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1>

2019.8.10

by 바다

나이 27살이다. 이 나이에 군대를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두려움으로 마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 난 미필이다. 대학은 수료했지만 군대는 다녀오지 않았다. 알바자리를 구하든, 친구를 만나든 이 사실을 말하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직 군대를 안다녀왔습니다'고 말하면 쏟아지는 질문들을 감당할 수 없다. '어디가 아파?' '면제야?' '아이고 고생하겠네' 걱정부터 비아냥까지 반응은 다양하지만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

석사를 따고서 공익으로 군대를 다녀오겠다 따위의 거창한 계획이 있지 않았다. 그냥 흐르는 대로 살다보니 지금 상황에 고였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동기들이 약속한 만남의 땅, 논산으로 떠나던 시절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아직 1학년이었으니까. 2학년때 부터는 너무 바빴다. 해야할 일에 치이고, 먹고 살기에 바빠서 군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학 재학생이었던 덕분에 국가가 입대를 자동으로 미루어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학부를 수료하고나니 병무청이 제일 먼저 알아보고 반겨줬다. 입대영장이 집으로 날아왔다. 동생과 엄마는 기뻐했다. 드디어 무능력한 장남이 군대에 가서 사람이 되어오겠다며 환호했다. 한참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동생은 내가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서 이겨내지 못한다고 믿었다.

두 혈족의 기대를 가볍게 무시하고, 난 입대연기를 신청했다. 그 동안 이전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을 탕진했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다. 입대연기를 하는 동안 난 계속 정신과를 다녔고, 일을 했다. 수십만원짜리 정신감정도 받았고, 학교에서 하는 상담도 받았다.

정신과와 상담을 오가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나는 절대로 내 병을 완치하지 못한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다. 내 병의 형세가 세상에서 제일 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병무청에 서류만 제출하면 당연히 공익판정이 나올 줄 알았다. 나와 동갑이었던 친구들이 4급 판정을 받고 공익으로 떠나던 참이라 나역시 공익에 기대를 걸었다.

재검결과 나는 공익을 갈 수 없다는 병무청 의사의 확언과 함께 7급이라는 애매한 판정이 나왔다. 6개월뒤에 다시 가야했다. 너무 상심해서 6개월동안 병원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 어차피 공익을 가지 못하면 비싼돈 내면서 병원 다닐 이유도 없었다. 다시 또 재검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3급이 나왔다. 현역입대의 마지막 커트라인.

두어달 뒤면 군대에 끌려가게 생겼다. 미루려고해도 졸업연기는 이미 썼고, 남은 방법은 지난 재검 이후로는 꾸준히 다니고 있는 병원의 힘을 믿을 수 밖에. 목표는 내년 2월에 육군에 현역입대. 차선은 올해 12월에 입대.

마음의 정리도 필요하고, 마침 일하는 곳에서 돈을 좀 많이 받게 되어서, 돈을 모으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 연기에 연기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 잔머리를 굴린 업보인지, 문제를 회피하기만 했던 과거가 엄습한다.

입대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입대해야 한다.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하고 떠나고 싶다. 이왕 굴린 잔머리 끝까지 굴려서 이루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고 사라지자.


<입대1>. 201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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