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베이스 <쥐스킨트>

왜곡된 자존감

by 량화수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1981년>

『콘트라베이스』 <박종대 옮김, 열린책들, 2020년>


“어느 측면으로 보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정말 최악의 쓰레기입니다!”


나는 독일의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이며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35세이며 공무원 신분이다. 콘트라베이스는 현악기 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낮은음을 내는, 오케스트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악기다. 연주할 때나 이동할 때 매우 힘이 든다. 비가 오거나 추우면 소리가 죽어서 음이 풀어지기 때문에,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도착해서 온도 관리도 해야 한다. 누구나 기피하는 악기라서 처음부터 콘트라베이스로 시작한 사람은 없다. 나도 플루트, 바이올린, 트롬본을 거쳐 17세부터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했다.


나는 음악가의 능력은 부족하고, 손재주로 돈을 버는, 음악을 좋아하는 유능한 기술자다. 바이올린 연주자나 작곡가나 지휘자가 될 만한 실력은 못된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어느 특정 회사에서 고용하는 경우는 없다. 독주회도 없고 경비만 많이 나가기 때문에 그때그때 연주자를 단기 계약한다. 오케스트라의 자리 배치도 무대에서 가장 먼 곳이다. 다른 악기 소리에 묻혀 버리기 때문에 누구도 이 악기 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 박수갈채에 답례하기 위해 단원들이 모두 일어설 때에도, 악기의 덩치 때문에 자리에서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쓰레기 같은 존재다. 오케스트라의 세계는 능력에 따라 위계질서가 잔인하게 정해지고, 그 질서는 변동하지 않는다. 이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짓을 계속하고 있다. 나도 굴착 노동자나 쓰레기 청소부와 같은 육체 노동자이지만, 나는 그들과는 다르게 예술이나 능력, 자유, 이상, 희생에 대한 고민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주인공의 직업은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이지만 오케스트라의 수직적인 위계질서 조직에서 가장 낮은 위치의 역할에 대해, 자유도 보람도 자존감도 느끼지 못한다. 악단을 떠나고 싶지만 퇴사 후의 생계에 자신이 없다. 소수의 연주자들이 모여 자유로운 음악을 함께 만들어가며 예술, 자율, 보람, 수평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실내악이 그의 이상이다. 하지만 상상만으로 일을 벌이는 위험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어린 시절, 가족에게 애정을 받지 못한 영향으로 그는 애정결핍 증상을 보인다. 자존감이 낮고, 특정인을 우상화하고, 대중에게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오케스트라 조직에서 낮은 지위에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며,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한다. 다른 연주자의 틀린 반음까지 날카롭게 비판하는 그였지만, 그녀의 소프라노에 대해서는 많은 실수가 있더라도 아름답다고 평가한다. 속앓이만 하는 자신의 사랑과 이상에 대해 공연장에서 관객에게 큰 소리로 알리는 상상도 한다.


그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적 지식도 풍부하고 오케스트라에서 필수적인 악기를 뛰어난 실력으로 연주하며 직업도 안정적이지만, 조직과 대중에게 인정받는 지위에 서고 싶고 기술을 넘어 예술적인 연주를 하고 싶다. 달성할 수 없는 이상에 대한 갈망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평가를 왜곡하고, 자신은 더욱 초라해진다. 회계사나 청소부 같은 다른 직업의 노동자들은 마치 자유, 보람, 지위에 대한 고통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정년퇴직까지 절대로 직장을 잃지 않는다는 확신은, 오히려 그때까지 현재의 괴로운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마음은 항상 이상을 그리며 현실을 아쉬워하기 마련이지만 왜곡된 자존감은 그를 집 밖으로도 나가지 못하게 하는 불안증을 야기했고, 모든 사람과 모든 즐거움을 쫓아낸 빈자리에는 알코올이 차지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광인일기 <루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