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 대하여 <세네카>

분노와 의무

by 량화수

『분노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1세기 중반(62~65년경)>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 <안규남 옮김, 아날로그, 2021년>


“분노에 대한 최고의 치료법은 분노를 지연하는 것이다.”


자유낙하하는 사람은 낙하를 저지하거나 늦출 힘이 없듯, 분노에 사로잡힌 이후에는 어떤 결정을 해야 자신에게 좋은지 알 수 없게 된다.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막아야만, 이성이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다. 분노가 폭발하면 이성은 마음에서 쫓겨나고, 그 순간부터 마음은 분노의 노예가 된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살해당하거나 어머니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분노하면 안 된단 말인가? 그렇다. 분노하는 대신 복수해야 한다. 원통해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하는 것이 의무(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성급하고 무모해서,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끈다. 분노는 충직함이 아니라 심약함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었을 때, 우리는 그 일을 부당하다고 여기고, 마음의 평정을 잃고 분노를 느낀다. 우리를 쉽사리 화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무지와 오만이다. 나쁜 인간들이 나쁜 행위를 하는 것이 놀랄 일인가? 적이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고, 도둑이 물건을 훔치는 일이 뭐 그리 이상한가?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라는 말은 가장 부끄러운 변명이다. 나쁜 본성은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당신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가장 큰 분노를 일으킨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뿐, 어찌 잘못한 일이 없겠는가? 허물은 누구에게나 있다. 지금은 없더라도 언젠가는 생긴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도 불성실할 때가 있고, 아무리 성숙한 사람도 상황이 변하면 경솔할 때가 있다.


분노를 막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문제가 닥치더라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놓는다면 가능하다. 로마의 황제 칼리굴라는 유명한 기사인 파스토르의 아들을 감금했다. 그 아들의 빼어난 외모에 칼리굴라의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파스토르가 자신을 봐서 아들을 살려 달라고 하자, 칼리굴라는 아들을 끌고 와 즉석에서 처형했다. 그리고는 그날 만찬에 파스토르를 초대했다. 그런데 만찬에 참석한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털끝만큼도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들을 살려달라는 간청이 받아들여져 축하라도 하듯이 만찬을 즐겼다. 왜? 그에게는 또 한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겁을 먹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의무감이 분노를 억눌렀던 것이다.


분노에 대한 최고의 치료법은 분노를 지연하는 것이다.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판단하기 위해 잠시 기다리는 것이다. 유예된 처벌은 나중에라도 집행할 수 있지만, 일단 집행된 처벌은 되돌릴 수 없다. 무엇보다 시간은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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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속담에,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君子報仇 十年不晩(군자보구 십년불만) <『사기』, 사마천>)라는 말이 있다. 치욕을 당하더라도 곧바로 행동에 나서지 않고, 제대로 복수할 수 있을 때까지 실력을 키우면서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때를 기다리면서,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상태를 가늠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는 것이다. 먼 훗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을 채찍질한 상대에게 고마워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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