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결말
『루쉰 소설 전집』 「아큐정전」 <김시준 옮김, 을유문화사, 2008년>
“나는 혁명하려고 했어.”
아큐는 집 없이 마을의 사당에서 지내며 남의 집 날품을 팔면서 혼자 살았다. 예전에는 견식 높고 잘살았던 집안이라며 그는 허세를 부렸고, 어떠한 패배라도 승리로 둔갑시키는 정신적 승리법이 있었다. 조 영감 아들이 수재에 급제했을 때, 아큐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자신이 조 영감과 한 집안이고, 자신의 항렬이 조 영감 아들보다도 셋이나 위라고 말했다. 다음 날 조 영감에게 불려 가서, 네놈이 조 씨 될 자격이나 있느냐는 물음에 대꾸도 못하고 따귀만 맞았다. 이놈의 세상은 정말 못돼먹었군, 아들놈이 아비를 치다니. 그렇게 내뱉고 나서 항렬을 따져보니, 문득 조 영감이 자기 아들같이 여겨져서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에게 맞고 나서, 자신보다 약한 분풀이 상대를 찾지 못하면, 그는 자신의 뺨을 때린 후 평온을 느꼈다. 때린 것은 자신이고, 얻어맞은 것은 또 다른 자신 같았고, 자기가 남을 때린 것같이 만족하여 의기양양했다. 자신보다 약하면 놀리고 짓밟고 무시했고, 자신보다 강하면 부당하게 얻어맞고 돈까지 빼앗기고도 저항하지 못했다. 성안에서 훔친 물건을 마을 사람들에게 싼 가격에 팔아먹었을 때를 제외하면, 그는 늘 모두에게 무시당하며 지냈다.
1911년 11월 4일, 신해혁명이 일어난 지 24일째 날, 흰 투구와 흰 갑옷을 입은 혁명당이 입성했다. 혁명당이 반역했다는 소문 때문에 아큐는 혁명을 증오했으나, 거인 영감까지 혁명당을 무서워한다는 또 다른 소문 때문에 혁명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을 바꿨다. 개 같은 놈의 세상, 뒤집어 엎어져라! 그에게 혁명은 자신을 괴롭혔던 자들을 처형하고, 그들의 재물을 빼앗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청나라의 멸망을 선포하듯 성안에서는 변발을 자르기 시작했지만, 관직의 명칭만 바뀌었고 민중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혁명당을 사칭한 도적들이 조 영감 집을 약탈한 나흘 뒤, 그는 성으로 끌려갔다. 자신이 혁명당의 행동에 동참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죄명은 약탈이었다. 문자를 배우지 못했고 제도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는 관청에서 내민 진술서에 동그라미를 그려 서명했다. 서명한 문서의 의미를 알지도 못했다. 그는 죄수복을 입고 두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달구지에 태워져 조리돌림을 당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사형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해혁명은 청나라 왕조를 멸망시키고, 중국 최초의 공화정인 중화민국을 수립한 혁명이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 누구도 혁명의 이유나 정당성, 이념이나 방향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혁명의 본질은 사라지고 권력만 교체되었다. 변발을 자르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거부할 자유도 없이 두려움에 떨었다. 관청은 도적들에게 본때를 보이려고 무고한 자들에게 누명을 씌웠다.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관청에 줄을 댔다. 지식인들은 혁명당에 붙어 안위를 꾀할 뿐, 혁명의 의의를 민중에게 전파하지 않았다. 군중에게 사형수는 구경거리일 뿐, 억울함을 살펴보려 하지 않았다. 무지한 민중은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권력에 쉽게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다.
아큐는 실생활의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정신적으로만 만족하면서 현실을 회피했다. 상대를 압박하는 저항을 하지 못했고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지도 못했고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자각하지 못한 채 마음의 위안만 추구했다. 아큐의 정신이 곧 민중의 정신이었다. 혁명 주체세력은 통치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고, 민중은 혁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민중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1920년대, 작가 루쉰은 중국의 진정한 변화는 민중의 의식 개혁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사회제도의 개혁이나 혁명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민중을 교육하는 일이 절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