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2>

2019.8.10

by 바다

입만 열면 군대썰을 꺼내는 군무새에게 물었다.
'야 넌 군대 좋아하는구나 재입대는 어때?' 그가 정색하며 답한다. '절대 싫어.'

군대는 누구나 싫어한다. 주위에 다시 군대를 가고싶다고 말한 사람은 아빠뿐이었다. 모두들 군대를 싫어하고, 입대를 두려워한다. 제대한 군인들이 꾸는 가장 끔찍한 꿈이 다시 입대하는 꿈이라니 말다했다. 나도 군대를 싫어하고, 입대가 두렵다. 그래도 남들은 그러려니하면서 가는 군대. 나는 무엇이 그렇게 무서울까.

중학교2학년때 극심한 학교폭력에 시달렸다. 아무 이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에게 찍혔다. 다음 날부터 맞았다. 선생님은 나한테 그 친구랑 싸우지 말고 잘지내라고 했고, 수십명이 넘는 반 친구들은 방관했다. 도망칠 곳 하나 없는 학교에서 그렇게 1년을 내리 맞았다. 친구도, 선생도, 시스템도 날 지켜주지 않았다.

그 1년의 기억은 내 삶에 근원적인 불신을 만들었다. 내가 아무리 착하게 살고, 건실하게 살아도 '재수없게' 누군가에게 찍히면 죽도록 괴롭힘 당할 수 있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폭력을 장난쯤으로 이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자의 편에 서지않고 방관한다. 그 공간을 내 의지로 빠져나올 수도 없다면 나는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 뿐이다.

군대와 학교의 시스템과 매우 유사하다. 교장을 꼭대기로 하는 수직적인 시스템, 학생과교사, 학생사이의 명백한 상하구조, 자신의 의지로는 탈출할 수 없는 공간. 시스템은 비효율적이기까지해서 피해자를 지켜주지도, 가해자에게 제대로 된 처벌이나 교화를 하지도 못한다. 누구 하나 죽거나, 누가 하나 밖으로 나가서 떠들어야 비로소 반응한다.

군대를 흔히 '인생의 모든 운을 실험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만큼 상급자의 의지, 배치되는 부대의 분위기, 내 바로 윗상급자의 인성 등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몇년간의 인생을 걸어야한다.

내가 학교를 불신하는 만큼이나, 군대를 불신한다. 그 공간에서 중학교 2학년 때와 똑같은 상황을 마주할 일이 두렵다. 모두가 안전하고 괜찮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 40명이 넘는 반에서 39명은 안 맞았지만 나는 맞았다. 39명에게는 안전했지만 나에게는 지옥이었다. 여기에다 가끔 들려오는 군대의 끔찍한 폭력 소식은 내 믿음을 강화한다.

SNS를 보니 '나'에 대한 관심을 끄자고 한다. 나도 한동안 나에 대한 관심을 끄고, 그저 살아가는 연습을 했다. '나'에 집착하지 않는 삶은 그 자체로 평온하다. 이런 연습을 할 수 있었던 토대가 있다. 내가 연습을 했던 공간에서는 나의 트라우마를 계속 자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대라는 건 내 트라우마 속으로 던져지는 느낌이다.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있는 희망처럼 작게 믿는 구석은 있다. 나는 중학교 2학년이 아니다. 그 때의 나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해냈고, 그저 그렇게 살아오는 연습을 했다. 그 때보다 강해졌고, 유연해졌다. 문제가 생기면 외부에 알리고 싸울 수 있는 방법도 안다.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누가 괴롭히면 군인권센터에 신고해야지. 기자회견도 해야지. 다시는 나를 괴롭히는 놈이 멀쩡하게 인생을 살도록 하지는 않는다. 나를 괴롭히는 놈은 자기 남은 인생을 걸고 덤벼야할테다.

<입대2>. 201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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