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락당한 애국심
『모파상 단편선』「비계덩어리」<방곤 옮김, 마이디팟, 2014년>
“악한 행위일지라도 행하는 마음에 따라서 훌륭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마차 안에는 열 명이 타고 있었다. 프랑스 루앙 지역이 프로이센군에 점령당하자, 프랑스군이 점령하고 있는 르아브르로 가는 시민들이었다. 돈 많은 포도주 도매상 부부, 실 만드는 공장을 세 개씩이나 가진 도의원 부부, 백작이며 도지사인 부동산 자산가 부부, 순종에 길들어 있는 수녀 두 명,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전 재산을 써 버린 혁명가, 뚱뚱해서 비곗덩어리란 별명이 붙은 성매매 여성 루세였다. 자신의 신분 때문에 일행에게 접근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루세였으나, 자신의 음식을 받아먹는 그들을 보며 마음을 열었다. 부인들은 자신들의 소홀한 준비 탓으로, 그녀에게 한 방 먹었다는 수치심에 치를 떨었다. 그녀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했으나, 눈길에서 오랜 시간 굶주린 육체 때문에 자존심을 굽혔다. 일행 모두가, 속으로는 그녀를 깔보면서도 친밀함을 보이며 감사를 표했다.
여관에 도착하자, 일행의 여행 허가증을 검열한 프로이센 장교가 루세에게 잠자리를 요구했다. 그녀는 단호히 거부했다. 다음 날, 장교는 일행의 출발을 금지했다. 나라의 수치를 참지 못해 루앙에서도 프로이센 병정을 죽이려고 시도했던 그녀다. 어젯밤 혁명가의 잠자리 요구도, 옆방의 적군이 알아채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나라의 체면을 생각한 갸륵한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일행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장교의 요구를 수락할 것을 달콤한 말로 강권했다. 성을 함락하듯, 전략적으로 그녀를 몰아붙였고 일행을 위한 숭고한 행동으로 미화했다. 그녀의 희생으로 마차 여행을 계속하게 된 그들은, 그러나 이제는, 그녀에게 말도 건네지 않았고, 더러운 물건을 피하듯 멀리 떨어져 앉으려 했다. 시선을 둘 곳도 없었고, 먼 곳을 쳐다보며 눈물을 감추려 애쓰는 그녀에게, 자업자득이야, 하는 수군거림과 자기들끼리 음식 먹는 소리가 들렸다. 장교에게 시달리느라 음식을 준비할 경황이 없었던 그녀에게는 권하지도 않았다. 그녀를 설득하는 일에 방관했던 혁명가가 나머지 일행을 비꼬듯 라 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를 불렀을 때야 비로소 그들은 잡담을 멈추고 침울한 표정이 되었다. 조국을 사랑하는 깨끗한 마음, 이끌고 떠받들라, 복수의 팔을. 자유여! 그리운 자유여! 그대를 지키는 자와 함께 싸워라.
1870년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보불전쟁이 일어났다. 패색이 짙어진 프랑스군은 거의 모든 곳에서 철수하고 있었다. 패배한 국민이었지만 루세는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군에게 저항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차 일행은 저항은커녕 그녀만 남기고 자신들은 보내 달라고 장교에게 요청했다. 장교는 인간의 본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기 대신 그녀를 설득하리라는 것을 알았고, 그들의 요청을 무시했다. 그들은 여성이 몸을 이용해 적을 무너뜨린 역사와 희생정신을 그녀에게 얘기했다. 악행이라도 동기가 훌륭하다면 하느님은 어떤 수단이나 행위도 용서해 준다는 수녀의 얘기가 그녀의 마음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들은 각자 역할을 나누어 그녀의 신념을 무너뜨렸다. 그녀가 장교의 방으로 향하자, 그들은 술을 곁들여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음담패설을 섞어가며 해방의 파티를 즐겼다. 적군 앞에서 그토록 당당하고 싶었던 여성을, 그들은 점령군에게 상납했다. 수치, 저항, 애국, 긍지, 은혜를 모르는 철면피들이었다.
루세는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성매매 여성이었다. 이 여행에서 그녀는 다른 계층과 연대감을 느꼈다. 그녀의 음식을 고마워했고 그녀의 희생을 바랐다. 경멸을 받던 그녀는 이제 고귀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적에게 몸을 파는 수치도, 수녀에 의해 하느님께 용서를 받았다. 그녀는 결국 인정과 구원과 존중의 유혹을 견디지 못했다. 목적을 이룬 그들은 그녀를 다시 짓밟았고, 그녀는 남은 여행 내내 농락당한 서러움과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비곗덩어리에 붙어 있던 기생충들은, 혁명가가 끝없이 불러대는, 그칠 줄 모르는 마르세예즈 노래의 칼날을 맞으며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