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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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이 아닌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은 것이 참 오랜만이다. 시간은 있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체력은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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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부산시당에서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다. 내 업무는 대외협력 및 논평과 입장 발표이다. 주로 부산 지역 의제들에 대해서 글들을 조합하고 나름대로 입장을 만들어서 배포하고 있다. 벌써 10편이 넘는 논평을 썼지만 기사에서 조금이나마 다루어준 것은 한 두편 뿐이다. 원외의 소수정당의 한계이기도 하고, 새로운 입장을 내기보다는 존재하는 입장들을 조합하는 것에 집중하는 내 논평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도 꾸준히 논평을 내는 덕에 지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들이 쌓여가고 있고 선거기간에 정책을 만들거나 새로운 운동을 조직할 때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능력의 한계로, 상상력의 부재로 입장조차 가지지 못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넘치고 넘치지만 공부하고 노력하면 더 많은 것들에 대해서 나의 입장과 우리 당의 입장이 명확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당에서는 이전에 청년학생위원회에서 활동을 처음 시작했다. 한진중공업에서 최강서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모금운동을 하고, 매주 영도에서 집회도 참여했다. 청년학생위원장이 되었을 때에는 여러 가지 강연도 하고, 사업도 기획해서 진행했다. 당시에는 당직이라는 것이 너무 나에게 무겁고 버거운 것이라 힘들었다. 상임집행위원회 회의 가기가 너무나 싫었고, 나보다 훨씬 대단해보이는 운동가들에게 나의 비루함이 드러날 까봐 두려웠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회의에 안가기도 하고, 뒤풀이를 빼먹고 집에 먼저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 시기에는 지금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주위에 함께 하는 사람들도 훨씬 많았고, 덕분에 내가 기획할 수 있는 상상력의 범위도 훨씬 넓었다. 사람들이 행사에 많이 오면 즐겁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막상 사람들과 있으면 즐겁게 웃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요즘에는 입장은 많아지고 말은 늘어나고 있지만 주위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일을 하지 않다보니 두근거림이나 즐거움은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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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시간을 살아왔지만 주위에 친구는 많지 않다. 초중고 시절의 친구들과는 대학에 들어오면서 모두 연락을 끊었고, 대학에 와서는 동아리 생활에 전념했던 지라 아는 학과에 친구도 별로 없다. 동아리 친구라도 많아야 할텐데 그 동아리 친구들도 여기저기 흩어지고 연락을 자주 안하다보니 어느 샌가 멀어졌다. 나의 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들도 여러 가지 사연들로 멀어졌다. 그나마 나의 운동 생활에서 첫 만남을 가졌던 선배와는 계속 연이 연결되어서 함께 일도 하고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사무실에서 일을 끝내고 저녁 먹을 생각을 하다보면 의도치 않게 외로움과 마주한다. 저녁에 같이 밥먹자고 연락할 사람 하나 없는 인생에 대한 비참함 같은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같이 먹을 사람은 많았는데 밥 먹을 돈이 없어 집에 갔었다. 요즘에는 밥 먹을 돈은 있는데 같이 먹을 사람은 없어졌다. 인생이라는게 참 모든 것을 한번에 주지 않는다. 또 가끔 달력을 쳐다보면서 병역재검사 날짜가 다가오고 그러면 대충 예상되는 입대날짜가 보인다. 그럼 가끔은 국제신문, 부산일보의 사회면 기사를 뒤지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랑 좋은 곳에 놀러가서 얼마 남지 않은 사회에서의 생활을 만끽하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보고싶은 영화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데 모니터의 하얀 화면 말고는 풀어낼 곳이 없어서 서럽다. 어벤져스를 보고서 눈물을 흘리고 흥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내 왼쪽 오른쪽에 비어있는 의자들을 보면 이내 차분해진다.

인생은 원래 혼자 오뚝이 처럼 걸어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결국 나의 외로움은 내 스스로가 감당해야할 문제다. 어떤 한 사람에게 집착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식으로는 근원적인 외로움을 해결할 수 없다. 죽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 왔을 때 어둠을 혼자 맞이 하는 것을 우리는 미리 대비해야 한다.

아무리 위로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한 마음은 결국 통장의 잔고를 써서 음식을 위에 우겨넣으면서 채운다. 더 살이 찔 것을 알고, 그것을 보고 더 우울해질 것을 알지만 쉽게 멈출 수도 막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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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알바 노동을 하는 가게를 지키고 있다 핸드폰에 친구들이 함께 있는 사진이 나타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음 한 구석이 차가워지고 눈시울은 뜨거워진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하는 자책감에 빠질때 쯤이면 가게에 손님이 들어와서 담배를 찾으며 나를 구해준다. 편의점에서 고요함을 깨면서 등장하는 일정한 간격의 손님들은 매번 나의 구원자들이다. 모두가 구원받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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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책을 읽고, 구입하지만 머릿속에 남지는 않는다. 이런저런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만 집중은 안된다. 새벽3시가 넘어 잠이 들려고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잠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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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얼마 전에 봤던 예능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생은 의외로 멋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행복을 만날 수도 있고, 사랑과 마주할 수도 있다. 지옥처럼 느껴지는 입대라는 것 속에서도 내가 미처 인생에서 배우지 못한 새로운 경험과 교훈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이나 쳐다보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지만 그 노동과 인내의 시간들이 나를 좀 더 강하고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의외의 불행으로도 가득하고 의외의 행복으로도 가득하다. 불행이면 마주할 수있도록 행복이면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야한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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