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낭만을 다시 만날 용기

무시해왔던 개인의 삶과 역사, 희망과 낭만에 대해 겸손하게 다가가기.

by 바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028&aid=000245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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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영구에 있는 동네책방에서 책모임을 했다. 책은 소설이었고, 소설을 자주 읽지 않는 나에게는 어려운 책이었다. 책을 제대로 읽어가지 않아서 웬만하면 조용히 있으려고 했지만 한명씩 다 말하는 분위기여서 한마디 거들었다. 책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자살'을 한다. 그는 체제의 부당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고, 그것에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선택은 자살이었다. 난 그것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난 인문학적 학식도 부족하고 체제의 부당함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주인공이 자살을 택한 것이 아쉬웠다. 그가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부당함을 설파하고 체제에 저항하는 자유의 인문학을 전개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소설전반의 내용이나 분위기에서 많이 벗어난 비약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난 책에서 그것이 진짜로 불만이었다. 분위기는 싸해졌고 몇몇 회원들은 내 의견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소설은 사회적인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그 자체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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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교 1학년때 부터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들은 다양하다.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내가 읽고 쓰는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들고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내가 읽기를 좋아하는 정치철학, 정치학, 사회과학 책들이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이론으로만 남기고 싶지 않았다. 실천해서 그것들을 실험하고 실제로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그래서 '사회적 실천'하는 것은 어떤 책을 읽을 때 매우 중요한 판단요소가 되었다.

좁은 식견에서 실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시를 읽는 것은 시간낭비였고, 소설은 허황된 이야기라 생각했다. 맑스를 경전처럼 수십번 읽으면 철인같은 활동가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독서편력은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지금도 사회과학 책을 압도적으로 많이 읽고 소설이나 시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실천에 있어서 '쓸모'가 나에게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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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이 최근에 들어서 변하고 있다. 사회과학적인 태도로만 세상과 사람을 보면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있다. 한 인간의 개인으로서 삶을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세상 모든 것을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사회과학은 그 자체로 폭력으로 변한다. 이전에 나의 생각도 이런 폭력이었다. 사회적, 정치적 실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글과 작품은 '쓰레기'였다.

요즘 들어서 과거, 그리고 지금 나도 가지고 있는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사람의 선의나 생각을 들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집단의 계략이나, 이해관계로만 사태를 바라본다. 직접 만나서 물어보지도, 들어보지도 않으면서 편가르기만 일삼는 사람들의 속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은 애저녁에 없어진지 오래다. 개인의 삶과 맥락, 배려와 감정은 사라진다. 권력의 꼭두각시, 조직의 스피커로서만 인간을 대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폭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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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칼럼의 저자처럼 '낭만적'이고 '희망적'인 글들을 비아냥 거렸다. 계급적 토대를 보지 못하는 글이라 생각했고, 근거없는 희망을 통해서 비판의식을 희석시킨다고 매도했다. 하지만 요즘 다시 생각해본다. 난 희망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보다 약한 사람인 것은 아닐까. 나는 온갖 과학을 동원해서 나의 생각을 정당화 하지만 정작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형성해야만 그 속에서 안정감을 가졌다. 내가 욕하고 비아냥 거렸던 사람들은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서로다른 것들을 '우리'로 묶어내지도 않으면서 함께 할 수 있는 희망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개인들을 마지막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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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인 나의 독서편력과 낭만과 희망에 대한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의 독서모임때처럼 암암리에 잠자고 있다고 어느 순간 튀어나와서 공격성을 내보인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도 않고, 같은 사람을 '우리'로도 만들지 않는 독립성이다. 오롯이 서서 개인의 삶의 서사에 귀 기울이고, 삶 이상의 비약을 하지 것, 있는 그대로 삶의 형태를 이해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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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지만 다음 책모임전까지 오늘 읽었던 소설을 다시 한번 찬찬히 다 읽어 보아야겠다. 주인공의 삶과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시도해야겠다. 내가 쓰레기라고 불렀던 것들에 대해서 겸손하게 다가가서 사과하고 다시 만나는 시도를 해야겠다. 다시 개인과 만나야겠다. 희망과 만날 용기를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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