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설명하지 않을 자유

by 량화수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1853년>

『필경사 바틀비』 <한지윤 옮김, 푸른책들, 2013년>


“하지 않는 편을 선호합니다.”


나는 변호사다. 그리고 내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갑자기 바빠져서, 침착해 보이는 필경사 한 명을 더 고용했다. 그는 바틀비였다. 입사하자마자 그는 쉬는 시간도 없이 매우 많은 양을 기계적으로 필사했다. 3일째 되는 날, 내가 그에게 서류 하나를 비교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하지 않는 편을 선호합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분노했지만 그는 태연하고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남에게 매몰차게 대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남을 도와야 한다는 종교적인 신념도 있었고, 그가 바쁜 업무에 도움이 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서 그와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서류를 비교하는 일, 우체국에 다녀오는 일, 다른 직원을 불러 달라는 것 같은 나의 요청을 계속해서 거부했다. 더구나 그는 거절하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를 채용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방탕하지 않고 조용했고 감정이나 행동에 기복이 없었고 정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필사도 거부했고, 의식주를 사무실 안에서 해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그를 해고했다. 그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무실에서 나가는 것조차 거부하며 어떤 변화도 겪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더 이상 그를 설득할 수 없었다. 연민 때문에, 그를 관청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대신 내가 사무실을 옮겼다. 내게서 사무실을 산 새 소유주는 나와는 다르게 처분했다. 그를 경찰에 신고했고, 그는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음식을 거부하며 교도소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바틀비의 이전 직장은 ‘수신 불능 우편물 취급소’였다. 희망을 전달해야 했지만 수신자가 이미 죽었음을 확인한 후, 그 편지를 태워야 했던 숱한 절망이 아마도 그를 우울증에 빠뜨렸다. 필경사로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 그의 병은 이미 깊어졌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거부했고,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해고당한 이후에도 사무실에서 나갈 수 없었다.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에는 생명의 집착도 사라졌다.


바틀비는 사회가 만든 일터에서 일했고, 그 일 때문에 마음의 병을 얻었다. 하지만 그가 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사회는 그를 구제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어떤 이유든 어떤 사람이든,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질 수 있고 곤궁에 처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바틀비는 말하고 있다. 그가 갔어야 할 곳은 교도소가 아니라 복지시설이었다.


하지 않는 편을 선호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느냐고 모두가 다그칠 때, 설명하지 않을 선택도 인정해야 한다고, 자신에 대해 설명하지 않을 자유도 필요하다고 그는 침묵으로 말한다. 우리는 때로, 설명하고 싶지 않을 때가,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설명하지 않는다면, 상대에게 평가받는 것으로 값을 치러야 하겠지만, 비난할 수도 강제할 수도 없는, 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라고 바틀비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1853년 자본주의 미국이 아닌 현재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였다면, 바틀비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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