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남편 시점
『누런 벽지』 <장지원 옮김, 더라인북스, 2017년>
“당신과 제니가 막았지만 내가 마침내 나왔어.”
존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내가 아프다는 걸 믿지 않는다. 약한 신경증일 뿐 아무 문제가 없단다. 완쾌할 때까지 나는 모든 것을 금지당했다. 남편이며 의사이고 나를 사랑하는 존의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를 자유롭게 한다면 오히려 회복이 빠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존은 나의 건강을 위해, 공기가 좋은 곳의 이 저택을 3개월 동안 빌렸다. 존과 그의 여동생 제니는 항상 나를 감시한다. 젖먹이 아들과 함께 있을 수도 없고, 글쓰기를 할 수도 없고, 이 일기도 숨어서 쓴다. 사촌 헨리와 줄리아도 만나지 못하게 한다. 내가 얼마나 우울한지 아무도 모른다. 존은 내가 힘들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내 방의 누런 벽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군데군데 찢겼고, 무늬와 색깔이 역겹다. 존은 벽지를 바꾸고 나면 침대 틀과 창문과 출입문도 거슬리기 시작할 거라고 말한다. 벽지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건 신경증 환자에게 좋지 않다며, 잠시 머물 집을 수리할 마음은 없다고 했다. 아래층으로 방을 옮기자는 나의 제안도 존은 반대했다. 나는 존에게 짐이 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점점 이 큰 방이 좋아하게 되었다. 소름 끼치는 벽지만 빼고.
존은 내 혈색도 돌아오고 식욕도 늘고 상태가 괜찮아졌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사실 내 병은 깊어졌다. 더 피곤하고 초조하고 눈물 나고 짜증이 난다. 제대로 생각하기도 힘들다. 침대에 누워 몇 시간이고 벽지 무늬를 눈으로 좇는다. 벽지에서 독특한 악취가 난다. 누런 냄새다.
마침내 벽지의 비밀을 발견했다. 앞쪽 무늬는 창살이고 뒤쪽 무늬는 여자다. 그 여자는 창살 사이를 빠져나오려고 애쓰지만 창살에 목이 졸려서 나올 수 없다. 그 여자가 낮에는 나오는 것 같다. 창문마다 그 여자를 볼 수 있다. 창문에 보이는 여자와 벽지 안의 여자는 같은 사람이다.
내 팔이 닿는 벽지는 모조리 뜯어냈다. 이제 여자는 벽지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넓은 방으로 나와서 마음대로 기어 다니니 정말 즐거웠다. 존이 돌아왔다. 당신과 제니가 막았지만 내가 마침내 나왔어, 하고 말했다. 존은 기절했다. 나는 매번 존의 몸을 기어 넘으면서 방안을 돌았다.
잘못된 처방은 주인공의 산후우울증을 악화시켰고 끝내는 환각과 망상까지 겪었다. 존과 제니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은, 여자가 벽지를 뚫고 나오면서 실현되었다. 방안을 기어 다니는 행위는 억눌린 자의 자유 의식이다. 누런 벽지로 둘러싸인 방안은 해방된 자신의 세계이며, 녹색의 땅인 방 밖은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세계다. 그녀는 방 밖으로 나가길 거부했다. 쓰러진 남자 걸림돌을 매번 넘어가며 계속해서 방안을 기어 다녔다.
그녀의 상태가 악화되었지만, 존은 자신의 처방을 확신했고 호전되었다고 믿었다. 그녀가 소망을 얘기했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건강을 위해서, 반대한다고 했다. 그의 처방은 자신을 위한 처방이었고, 그의 사랑은 자신을 위한 사랑이었다. 오만하고 어리석은 폭력이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였다. 글쓰기, 아기 보기, 친구 만나기, 방 바꾸기였다. 그가 거부한 것이 그녀에게는 절실했다. 무엇이 그녀에게 좋을지는 그가 결정했다. 그녀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하지 않았다. 대등한 관계가 아닌, 종속적인 관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