 든 것은 떡볶이 가게 앞에 도착해서였다. 지우는 내 팔짱을 끼고 가게 안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멈춰 섰다.


“나 지금 못 먹을 것 같아.”


진심이었다. 떡볶이든 아이스크림이든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은 지우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웃으며 이야기할 수 없다.


“…손가락이 점점 더 아파. 아무래도 엄마한테 가봐야 할 거 같아.”


지우의 눈이 동그래져서 내 다친 손가락을 들여다보았다. 보기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약간 아프긴 했지만 참을 만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손가락 말고는 다른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너네 엄마 약국에 들렀다 가자.”


“아니, 아니야. 손가락 말고도 아까 맞았는지 팔도 아프고…. 아무래도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 다음에 먹자.”


“에이 참, 어쩔 수 없네. 그럼 내가 바래다줄게.”


“아니야. 모처럼 먹기로 한 건데 그냥 가기 아깝잖아. 언니들한테라도 전화해 봐.”


“아, 맞다. 언니들도 이쪽으로 놀러간댔다.”


지우는 좋아하며 전화를 걸었다.


나는 지우의 사촌언니들이 바로 전화를 받기를, 언니들이 이쪽으로 오든 지우가 언니들한테 가든, 어쨌든 지우와 여기서 헤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응, 알았어. 빨리 와~.”


지우가 전화를 끊었다. 만세, 내 기도가 이루어졌다.


“언니들 코인노래방이래. 한 곡 남았대. 끝나면 바로 온대. 중간까지라도 바래다줄게.”


“아니야. 먼저 들어가서 자리 잡고 있어. 그래야 바로 먹지.”


“그치만….”


지우는 입맛을 다셨다. 나는 안다. 지우는 이미 떡볶이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이다.


“얼른 들어가. 나 갈게.”


지우가 망설이는 사이 나는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떴다. 지우는 어버버 하다가 내게 손을 흔들었다.


“미안해, 예빈아. 집에 가면 꼭 전화해~!”


지우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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