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비꼬는 말투였다. "왜 이렇게 하지?"은 그의 입버릇이었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다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설명했다. 이건 이렇게 할 예정이고, 이건 이런 의미이고.. 별 소용은 없었다. 한 번 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끝이었다.
그는 권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목표는 계속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하는 권위가 아니라, 타인이 스스로 권위를 만들어주는 존경의 단계가 아니었을까 한다. 하지만 존경과 의존은 분명 다르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에게 의존하는 사람은 많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로 대변되는 어떤 조직의 권위에 의존했다. 그는 스스로 권위를 만드는 일에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일에도 서툴렀다.
그를 어떤 직업에 비유하자면 판사라고 할 수 있다. 판사는 재판과 관련된 자료를 양측에서 받아서 검토하고 판결을 내린다. 선제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그도 그랬다. 그는 먼저 나서지 않았다. 준비물을 말하고, 말미를 주었다. 기한이 끝나고 그는 자료를 통해서 판단했다. 몇몇 계획들은 휴지조각처럼 날라다녔다.
그는 정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밥도 사주고, 이야기도 들어줬다. 너희들은 힘든 시대에 운동한다고 공감도 해줬다. 후배들이 운동을 그만두면 힘들어하고, 눈물도 흘리는 사람이었다. 오래된 운동가의 투박한 느낌과 말투만 빼면 꽤나 따듯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진짜 그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에게서는 힘들어하고, 그만두고 싶어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직접 대면하는 그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말만 나온다. 그는 정말 '프로의식'이 있는 인간이거나 자아가 완전히 분열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와는 꽤나 깊은 관계라고 믿었다. 나의 솔직한 치부를 처음으로 모두 보여준 사람이었고, 꽤나 오랜 시간동안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운동이나 조직을 빼도 그와 나는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기대였다. 운동도 조직도 모두 사라진 뒤에 그와 나는 남이 되었다. 연락 한번이 오지 않는다. 아마 공식적으로 모르는 관계이니 사적인 연락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라면 그에게 나는 운동에 필요한 활동가였지 인생에 필요한 친구는 아니었던 셈이다.
약간이라도 미안하거나, 염치가 없어서 연락하지 않는 일이라면 조금 낫다. 그런 인간적인 감정에서 나온 결정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친구로 생각했다는 증거일테니까.
모진말을 했던 사람이지만 나는 그가 좋았다. 친구가 되고 싶었고, 오래 오래 보고 싶었다. 지금도 가슴 한켠에선 그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만나게 된다면 고맙다고 하고 싶다.
무엇이 두려운지 아니면 관심조차 없는지 연락없는 그가 야속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더 미워진다. 그에게 나는 그저 일하는데 필요한 부품이 아니었을까.
나는 분명 더 노골적인 저주의 글을 쓰고 싶었다. 마음을 따라오니 야속함에 도착했다. 어쩌면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나의 관계와 비슷한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그 친구도 나에게 물어봤다.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였느냐고. 친구로서, 동지로서 생각은 했느냐고. 그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내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했다.
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죄를 따지기 이전에 먼저 따져야 할 일은 '관계'가 아닐까. 너와 내가 어떤 관계가 있었느냐고 물어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와 나도, 나와 내 친구도 '관계'의 질문을 던져야하지 않을까.
그도 나처럼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기를 바란다. 속죄든 ,용서든 그와 내가 맺었던 관계에서 시작되니까.
<속죄2> 2019.8.5