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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계속해서 화가나고 짜증이 났다. 게임을 해도 내가 원하는 맵이 나오지 않아서 화가 났고, 음식을 먹어도, 돈을 써도 계속 화가나고 짜증이 났다. 그냥 세상을 모조리 파괴시키고 싶은 생각만 잔뜩 들었다. 진짜 내 세상을 파괴시키고 삶을 무너뜨리기 전에 왜 화가나고 짜증이 나는지 들여다보았다.
가장 큰 요인은 역시 공포와 불안이었다. 한동안 평화로웠던 삶에 조금씩 위기의 기운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알바 퇴직금도 거의 다써가고, 반납해야할 책은 아직 반납하지 않았고, 잘 마무리 하려고했던 상담은 어찌저찌 하다가 일방적으로 때려치워버렸다. 아직 병원도 가지 않았고, 살이 쪄서 몸은 무거워졌고, 더 움직이기 싫어졌다. 머리카락은 꾸준히 길고 있지만 미용실 가는 것이 귀찮아서 끊임없이 미용을 미루고 있다. 미루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삶의 평화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유리로 되어있던 내 방어막에 짜글짜글 금이 가면서 위기가 도래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엄마의 한마디, 동생의 한마디에 욕지꺼리가 올라오고 화가났다. 평소라면 이해하고 넘어갔을 누군가의 행동에도 나를 무시하거나, 짜증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나를 무례하게 대한 것도 있었겠지만 평소의 나에 비해서 그것에 과하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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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런 분노의 순간에도 어떤 발전은 있었다. 이전에 나는 이런 순간이 오면 그저 무기력해졌다. 모든 것을 내탓으로 내 죄로 돌리면서 끊임없이 어둠 속으로 나를 밀어넣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마음의 힘이 조금 생겼는지 나에 대한 타인의 태도와 시선에 분노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만만한 사람이 되는 것은 싫다.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만, 호구가 되기는 싫다. 나의 존엄을 위협하고 괴롭히는 것들에 대해서 단호하게 화낼 수 있게 된 것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이다. 앞으로도 나를 위협하는 것들에 대해서 위협하고 대응하고 싸워서 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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