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급>

2019.8.9

by 바다

띵똥. 등기다. 땀으로 범벅된 몸을 일으켜서 급하게 문으로 뛰어나간다. 이대희씨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여기 싸인 부탁드립니다. 병무청에서 온 등기다. 나의 신검통지서. 2012년에 처음으로 신검을 받았으니 병무청과 씨름한지도 언 7년이다. 제발 2급만나와라..2급. 아. 3급이다. 갑자기 두통이 시작된다. 공군은 3급이면 무조건 탈락이라던데.. 나는 이제 공군가기는 틀렸다. 나는 육군에 입대하게 되겠지. 나는 현수막 끈도 잘 묶지 못하는데, 군화끈은 잘 묶을 수 있을까. 군화끈을 잘 묶지 못해서 왕따당하면 어쩌지. 그러다 자살하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계획이 있었다. 신검결과가 나오면 1~3월 입대 공군 시험을 치고 ,합격하면 내년에 입대하려 했다. 3급. 계획이 헝크러졌다. 정신과3급은 공군 시험 단계에서 대부분 탈락된다. 합격해도 훈련소에서 귀가조치란다. 두통이 심해진다. 공군에 합격하지 못하면 영장이 저항도 못하고 육군에 끌려가겠지. 육군에 가더라도 내년에 가고 싶은데 연기할 방법이 있을까. 연기가 안되면 지금 하는 편의점과 당직은 어떻게 해야하지. 어지럽다. 내 몸이 현실을 피하려 한다. 얼른 씻고 나가자.

샤워를 하고 옷을 입었다. 일할 때 필요한 물건들을 체크한다. 열쇠를 찾고, 장갑을 넣는다. 지갑도 가방에 구겨넣는다. 오래된 도어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젠장. 괜히 짜증을 낸다. 계단을 내려가니 화사한 햇살이 비춘다. 약올리나. 늘 가던 집 앞 카페로 간다. 몸을 움직이니 두통이 좀 내려간다. 기분 탓인가. 코나카드로 커피 결제가 되려나. 또 하나 걱정이 늘었다. IC가맹점이면 전부 된다고 해놓고 안되는 가게 투성이다. 사기꾼들. 그래도 이쁜 카드가 하나 더 생겼으니 만족해본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졸리는 친구의 목소리를 귀여워하며 카페로 들어선다. 여느 때처럼 아.아.를 주문한다. 결제하는 노동자의 손을 두근거리며 바라본다. 아.실패다. 노동자가 다시 한번 시도한다. 삐리릭. 이번엔 성공이다. 앞으로 이곳에서는 마음놓고 코나카드를 쓸 수 있겠다. 기쁜 마음으로 단골 가게등록을 한다. 앞으로 이곳에서는 3%캐시백이다. 부자가 되겠지. 티끌모아 티끌이려나.

자리에 앉아서 키보드를 꺼내고 태블릿을 세운다. '공군 정신과3급'을 검색한다. 결과는 절망적이다. 5시부터 편의점 일을 해야하는데 이런 정신으로 멀쩡히 일을 할 수 있을까. 정말 가기 싫다. 8월은 5주라 월급도 많고, 9월에 근로장려금도 들어온다. 일단 출근은 해야겠다. 대신 태근이다. 오늘은 금요일. 10분정도 평일 직원과 마주하는 날이다. 새롭게 직원을 뽑았다는데 어떤 사람일까. 나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면 어쩌지. 나의 이용가치가 줄어들면 어떻게 하나. 해고당하면 어쩌지. 무섭다. 태근은 힘들겠다. 최선을 다해야지.

군대가 문 앞에 성큰 다가왔다. 늘어진 뱃살과 저질 체력이 걱정이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 관리도 안해서 군대에서 뒤쳐지면 어쩌지. 그래서 왕따 당하면 어떻게 하나. 나도 그 뭐야 그린캠프에 가게되려나. 헬스라도 끊어야할까. 빚 갚느라 돈도 없다. 9월 근로장려금이 들어올 때까지는 존버다.

우리 동생은 최전방에서 실탄들고 지뢰피해다니면서 복무해도 살아서 돌아왔다. 복무라니 이런 군대 표현도 싫다. 최전방 지원할 생각도 아니면서 왜 죽음을 걱정할까. 페이스북이 문제다. 내 타임라인에는 온통 그런 일 투성이다. 군 복무 중 자살한 20대의 이야기. 고공농성중인 노동자. 동료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목숨을 끊은 소방관. 내 타임라인은 과장된 세상인걸까. 수천만이 다녀왔고, 지금도 수십만이 근무 중인 곳에서 몇 명 죽는 일은 어쩔 수 없나. 그 몇 명이 내가 아니라는 보장은 누가 해줄까..국가?. 내 선배들은 무사히 다녀왔고 좋은 곳(?)이라는 형도 있는데 혼자 유난 떠는걸까.

난 끈을 잘 못 묶는데, 군화 끈을 못 묶어서 맞으면 어쩌지. 맞다가 울면 어쩌지. 대학교 1학년 때 행사준비하다가 현수막 끈을 못 묶는 나에게 어떤 선배가 그랬지. 너 그런 일도 못하면 군대가면 큰일난다고. 또 다른 선배는 말했지. 군대를 다녀오면 비로소 1등 시민이 되는거라고.

3급. 애매한 인간은 늘 문제다. 혁명가도 노예도 아닌 인간. 정신병이 있지만 죽을 만큼은 아닌 인간. 군대에 가면 되돌아오지만 군대를 안갈 수도 없는 인간. 병역거부를 할 용기도 없고, 당당하게 군대를 가지도 않는 비겁한 인간. 내 삶은 늘 3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부산대도 아니라 동아대. 경영학과도 아니라 철학과. 기초수급도 아닌 차상위계층. 홈리스는 아닌 월세. 사회의 그늘 아래 있는 애매한 인간들이 문제다.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사회적인 배제를 요청할 수도 없다.

3급은 문제다. 3급은 애달프다. 3급은 말하기 어렵다. 완전히 불쌍하지 않은 존재들이라 상품도 안된다. 난 그래서 3급을 좋아한다. 삼성보다는 LG에 정이 가고, 이마트24보다는 씨스페이스가 좋다. 간지나는 산별노조보다 작아서 잃고 싶지 그런 노조가 좋다. 3급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3급의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일. 나와 같은 3급들에게 3급의 삶을 들려주어야지.

세상에 수 많은 3급들에게. 지금도 애매한 자신을 규정하려 애쓰는 모든이에게. 1등아닌 보통들에게.

2019.8.9 <3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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