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걸음을 빨리 해서 얼른 떡볶이 가게 앞을 벗어나려고 했다. 지우의 눈에 띄지 않아야 했다. 엄마한테 가는 게 아니라 동건이와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우가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동건이에게 전화했다. 통화 연결음이 세 번쯤 울리고 나서 동건이가 전화를 받았다.
“나야. 어디야?”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동건이는 아까 지우와 싸우던 곳에 그대로 있었다. 건물들 바로 앞 인도에 나무들이 심어진 곳을 둘러싼 낮은 벽돌담 위에 동건이가 걸터앉아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동건이 쪽으로 갔지만 바로 옆까지는 가지 않았다. 혹시라도 지우네 언니들과 마주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언니들은 틀림없이 나와 동건이가 왜 함께 있는 것인지 따지며 동건이와 나를, 특히 동건이를 무섭게 몰아붙일 것이다. 동건이는 제대로 말도 못 할 것이고 언니들은 지우와 화해해야 한다며 동건이를 지우에게 끌고 가려할 것이다.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 상황에서 나는 다시 지우에게 돌아가도, 아니면 아프다는 핑계로 혼자 빠져나가는 데 성공하더라도 둘 다 가시방석일 것은 틀림없다. 지금 내 마음은 완전히 동건이 편이지만 지우와 그 언니들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나는 언니들의 눈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동건이 앞으로 가서 빠르게 말했다.
“지우네 언니들 이쪽으로 올지도 몰라. 일단 건물로 들어가자.”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동건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건물 입구 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나도 바로 뛰어 들어갔다. 동건이는 입구에서 기역 자로 꺾어지는 벽 쪽에 붙어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지우의 사촌언니들이 약간 불편한 정도이지만 동건이는 숨이 막힌다고 했다. 동건이는 나처럼 외동인 데다가 가깝게 지내는 사촌누나들도 없었다. 동건이가 평소에 보는 여자라고는 엄마나 할머니처럼 어른이거나 지우나 나처럼 또래가 전부여서 몇 살 위인 누나들을 대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평소 지우의 사촌언니들은 동건이가 잘생기고 귀엽다며 지우가 동생 시우 챙기듯 잘 대해주었다. 하지만 역시 ‘지우엄마’의 언니들답게 잔소리를 빼먹지 않는 데다가 동건이가 자기들보다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남자라고 따돌릴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동건이는 언니들과 함께 하는 것을 더욱 피하고 싶어 했다.
“왜 다시 왔어?”
벽에 붙어 선 채로 동건이가 물었다. 우리가 선 벽과 마주 보는 벽 사이 통로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지우네 언니들 온다고 해서.”
이렇게 말하면 동건이가 더는 안 물어볼 것이다. 예상대로 동건이는 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지우가 심한 말을 했어.”
동건이가 나를 보았다.
“나도 너무 놀랐어. 속상했지.”
동건이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숨을 씩씩거리는 것이 울음을 참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아빠도,”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이혼할 거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거기에서 그렇게 말해버렸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이 세상에는 나와 동건이 둘만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앞을 오고 가는 사람들은 안경을 벗고 볼 때처럼 뿌옇게 보였고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소리는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웅웅거렸다.
“뭐 때문에? 너희 부모님은 싸운 적도 없다며.”
내 말에 동건이의 눈물은 쏙 들어가 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정확히는 나도 몰라. 아빠 말을 안 들어봤거든. 근데 보기 싫어.”
다시 안경을 고쳐 쓰며 나는 대답했다. 지우에게는 그렇게도 떨어지지 않던 내 입술이 동건이 앞에서는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빠가 엄마한테 이혼해 달라고 했다는 것만 알아. 한 달 전에 그랬대. 그동안 나 몰래 둘이 계속 얘기는 했는데 엄마도 결국은 그러기로 했다고 하더라. 나한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대. 이해해 달래.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나는 마치 이런 상황을 기다린 것처럼 빠르게 말을 쏟아놓았다. 동건이는 진지한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바로 답을 하지는 않았다. 동건이도 우리 엄마처럼 때때로 할 말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아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엄마아빠한테 솔직하게 얘기해 달라고 해. 네가 이해 못 할 얘기라도 일단 다 말해달라고 해. 나중에 커서 이해하면 되니까.”
