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부터 편두통이 시작되었다. 감당 못할 스트레스와 마주했다는 증거다. 힘든 고민에서 도망치려다가 편두통에 잡혀서 온통 그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한 인간의 삶은 외부적 조건과 주체적 선택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래서 우리네 삶은 복잡하다. 내가 선택한 일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외압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그 역으로 아무 선택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믿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모든 일이 내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도 있다.
난 지금도 이 두가지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특히 과거의 기억 속에서 이 둘을 분리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구원한다고 믿었던 일은 주위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었다. 지나간 일이지만, 누군가의 가슴에는 생생한 일처럼 남아있다. 난 그 속에서 많은 권력을 누렸고, 사람들을 죽이는데 한 몫했다. 나도 당한 피해가 있었고, 살기 위해서 이야기를 여기저기 흘리고 다녔다. 지금에 와서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에는 내가 행한 죄가 너무 많다. 내 마음이 감당할 수 없다.
꽤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태는 하나지만 경험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피해의 경험이 압도적이고, 누군가는 가해의 경험이 압도적이다. 피해와 가해로 나누어지지 않는 경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털어버리고 지나갈 과거의 일에 불과하다.
개인의 가해와 운동의 실패는 구분해야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글쎄. 칼로 잘르듯이 구분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둘을 분리하는 일이 불가능 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해자인 동시에 실패자다. 가해라고 부를 수 있는 일까지 했지만 성공하지도 못한 사람들.
하고 싶은 일도 운동, 할 수 있는 일도 운동인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새롭게 운동을 시작한다. 시작해도 되는지, 사과와 반성은 충분히 했는지 등 이런저런 말이 나온다. 심판대가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들만 괜찮으면 할 수있다. 그 뒤에 따라오는 조롱과 비난만 잘 감수하면 될 일이다. 무시해버리는 방법도 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은 한량되기 인데, 할 수 있는 일은 운동뿐인듯 하여 운동의 언저리(언제부터 이런 표현을 쓰게되었을까. 조직하는 운동이 아니면 모든 운동을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부끄러운 과거와 절망스러운 기억을 따라 살아가다보면 절망스럽지만, 가끔 새롭게 운동을 시작하고 싶은 날도 있다.
새롭게 기획하고, 사람도 만나는 상상을 하며 방방 뛰어다닌다. 잠잠해질 쯤이면 큰 벽과 마주한다. 죄의식, 죄책감 따위의 감정이다. 나의 자격을 묻게 되고, 내 죄는 사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자문한다. 떠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잠시 뒤로하고 조용히 기획서를 찢는다.
답보 상태에 빠져있으니 다른 사람들 원망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나쁜 생각인 걸 알면서도 의존하게 된다. 당신은 왜 나만큼 힘들지 않은가. 당신 주위에는 어째서 아직도 사람이 남아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그토록 담담해보이는가. 타인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고 있다. 나의 마음은 어리석은 생각에 의존할 정도로 약해져있다.
글을 쓰다보면 누군가 지나가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약한 모습을 전시하지마라. 이겨내라. 내 생각을 쓰는데도 무의식 속에 있는 사람과 싸워야하는 상황이 비참하다. 무엇하나 검열하지 않고 해낼 수 없다.
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간 하루였다. 미워한 사람, 좋아한 사람, 보고싶은 사람, 없애버리고 싶은 사람. 내 머리가 아픈 이유는 수 많은 이들의 얼굴이 내 머리를 지나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편두통> 2019.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