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 이야기>

고질라와 킹콩이 싸운다면?

by 바다


초등학교 때, 학기초 첫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은 늘 비슷한 개그를 시도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개그라고 믿는 어떤 발화였다. "너희들 콩밥에 있는 콩 중에 제일 큰 콩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 동어반복 비슷하게 문장 속에 답이 있지만 아무도 관심은 없다. 반의 분위기는 갑자기 엄숙해진다. 말을 한 사람 혼자서 웃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너희들 잘 모르는 구나. 킹콩이야 킹콩! 웃기지!" "깔깔깔". 장례식장에 온듯한 엄숙한 아이들의 표정에 선생님은 목을 가다듬고 수업에 들어간다. 물론 마지막 멘트는 꼭 덧붙인다. "얼마나 좋은 선생님이니, 너희 재밌게 해주려고 이런 말도 하고!"

그 말을 했던 선생님은 거대한 고릴라인 괴수 킹콩을 떠올리며 개그를 했겠지만, 당시 문방구에서 아폴로 사먹는 일이 유일한 삶의 낙이던 초등학생들에게 킹콩은 진짜 밥 위에 있는 극혐스러운 큰 콩이었다. 그 초등학생이 조금 자라서 킹콩이 엄청나게 큰 고릴라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선생님의 개그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해해도 여전히 재미없는 개그임에는 틀림없다. 이 정도의 말장난이 선생님이 아는 가장 재밌는 개그였다는 사실에 연민마저 든다.

미국에서 태어난 킹콩은 일본에서 태어난 고질라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은 괴수다. 괴수치고는 평범한 인상을 가지고 있어서 얼핏보면 그냥 큰 고릴라에 불과하다. 고질라가 입에서 불을 내뿜고, 금문교를 몸통박치기로 박살내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그 옛날 킹콩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위에 올라가는 장면은 귀엽기도 하다.

이 두녀석은 출생 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섬나라 출생 괴수인 고질라는 기본적으로 깊게 잠수해서 대륙과 대륙을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 킹콩은 마천루의 나라 미국에서 만든 괴수답게 높은 빌딩 숲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유연한 몸을 가지고 있다. 자연재해의 성질이 큰 고질라는 인류가 피하고 경외해야할 어떤 대상이지만, 킹콩은 인간에 따라 호감도 가지고 혐오도하는 대상으로 나온다. 킹콩 자체가 재해를 일으켜서 문제가 되는 부분보다 그에 대한 인간의 입장차가 킹콩에서 문제의 본질을 차지한다. 온갖 자연 재해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는 일본이라는 환경과 큰 자연재해보다는 인간적 갈등에 의한 인재가 더 많은 미국과의 차이다.

괴수를 좋아하고, 요즘에 나오는 블록버스터 괴수물도 좋아한다. 엄청난 CG로 털까지 묘사한 킹콩과 껍질까지 묘사하는 고질라는 보는 모습은 즐겁다. 한 여름에 에어컨 바람 맞으면서 괴수들이 치고박는 모습을 보면 바캉스가 따로 없다. 요즘 괴수영화들은 할리우드의 엄청난 기술력과 자본으로 만들어진다. 고질라는 전세계를 파괴로 몰아가는 괴수대전에서 '킹 오브 몬스터'가 되었다. 킹콩도 예전에 빌딩이나 타고오르던 고릴라가 아니라, 산만한 덩치로 동네를 부수고 다니는 섬의 수호신이 되었다. 몬스터유니버스라는 세계관까지 만들어져서 이제 곧 '킹콩 vs 고질라'라는 세기의 대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동네 대장 킹콩과 킹오브 몬스터의 고질라가 싸움이 될까 싶지만, 싸움은 안되더라도 돈은 충분히 될만한 기획이다.