동건이가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너는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잖아. 우리 엄마는… 나한테 한 번도 진지하게 얘기해 준 적 없었지만 나도 엄마랑 말하기 싫어서 물어본 적도 없었지. 엄마가 술 취했을 때나 화나서 소리 지른 것 말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어, 엄마한테는. 그래서 더 엄마가 미웠던 거 같아. 뭐 내가 너무 어렸을 때니까.”
나는 숨을 죽이고 동건이의 말에 집중했다.
“지금이라면… 엄마 얘기를 들어줬을 수도 있었을 거 같아. 엄마한테 진지하게 물어봤을 수도 있을 거 같아. 내가 지금 이해 못 하는 얘기더라도, 듣고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커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도 이해 못 하면 어쩔 수 없고.”
“그치만 지금은 아빠 꼴 보기도 싫은 걸.”
“그야 당연하지. 근데 아줌마도 아빠 보기 싫대? 보지 말래?”
“우리 엄마는 오히려 아빠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말랬어. 둘은 아직도 전화라도 하는 거 같더라. 나한테도 미안하다고 전화랑 메시지 맨날 보내긴 해.”
“거 봐, 역시 우리 집이랑 다르네. 엄마 말대로 해. 다 너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내가 알던 동건이는 어디로 간 걸까? 아무리 요즘 들어 의젓해졌다고는 하지만 마치 ‘동건아빠’가 된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요새 동건이는 아저씨와 더욱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지우보다 작기는 하지만 여름방학 동안 키도 훌쩍 커졌다. 지우라면 동건이가 엄마를 닮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또 한 바탕 묻지 않은 말들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러다가 또 동건이가 화낼 말을 내뱉을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 지우가 없다는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단짝 지우가 아닌 동건이와 단 둘이 있는 것이 이렇게 마음 편할 때가 있을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더 이상한 것은 지우에게 미안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 웃긴다.”
“뭐가 웃겨?”
“너랑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게, 상상도 못 해본 거라 너무 황당해. 너무 황당하니까 웃음이 다 나오네, 울어도 모자란 판에.”
“그건 그래.”
동건이가 피식 웃더니 이어서 말했다.
“나는 온 동네 시끄럽게 겪었지만 너는 안 그러겠지. 그건 부럽다. 아니아니 그렇다고 잘됐다는 뜻은 아니야.”
동건이는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얼굴까지 빨개졌다.
“됐어. 무슨 말인지 알아. 맞는 말이지 뭐.”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이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동건이네 집은 소문이 요란했다. 동건이 아빠가 동건이를 데리고 가까운 우리 집으로 피한 적도 많을 정도였다.
동건이 아빠와 우리 엄마는 동건이와 나처럼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낸 동네친구 사이였다. 그리고 동건이네 아저씨가 우리 엄마에게 아저씨의 대학교 친구인 아빠를 소개했다. 그래서 이혼 전에는 우리 가족과 동건이네 가족이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어릴 때라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이혼한 후에도 동건이네 아저씨는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우리 아빠까지 셋이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아빠가 워낙에 바빠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긴 했지만 말이다. 바쁜 아빠를 대신해 아저씨가 나까지 데리고 셋이서 놀이공원이나 당일치기 캠핑에 데려가 준 적도 많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배가 고팠다. 지우 말로는 언니들이 노래 한 곡만 더 하고 바로 온다고 했으니 이제는 나가도 될 것이다.
“우리 아빠 집에 가서 치킨 시켜 먹자.”
동건이가 말했다.
“아님 네가 먹고 싶은 거. 우리 아빠한테 사달라고 하자.”
동건이네 아빠는 우리 집 일을 알고 있을까. 아빠나 엄마가 아저씨한테 얘기했을까. 아저씨는 뭐라고 했을까. 혹시 아직 모르더라도 내가 동건이에게 말했으니 곧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 바에 아저씨는 뭐라고 할지 궁금해졌다.
“좋아.”
나는 대답했다.
동건이네 아빠가 사는 오피스텔 건물 입구에 도착했을 때 지우에게 전화가 왔다. 그제야 지우가 전화하라고 한 것이 생각났다. 내가 우리 집으로 갔다면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고 좀 있다 메시지를 보낼 생각이었다. 지우가 전화를 두세 번 더 걸어오는 동안 동건이와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동건이 아빠네 집에 도착했다.
동건이가 오는 길에 전화를 해두었기 때문에 동건이 아빠는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나는 처음 와보는 것이다.
현관에 들어섰을 때 라면 냄새가 확 들어왔다. 작은 창문이 열려있었지만 아직 냄새가 남아 있었다.
