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 <셰익스피어>

권력은 이양하고 권위는 유지하라

by 량화수

『리어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1608년>

『리어왕』 <한우리 옮김, 더클래식, 2013년>


“나는 매달 그대들이 부양하는 백 명의 기사와 함께 그대들의 집에 머물 것이다.”


영국의 왕 리어는 영토를 딸들에게 나누어 주고 통치권을 이양하기로 했다. 80세의 나이로는 국정 부담이 컸고, 딸들의 다정한 보살핌을 받으며 여생을 편히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리어는 이미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다. 아첨에 서툰 셋째 딸에게 실망하여 첫째와 둘째 딸 부부에게만 영토를 나누어 주었고, 리어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직언하는 켄트 백작을 추방했다. 프랑스 왕은 셋째 딸의 미덕에 감동하며 지참금 없는 그녀와 결혼했다.


리어는 왕위에서 물러났지만 백 명의 기사를 거느리며 권위를 유지했다. 첫째와 둘째 딸이 보기에 리어는 건강했던 시절부터 늘 경솔했고, 노망이 든 지금은 발작적인 행동이 더해졌다. 그동안의 습관처럼 권력을 다시 휘두르려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첫째 딸과 함께 지내는 동안 리어는 기사들과 사냥을 즐겼고, 한편으로 딸의 가신들에게 간섭하며 그들을 꾸짖기도 때리기도 했다. 기사들과 시종들도 리어의 권력을 배경으로, 무도하고 방탕했다. 첫째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리어와 기사들에게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리어에게 기사의 수를 오십 명으로 줄일 것과, 분별 있는 처신을 요구했다. 리어는 배신감을 느꼈다. 자신의 부하들은 엄선되었고, 본분을 지키며 만사에 충실하고 명예를 지키는 이들이었다. 리어는 첫째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둘째에게 갔다.


리어는 둘째에게 첫째의 잘못을 고발했다. 하지만 둘째는 첫째의 행동을 두둔하며, 리어에게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첫째에게 돌아가 용서를 구하라고 조언했다. 리어는 단연코 거부했고, 자신이 영토와 통치권을 줄 때 일정한 수의 시종을 거느린다는 합의 조건을 둘째에게 상기시키며, 은혜와 예의에 맞는 본분과 책임을 요구했다. 둘째가 비용과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며 수행원을 스물다섯 명으로 줄이라고 요구하자, 리어는 오십 명을 제안한 첫째에게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첫째는 리어의 수행원은 단 한 명도 둘 수 없고, 자신의 부하에게 시중을 받으라고 했다. 리어는 분노했고, 두 딸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잠시라도 딸의 성에 더 머무르는 것은 모욕이었다. 리어는 폭풍우 치는 벌판으로 말을 타고 떠났다. 리어의 약해진 권력을 눈치챈 수행원들은 모두 리어의 곁을 떠났다.


리어가 핍박당한다는 소식을 들은 셋째는,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리어를 구하려고 출병했다. 하지만 셋째는 첫째와 둘째의 연합 세력에게 패했고, 첫째의 명령으로 살해당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첫째와 둘째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기사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퉜다. 첫째는 둘째를 독살해 버렸고, 본인의 범행이 드러나자 자살했다. 리어는 셋째의 시신을 품에 안고, 슬픔에 빠져 숨을 거두었다.


리어의 지력은 노쇠했지만, 욕심은 노쇠하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권력자에게 이전 권력자의 세력은 용납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권력에 대한 탐욕은 부녀와 부부와 자매의 애정을 쉽게 파괴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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