고질라의 기본 컨셉은 대자연의 의지이다. 자연재해다. 지구순환계의 일부로서 지구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나타나면 그것들을 제압한다. 고질라 1편에서는 방사능을 먹고 자라나는 무토부부를 진압했고, 2편에서는 외계에서 지구를 파괴하기 위해 온 생명체인 기도라를 찢어버렸다. 생태계에 정점에 위치하고, 그 위치에서 생명을 수호하는 지구의 화신이 고질라다. 물론, 고질라는 어디까지나 지구순환계의 정상화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 몇명이 죽거나, 도시 몇개 박살내는 일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옆에 뭐가있든 말든 일단 적이 나타나면 일단 부수고 때린다. 쉽게 말하면 태풍과 같은 재해다. 태풍은 지나가는 앞에 건물이 있든 말든 다때려부수고 지나가지만, 지나간 자리에는 미세먼지도 씻겨내려가고 바다도 맑아진다. 이 자연재해를 생명체로 창조해낸 존재가 고질라다.

킹콩은 변종 고릴라가 기본 컨셉이다. 말 그대로 큰 고릴라다. 태초에 킹콩은 고릴라처럼 걷고 움직였지만, 최근에 와서는 극적효과를 위해서 이족보행하고, 도구를 만들어서 싸우기도 한다. 콩;스컬아일랜드 에서는 스컬아일랜드의 수호신처럼 등장하지만 오리지널 콩은 수호신의 개념은 아니었다. 수호신처럼 만드는 이유는 대자연의 수호신인 고질라와 싸움을 붙이기 위해서 체급을 올린 결과일 뿐이다. 최근에 빠다를 들고 해골 도마뱀을 때려잡는 콩이 등장하기 전까지 킹콩의 상징은 한 손에 사람을 쥐고 빌딩을 오르내리는 모습이었다. 킹콩은 무려 사람을 보호한다. 고질라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인간 몇명, 도시 몇개쯤 가볍게 박살낸다. 이와 다르게 킹콩은 대자연이니 하는 일에 관심 없다. 오로지 자신이 호감을 가진 상대를 지킨다. 고질라는 정말 대의를 위해서만 움직이고, 사실 대의라는 인식조차 하지 않지만, 스스로의 본능이 자연생태계와 일치된 상태다. 킹콩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쫓아다니고 좋아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인간중심적인 표현이긴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킹콩은 인간적이다!

아마 고릴라와 콩의 대결이 벌어진다면 이 둘의 상반된 성향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지구생태계를 위해서는 본능적으로 무엇이든 망설임없이 파괴하는 고질라와 그 고질라의 파괴대상이 자신이 호감을 가지는 존재에까지 영향을 줄 때 이를 지키기 위해서 지구생태계고 뭐고 그냥 고질라한테 덤벼드는 콩의 대결.

고질라가 경외의 대상이라면 콩은 공감의 대상이다. 콩은 무엇이든 때려 부술 힘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 한 명을 손에 쥐고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는 절제를 한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올라가면서 한손에는 악력으로 시멘트를 박살내지만, 한 손에는 사람을 안전하게 쥐고 오른다. 인간에 비해서 압도적인 강자이지만, 그 힘을 남발하지 않고 필요에 의해서만 사용한다. 자신의 힘을 인지도 못하고, 조절도 못하는 인간들에게 경외의 대상이다. 강자 앞에서는 힘을 조절하고, 약자 앞에서는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인간세상의 세태와는 정반대인 존재다. 이런 의미에서 콩은 인간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인간을 초월한 모습을 보인다. 콩은 부술 수 있지만 부수지 않고, 부숴야할 대상만 부순다. 이 섬세한 힘에 대한 포착과 권력에 대한 고찰이 킹콩은 진면모다.

그러니 몬스터유니버스에서 아직 어린 콩이라서 더 자라서 고질라라 맞짱뜰 수 있다는 식의 이상한 설정놀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콩은 애초에 무식하게 힘싸움하고 다때려부수는 괴수가 아니다. 차라리 무차별한 대자연의 의지로서의 고질라와 주관적이고 이기적이기 까지한 콩의 시각울 대립시키는 영화가 나왔으면. 물론, 할리우드놈들은 일단 때려 부수기 때문에, 콩도 집시데인저처럼 유조선을 들고 빠따로 쓰려나 모르겠지만 말이다.


<킹콩 이야기>.2019.8.18

매거진의 이전글<입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