“아빠 또 라면 먹었어?”
동건이가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나한테는 라면 먹지 말라고 하면서.”
“아빠는 어른이니까 괜찮아.”
멋쩍게 웃는 아저씨의 구겨진 티셔츠에 라면 국물이 튀었는지 붉은 자국들이 보였다. 뒷머리가 뻗쳐 있었고 수염도 깎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집에서 편하게 있을 때는 아저씨도 멋있지 않구나, 생각하며 집에 들어섰다.
아저씨가 혼자 살던 곳이라 집은 작았다. 현관이 우리 집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바로 작은 싱크대가 한쪽 벽에 붙어 있었고 창가 쪽에는 매트리스 위에 이불이 흐트러져 놓여있었다. 그 사이에 두 명이 앉으면 꽉 찰 것 같은 네모난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있었다. 침대와 맞은편에 놓인 TV에서는 야구 중계가 나오고 있었다.
“오늘 토요일이라 배달 시간이 좀 걸린다는데 배고프지, 둘 다? 우유라도 마시고 있을래?”
아저씨가 싱크대 옆에 있는 냉장고 아랫칸을 열며 물었다.
“저는 물 한 잔만 주세요.”
동건이와 함께 테이블 의자에 앉으며 내가 말했다.
“나도 물 줘. 우유 마시면 치킨 맛없잖아.”
동건이가 말했다. 아저씨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머그잔 두 개에 물을 따랐다.
아저씨가 테이블에 물을 놓아주었을 때 내가 말했다.
“혹시 우리 엄마나 아빠한테 우리 집 얘기 들으셨어요?”
아저씨가 물통을 다시 냉장고에 넣으려다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빠도 아는구나.”
동건이도 눈치챘는지 말했다. 아저씨가 물통을 마저 냉장고에 넣고 우리에게로 몸을 돌렸다.
“…너까지 안다고?”
“좀 전에 제가 말해줬어요. 아저씨 우리 엄마아빠한테 들은 얘기 있는 거죠? 대체 이유가 뭐래요?”
“너희 아빠가 직접 말해줄 거라고 들었는데.”
“네. 근데 아빠 얼굴 보기 싫어요. 우리 엄마든 아빠든 아저씨한테는 이유 말해줬을 거 아니에요?”
“그게… 좀 곤란한데.”
아저씨가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아저씨는 예빈이네 가족이 아니잖아. 더구나 좋은 일도 아니고…, 아저씨가 함부로 떠들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엄마아빠가 저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저씨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뿐이야. 아빠를 만나 얘기를 들으렴. 아빠한테 화난 예빈이 마음 아저씨도 백 번 이해해. 아빠도 각오하고 있을 거야.”
우리 엄마와 동건이, 동건이네 아저씨까지 모두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갑자기 지우가 생각났다. 만약 지우한테 말했다면 지우도 그랬을까? 아니, 지우라면 무조건 내 편이었을 것이다. 나보다 더 우리 아빠한테 화를 내며 방방 뛰었을 것이다. 자기랑 같이 우리 아빠한테 따지러 가자며 나더러 앞장서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지우에게는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 도저히 말할 자신이 없었다는 점이 슬펐다.
아니, 지우가 동건이에게 한 못된 말들 때문에 이젠 더 말할 수 없다. 지우가 한 말들을 곱씹어 보려고 하는데 동건이가 말했다.
“그래, 아까 나도 그랬잖아. 아빠 말 듣고 이해되면 좋고, 이해 안 되고 더 화가 나면 화내면 되잖아. 그래도 미안하다고 했다며. 우리 엄마는 미안하다고 한 적도 없어.”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아저씨가 재빨리 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어서 먹자!”
아저씨가 치킨을 테이블에 놓으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동건이는 벌떡 일어나 비닐봉지에서 치킨상자와 음료 등을 빠르게 꺼내고 먹기 좋게 테이블에 늘어놓았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동건이는 치킨상자를 열고 닭다리부터 입에 가져갔다. 아저씨는 냅킨으로 남은 닭다리를 집어 내게 주려 했지만 나는 손을 씻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동건이는 귀찮다며 물티슈로 대충 손을 닦고 정신없이 먹기 바빴다.
“동건이나 예빈이나 엄마아빠 때문에 고생이 많네. 어른들이 미안해.”
아저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냥 아저씨 얼굴을 한 번 보고 치킨을 먹었다. 내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지우였다. 나는 벨소리를 무음으로 바꿔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