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솔제니친>

제도에 갇히다

by 량화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1963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류필하 옮김, 소담출판사, 1994년>


“죄수들의 상념이란 결국 똑같은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10년의 형기 중 2년이 남았다. 1951년 1월 1일 현재, 40세, 그는 소련의 특수범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군의 포로가 된 후 도망쳤지만 소련 당국은 그에게, 적군의 첩보 활동을 위해 의도적으로 포로가 되었다가 다시 아군에 침투했다는 죄목을 붙였다. 독재자 스탈린은 첩자, 부농의 가족, 종교 신자, 불온한 영화 제작자 들을 정권의 위협 요소로 보았고, 그들을 광범위하게 탄압했다.


죄수들을 다루기 위한 당국의 방안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음식은, 살아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만 공급했다. 규칙을 어기는 자는 영창으로 보내 식량을 더 줄이고, 추위에 더 떨게 하여 목숨의 소중함과 고통의 괴로움을 일깨워 주었다. 형편이 되는 자들은 지인들의 소포 배달을 통해 음식과 방한 용품, 소모품을 보충했다. 소포는 수용소의 간부와 이해관계가 있는 죄수들에게 나누어졌다. 그 물품은 다시 옷과 신발을 수선하거나 궂은일을 대신하는, 부업하는 자들에게 흘러가서 수용소의 부족한 물자를 채웠다. 작업량을 달성한 정도에 따라 작업반 전원이 추가 급식을 받을 수도, 배를 곯을 수도 있었다. 작업 결과는 수용소의 이득으로 돌아와 소속 장교들에게는 상여금을, 죄수들에게는 상여 급식을 지급했다. 제한된 음식과 물자, 휴식 시간을 두고 다투어야 하는 환경에서 죄수들은 서로를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인식했다.


죄수들이 단합하여 저항하거나 지배 조직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면 죄수들을 통제할 수 없다. 죄수들 사이에 경쟁과 불신, 시기심을 조장하여 자연스럽게 서로를 억압하는 구조를 만든다. 자발적으로 동료 죄수를 밀고하는 것은, 자신이 보다 안락한 보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밀정 행위는 죄수들의 연대를 더욱 어렵게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죄수들은 더 이상 지배 조직과 싸우지 않고, 대신 동료와 싸우며 지쳐간다. 무기를 지닌 경계병과 장교에게 맞선다는 건 자살 행위다. 배짱 있는 신참 죄수가 가끔 간부에게 규정에 대해 따져 묻지만 몇 번 영창 경험을 하고 나면 생명의 절실함을 깨닫는다. 잠과 자유 시간이 늘 부족한 죄수들은 다른 작업반보다 무엇이든 서둘러야 하고,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서 체면은 기꺼이 버린다. 식당에 먼저 들어가기 위해 밀쳐 대고, 어느 그릇에 건더기가 더 많은지 살피고, 접시 반환 창구에서는 접시를 핥아먹으려는 자들이 눈을 번득인다. 어느 순간에는 담배꽁초 하나, 한 그릇의 국이 자신들의 자유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된다. 종료 신호를 듣지 못할 만큼 작업에 열중하는 것은 추가 급식에 대한 갈망이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작업반원 모두의 휴식 시간을 빼앗기면, 죄책감과 함께 동료들의 욕지거리와 저주의 눈빛을 감당해야 한다.


주인공은 해방의 날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의 꿈은 정권 교체에 의해 이루어졌다. 세계 각국에서 노예제를 폐지한 주체는 노예가 아니라 정치 세력이었다. 스탈린 사망 후 소련은 개혁, 개방 정책을 펼쳤다. 소련의 강제 수용소 제도를 폐지한 주체도 죄수가 아니라 정치 세력이었다. 제도의 힘은 세다. 제도 안에 갇힌 자들이 제도의 문을 열기는 어렵다. 정치 세력의 핵심은 사회 구성원의 연대다. 사회의 개혁에 직간접적으로 연대할 때 변화는 빨라질 것이다. 누구나 부당한 제도의 잠재적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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